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독자들도 끼리끼리 모인다
요즘 소설이 나온 후, 책 홍보를 간간이 하고 있다. 약 한 달 정도는 이렇게 알릴 생각으로 하고 있는데 내가 아는 한, 소설가들은 이런 행위를 별로 하지 않는다. 사실 좀 쪽팔리는 일이지. 그래도 문학, 소설 아닌가? 약간 물러서 있는 것이 신비감까지는 아니더라도 품위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홍보는 출판사나 언론 혹은 독자가 해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초보 소설가 나는 내가 스스로 홍보한다. 여행기를 낼 때도 그래왔다. 내가 살기 위해서다. 폼나지 않는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이번 작품보다도 다음 작품을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다. 독자들이 어느 정도 사 줘야, 출판사에서도 내고 싶은 의욕이 솟는 거다. 물론 문학수첩이란 출판사는 현재 돈을 떠나서, 문예지도 내고, 젊은 시인, 작가들을 등단시키고 있다. (반연간, 문에지 '문학수첩'은 1년에 두번 나오고, 이 잡지에는 시, 단편 소설, 중편 소설들이 발표되고 있다.) 순수문학 소설, 시들은 그닥 팔리지 않지만 문학수첩 출판사는 문학하는 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육성시키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나는 그런 문예지를 통해 등단한 것은 아니고, 무작정 '장편 소설'을 나의 이력을 밝히지 않은 채, 투고해서 선택받은 것인데 첫 번째 보다도, 사실 두 번째 , 세 번째가 더 어려운 법이다.
첫 번째는 처음이다 보니 신고식처럼 주변에 개인적으로 소설 출간 소식을 알려주었고, 보내주기도 했었다. 물론 미리 사주신 분들도 있었지만...어쨌든 나는 조금 신바람이 났었다. 물론, 책을 내고 나면 늘 그렇듯이 '출간 후츄증'이란게 뒤따르지만...별로 주목받지 못하고, 팔리지 못하는 거야 이젠 일상이 되어서 담담하다. 두 번째 책 ''가족인 줄 알았는데 사람이었어'는 블로그에만 알리고, 개인적으로 알린 것은 극히 드물다. 책을 주는 것도 읽으라고 부담을 주는 것 같고...책이란, 인연 따라서, 흥미 따라서 자연스럽게 읽는 것이지 억지로 강요하면 결례라고 생각해서였다. 다만 가족이나 기까운 친구가 읽고나서 피드백을 해주었다. 가깝다 보니 솔직하게 이야기해주었다. 여러 반응이었는데...
전번 책 '무인 카페'보다 더 좋았다, 줄치고 싶은 부분도 많이 있었다. 소설이 더 발전한 느낌...,
'무인 카페'보다 재미가 덜했다.
처음에는 재미있게 읽었는데 중간부터 읽기가 힘들었다...
저도 재미있게 읽었지만 우리 아버지가 더 재미있게 읽었어요.
너무 결론을 강요하는 것 같았다...여백의 미가 있었으면...
내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어서 감동적이었다. 가족에 대한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보면서 치유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이야기를 해준 나의 가까운 가족, 주변 사람들은 연령대가 30대, 50대, 60대 등이다. 그리고 문학이나 출판 쪽에 가까운 사람들, 작가들의 세계를 좀더 아는 사람들은 공감적이고, 긍정적인 반응이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조금 거리감을 느끼거나 몰입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공통적인 것은 작가가 '자기 이야기' 했다는 느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물론 나의 이야기가 다 배어 들어갔지만 소설을 쓰다보면 캐릭터에 빙의해서, 캐릭터가 말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다 '나의 이야기'로 본다. 내가 이런 시선을 벗어나려면, 결국 이제 작가 캐릭터가 아닌, 전혀 다른 캐릭터가 나와야 하고, 다른 주제, 이슈를 다루어야만 '소설적'으로 보아줄 것 같다.
나는 '자기 이야기 쓴 것 같다'라는 말을 들으면 반은 칭찬으로 듣고, 반은 비판으로 듣는다. 그만큼 자연스럽게 읽히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만든 캐릭터, 말, 생각, 상황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잘 읽히기 때문일 것이다. 만든 이야기 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일어났던 일처럼....나는 예전부터 여행기 쓸 때부터 글이 '술술 잘 읽힌다'라는 말은 많이 들었다. 나의 장점이겠지.
하지만 소설을 쓰게 되니 이제 그것이 약점이 되고 있다. 다른 소설을 보면, 특히 젊은 친구들의 소설은 환타지가 아니더라도, 어딘지 소설스럽게...즉 생소하거나, 뭔가 특이하거나, 혹은 개성이 넘치거나,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 사건, 혹은 생각, 행동...이런 것들이 많이 보인다. 나는 그들의 소설을 읽으면서 '아, 소설은 이렇게 쓰는 건가?'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나는 소설에 대해 아무것도 배운 적이 없으니까...그러나 한편으로는 좀 너무 어렵게 느껴지거나, 생각을 한참, 몇번씩 하게 하거나...그래서 너무 모호한 경우... 나는 그런 식으로 글을 쓰고 싶어지지 않는다. 글 읽기가 너무 힘들어서......글 쉽게 읽히는 게 죄는 아니잖아?
그렇다고, 평이하게 잘 읽히는 글이야말로 잘 쓴 글이라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오히려 나는 모호하면서도, 행간에 깊은 뜻, 상징, 분위기를 간직한 글들을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고 감탄한다. 하지만 그런 문장은 흔히 보이는 게 아니다. 또 적절한 상황에서 그런 것이 보이면 정말 좋아보인다. 그러나 굳이 그러지 않을 때도 그러면 나는 조금 머리가 아파진다.
하지만, 그런 글들의 장점이 또 있는 것 같다. 생각을 하게 하고, 그런 문장들을 통하여 사람의 의식을 텍스트 안으로 끌어들이게 된다. 그러니까 그 경계선을 타는 것이 매우 힘든 것 같다. 그것이 내공이고 소설쓰기의 묘미인 것 같다. 나는 아직, 그런 것에 대한 정리가 되어 있지 않다. 아직 초보자니까...앞으로 실험하고, 시도할 것들이 많다.
여전히 나는 모든 글쓰기에서 메시지를 중요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글쓰기는 자칫하면 클리셰처럼 비친다. 즉 식상하고 상투적인 진실... 안 읽어도 다 알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이야기...그런데 모든 것은 다 클리셰에 있다는 말이 있듯이, 이런 평범해 보이는, 밋밋한 이야기 속에 깊은 진실이 다 있다. 그래서 내 또래 들이 읽으면, 그래...이거 나의 이야기야, 나도 이런 적이 있어...하면서 깊이 몰입하고, 감동하지만, 아직 깊은 상처, 회의, 절망...이런 것을 겪지 못한 젊은 친구들이 읽으면 읽지 않아도 '다 아는 이야기'를 나열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실은 당해보기 전에는 잘 모른다. 특히 부모의 죽음, 병간호...같은 이야기들, 거기서 발생하는 고통, 갈등...집안 문제...등등은...겪어봐야 아는 것들이다.
이런 것을 전달하는 작가는 더 실감나게 하고, 공감받기 위해 다양한 문체, 사건을 통해서 부단하게 극복해야 하겠지만, 사실 시대가 작가를 힘들게 만드는 점도 있다. 우린, 워낙 너무 많은 글, 이야기, 메시지에 노출되어 있다. 소설 뿐만이 아니라 영화, 드라마, 만화, 웹툰 등을 통해서...그리고 학교 교육을 통해서, 수많은 책을 통해서...또 인터넷....얼마나 많은 이야기, 메시지, 분위기가 많은가? 그러니 웬만한 것은 첫 이야기 조금 읽다보면, 결말까지 뻔해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소설, 영화, 드라마가 추리 기법을 좋아하고, 잔인한...더 잔인한...그런 사건, 혹은 묘사를 시도하고...혹은 환상, 빙의, 전생...이런 이야기 동원하고...그런데 이것도 이제 식상해졌다. 그래서 점점, 더 새로운 것에 대한 수요는 온 분야, 깊이로 번져 나간다. 아마 환타지 소설 작가들, 웹툰 작가들도 고민이 많을 것 같다.
또 작가 지망생들도 고민이 많을 것 같다. 어떻게 해야 등단할 수 있을까, 눈에 띌 수 있을까...그렇게 고민하다보면 이미 유행하고 있는 것, 유명한 사람들 것을 흉내내게 되고...이런 현상은 예전부터 수없이 발생해왔다.
나는 누구를 흉내내거나, 이런 트렌드를 의식한 적은 없다. 그냥, 무작정, 내안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썼으니까. 그러나 그것이 다는 아닌 것 같다. 나는 문학은 모르지만, 사회학적 관점에서 이런 현상을 바라본다. 결국 문학, 문화도 다 사람이 살아가는 가운데 형성된 것들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회현상의 하나로 볼 수도 있고, 수요 사이드와 공급 사이드의 변화, 메커니즘 등을 통해서 살펴볼 수도 있다. 문학 안에서의 시선은 내가 잘 모르지만, 나는 문학 밖에서 문학을 종종 바라본다.
왜 이런 현상들이 나타날까? 왜 요즘의 문체, 기법은 이럴까? 작가란 어떤 존재인가? 작가와 독자와의 관계는 무엇인가? 이런 문제들을 깊이 파고 들다보면 수많은 이야기가 나온다. 가끔 나는 이런 것을 주제로 소설 쓰고 싶은 생각도 드는데 이 분야도 무궁무진할 것이다. 철학적, 사회학적 관점에서...소설을 통해 쓰면 아주 재미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런 것은 지금 쓰면 안된다. 이런 거 썼다가는 아이고 어려워...또 지 이야기 썼네.. 하고 출판도 힘들 것이다. 그런 것은 내가 좀 유명해지고, 소설가로서 흥미로운 존재가 될 때...아마 경청을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 초보 소설가가 지금 그런 것 다루면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다는 인상을 줄 것이다.
내가 지금 상대하고 있는 독자들은 철저히 대중들이란 것을 잘 안다. 물론 자신들은 대중이 아니라 지식인, 지성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또 실제로 있겠지만....어느 분야건 간에 지식인, 지성인들은 그리 흔치 않아 보인다. 물론 작가들도 마찬가지다. 나를 (괄호) 속에 넣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 역시 소비자로서 대중이고, 독자로서 대중이고...가끔은 지식인이고...오락가락 하는 경계선에서 살고 있다.
자, 그러니 이제 또 나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좀 팔리는 소설을 고민하고 있다. 팔려야 내가 존재한다. 이 대중, 소비, 사회에서는......그거 깊이 들어가다 보면 이제 독자, 대중에게 아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실로 독자, 대중은 무엇이고, 이 현대 사회는 무엇이고, 언어란 무엇이고, 사회란 무엇이며, 인간이란, 영혼이란 무엇인가? 그 따위는 없는 것인가...등등...수많은 흥미로운 주제, 소재들이 줄지어 행진한다.
결국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보면 도달하는 지점은 사람은 다 '끼리끼리' 모인다는 것. 사회학자 부르디외의 표현을 빌린다면 '아비투스'가 같은 사람들이 서로 모이고, 읽어주는 것이다.
내공이 깊은 사람은 그 '끼리끼리'가 널리널리 퍼져나가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범위가 좁아지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나는 아직 내공이 매우 얕다. 적어도 이 사회 생활에서는....쓰면서 사회를 분석하고 비판하는 것보다, 사회 속으로 들어가 팔고, 홍보하고, 돈 버는 일은 훨씬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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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지상(여행작가 이지상)은 얼마 전에 '가족인 줄 알았는데 사람이었어'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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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인 줄 알았는데, 사람이었어 - 예스24
“우리를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낯선 체온에 몸을 기대는 시간,가족이 아닌 ‘사람’과 함께하는 순간들첫 소설 《무인카페》를 통해 소외된 개인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내 사라져 가는 유대를 회복하고자 했던 지상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 《가족인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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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인 줄 알았는데, 사람이었어 : 알라딘
첫 소설 《무인카페》를 통해 소외된 개인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내 사라져 가는 유대를 회복하고자 했던 지상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 30여 년간 여행작가로 활동하며 장소를 넘어 그곳에 사는 사람과 그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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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인 줄 알았는데, 사람이었어 | 지상 - 교보문고
가족인 줄 알았는데, 사람이었어 | 우리를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낯선 체온에 몸을 기대는 시간, 가족이 아닌 ‘사람’과 함께하는 순간들첫 소설 《무인카페》를 통해 소외된 개인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내 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