140년치 데이터로 본 시장의 위치
"지금 미국 주식 비싼 거 아니야?" 투자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해봤을 질문이다. 나도 매달 적립식으로 넣으면서도 이 생각이 계속 든다. 느낌이 아니라 숫자로 확인해보기로 했다.
시장이 비싼지 싼지를 판단하는 방법 중 가장 유명한 게 '실러 CAPE 지수'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실러가 만든 지표로, 최근 10년 평균 이익 대비 현재 주가를 나타낸다. 쉽게 말하면 "지금 주가가 실적 대비 얼마나 비싼지"를 하나의 숫자로 보여주는 거다. 높으면 비싸고, 낮으면 싸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은 역사적으로 가장 비싼 구간 중 하나다. 그리고 이 구간에서 진입한 사람의 10년 수익률은 좋지 않았다.
이 지표의 140년 장기 평균은 약 17배다. 2026년 4월 현재는 37배. 장기 평균의 두 배를 넘는다.
차트를 보면 25를 넘긴 시기 자체가 드물다. 140년 중 크게 네 번. 1929년 대공황 직전(32.6배), 1999년 닷컴 버블(44.2배로 역대 최고), 2007년 금융위기 직전(27.5배), 그리고 2013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37배는 닷컴 버블을 제외하면 역대 두 번째. 140년 중 상위 1~2%다. 내가 투자하고 있는 이 시점이 역사적으로 가장 비싼 순간 중 하나라는 뜻이다.
"비싸니까 바로 떨어진다"는 아니다. 이 지표는 단기 예측에는 쓸모가 없다. 1998년에 이미 고평가였지만 1999년에도 주가는 폭등했다. 비쌀 때 더 비싸지는 구간이 존재한다.
진짜 무서운 건 단기 폭락이 아니라 장기 수익률이 녹아내리는 거다. 140년 데이터를 구간별로 쪼개봤다.
지표 10 미만에서 진입하면 이후 10년 연평균 15% 이상. 15~20이면 8~10%로 시장 평균. 25를 넘으면 4~5%로 급락. 30 이상이면 1~3%.
현재 37배는 "30 이상" 구간이다. 연 1~3%면 10년 동안 매달 넣어서 겨우 예금 수준이라는 뜻이다. 물가를 감안하면 실질 구매력은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
"미국 주식 연평균 10%"는 140년 평균이지, 어느 시점에 넣어도 10%라는 뜻이 아니다. 언제 넣느냐에 따라 15%가 될 수도, 1%가 될 수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반론이 있다. "지금의 37배와 과거의 37배가 같은 의미냐?" 솔직히 같지 않을 수 있다.
S&P500의 구성 자체가 바뀌었다. 1990년대에는 제조업과 금융이 중심이었는데, 지금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같은 기업이 지수 상위를 차지한다. 이들의 이익률은 과거 대기업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이익이 구조적으로 높아졌으니 같은 37배라도 과거보다 덜 비싸다는 논리는 일리가 있다. 자사주 매입 규모도 과거와 차원이 다르고, 패시브 자금이 지수로 꾸준히 들어오는 것도 밸류에이션을 구조적으로 높이는 요인이다.
그런데 이런 말은 매번 나왔다. 1999년에도 "인터넷이 모든 걸 바꾼다"고 했고, 실제로 바꿨다. 아마존은 살아남아서 세계 최대 기업이 됐다. 그런데 그때 44배에서 진입한 사람의 10년 수익률은 마이너스였다. 세상이 바뀌는 것과, 그 변화가 이미 주가에 반영돼 있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이 지표가 완벽하냐고 물으면 아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적정 밸류에이션의 기준선 자체가 올라갔을 수 있다. 하지만 "비싸게 진입할수록 이후 수익률이 낮다"는 패턴은 최근 30년 데이터에서도 깨지지 않았다. 완벽하진 않아도 참고할 가치는 충분하다.
이 데이터를 보고 내가 적립식을 멈췄느냐? 아니다. 금액도 비율도 그대로 넣고 있다.
내가 이렇게 보는 이유가 있다. 시장에는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돈이 들어온다. 연기금, 패시브 자금, 개인 투자자 — 유입은 구조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기업들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수익성을 올리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인다. AI든 효율화든, 살아남은 기업은 결국 이전보다 더 벌게 된다. 밸류에이션이 높다는 건 사실이지만, 이익 자체가 계속 올라가면 비싸 보이는 숫자도 시간이 지나면서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이건 내 판단이다. 데이터는 "이 구간에서 진입하면 10년 수익률이 낮았다"고 말하고, 나는 그래도 계속 넣는다고 판단한 거다. 다만 한 가지는 조정했다. 기대 수익률이다. "연 10%"를 기본으로 깔고 은퇴 계획을 짜지는 않는다. 데이터가 말해주는 범위 안에서 보수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비싸다고 안 사는 게 답도 아니고, 비싼 줄 모르고 사는 것도 답이 아니다. 알고 사는 게 답에 가깝다.
다음 글에서는 QQQ와 SOXX를 같이 들고 가는 게 의미 있는지, 상관관계와 섹터 중복을 데이터로 비교해보려 한다.
이 글은 Shiller CAPE(경기조정 주가수익비율) 기반 분석이며 특정 종목의 매수·매도를 추천하지 않습니다. 데이터 출처: multp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