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시골에 가면 시계는 터벅터벅 흐른다.

엄마의 부탁을 받아들이는 법

by 아지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내일 시골에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혹시 데려다줄 수 있니?"

"왜? 무슨 일로 가는데?"


엄마는 조심스럽게 질문을 한다. 그러면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거절의 분위기를 풍기듯, 밀당하듯 바로 대답하지 않고 질문을 한다. 내 질문을 받은 엄마는 그때서야 용건을 꺼낸다. 조심스럽게 그리고 천천히.


"막내 외삼촌 딸이 내일 기차로 온대. 같이 시골에 들어가서 외삼촌 입원시키기로 했어."

"외삼촌에게 딸이 있었어?"


나는 막내 외삼촌의 존재를 2년 전에 알게 되었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막내 외삼촌이 어느 날 갑자기 엄마 집에 나타났다. 어눌한 말투와 불편한 거동을 한 채로.


"응, 외삼촌 딸 있어. 내일 데려다줄 수 있어?"


엄마는 확답을 받기 위해 재차 내게 물었다. 나는 갈 수 있다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음 날 나는 엄마와 정한 약속 시간에 맞춰 엄마 집으로 갔다. 집 창가 쪽 아래 주차를 하고 엄마에게 내려오라는 전화를 했다. 엄마는 외삼촌의 딸이 아침 식사를 아직 안 해서 차려주고 있다며 밥 먹고 출발하자며 집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이때, 나는 왜 엄마의 부탁 전화가 불편한 지 깨달았다. 엄마와의 약속에는 늘 변수가 있다. 중간에 시장을 들려야 한다, 중간에 누구를 태우고 가야 한다 등 아무 준비도 없이 엄마에게 갔던 나는 뜻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거나, 뜻하지 않은 장소까지 추가로 가야 했다. 왜 엄마는 항상 내게 미리 또는 자세히 말해주지 않은 걸까.


막내 외삼촌의 딸은 나보다 더 나이가 많은 줄 알았는데,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보다 어린 동생이었다. 아침을 먹고 시골에 가는 내내 엄마의 질문에 단답형으로만 대답하는 사촌 동생을 보며 계속 질문하는 엄마도, 계속 짧은 답으로 방어하는 사촌도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막내 외삼촌은 말도, 거동도 불편했지만, 내면도 건강하지 못했던 것 같다. 엄마 집에 잠시 있을 때는 규칙적으로 운동 다니며 많이 호전되었는데, 다시 시골에 돌아가 혼자 살면서 밤마다 동네를 돌아다니며 마을 개들을 다 깨우고, 마을 주민들을 놀라게 한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서로 다 알고 지내며 보던 사이라 주민들이 이해는 하면서도 조금씩 지쳐가고 있던 즈음 막내 외삼촌의 아들과 딸 중, 드디어 딸과 연락이 되어 병원에 입원하도록 합의했다는 것이다.


시골에 도착했다. 외숙모, 작은 이모, 이름도 모르는 동네 이모들까지 여자 6명이 막내 외삼촌을 설득하겠다고 모였다. 어르신 휠체어까지 끌고 온 작은 이모, 작년 욕실에서 미끄러진 후 다리 수술을 해서 아직 거동이 불편해 지팡이를 짚고 나온 외숙모까지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왔다. 남자 한 명 병원 보내는 일에 여자 여섯이 필요하다니.


의기양양하게 외삼촌 집에 들어선 우리는 바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지난밤에도 새벽까지 돌아다니던 막내 외삼촌이 곤하게 주무시곤 계셨던 것이다. 자던 애를 깨면 더 성깔부리니 깰 때까지 기다리자는 것이다.


그러고는 이내 모두들 약속이라도 한 듯 동네 이모집에 다 같이 다시 걸어갔다. 배추 캐다 온 이모, 한 손에 낫 들고 있던 이모, 휠체어를 끄는 이모 뒤로 엄마는 저번에 가져간 배추가 맛있었다며 세상 느릿한 이야기를 꺼낸다.


그 뒷모습을 보며 나는 왜 엄마의 부탁이 불편한 지 두 번째 이유를 생각하게 되었다. 엄마의 일정은 끝을 기약할 수 없다. 특히 시골에 볼 일 보러 갈 때는 변수에 변수가 더해진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것을 어느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어느 누구도 조급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터벅터벅 동네 마실 왔다가 집에 들어가듯 걸어가는 이모들과 외숙모를 보며 나는 생각을 고쳐 먹었다.


시골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아니, 시골은 시계를 볼 필요가 없다. 하루에 하나의 일만 하면 된다. 나머지는 마음대로 써도 무방하다. 이것저것 할 일이 많아서 자동차로 이동하며 오르락내리락하는 속도감이 시골에는 필요 없다. 시골의 시계는 터벅터벅 흐른다.


다음에 엄마 부탁을 받을 때는, 구체적으로 질문해서 변수를 줄여야겠다. 그리고 엄마에게 요청해야겠다. 혹 다른 일정이 추가되면 알려달라고. 그리고 다음에는 마음과 시계를 비우고 엄마 부탁을 들어드려야겠다. 째깍째깍 시계는 그날 하루만큼은 내려놓고 와야 내 마음이 좀 더 편할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2. 성실과 책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