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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언제나 탈출구가 될까?

어느 유튜브에서 본, 곰방 하는 58년 개띠, 노인의 사랑

by 작가 지상

직업 소개를 하는 유튜브에서 어제 보았다.

이미 몇 개월 전에 올라왔던 것인데 무려 2시간 넘게 되는 것이었다. 처음엔 기대하지 않고 보았는데 볼수록 빠져 들어갔다. 그가 사는 한 달 20만 원짜리 창고 같은 고시원이나, 무거운 목자재, 시멘트, 돌 등을 옮기는 일하는 모습보다도 그의 인생사 때문이었다.

곰방이란 찾아보니 공사 현장에서 물건이나 자재를 공사현장에 올리는 일을 말한다. 즉 만약 3층에서 공사가 있으면 밑에서 목자재, 시멘트, 돌 등을 지고 계단을 올라가는데 올리거나 엘리베이터 등을 이용해 올리는 일을 말한다. 방송에서는 66살 되는 노인이 그것을 지고 씩씩거리며 올려다 놓는 일을 했다. 이 일이 일당이 20만 원에서 30만 원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한 달에 5, 6백만 원은 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노인은 그 돈을 전부 21년 나이 차가 나는 '집사람'에게 전부 매일, 보낸다고 한다. 정상적인 부부가 아니다. 혼인신고도 안 했고, 20년 동안 만나보지도 못했는데 그냥 모든 돈을 다 보낸다고 했다. 그리고 고시원 비용 20만 원과 식비를 '집사람'이 다시 그에게 보내고, 그녀가 단백질을 사서 보낸다는 것... 그 정도만 자신이 쓰고 모든 것은 '집사람'이 관리하는데, 그 돈을 어디다 쓰는지는 자기 관심밖이라는 것.


촬영을 하는 PD는 이 부분에서 답답하고 안쓰러웠나 보다. 계속 이해가 안 간다며 묻고, 또 물었다. 왜 그러냐고. 한결같은 노인의 대답은 '사랑하니까'


"20년 동안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 그분이 다른 사람하고 살 수도 있잖아요. 그냥 돈만 받는 거 아니에요?"

"그래도 상관없어요. 그것은 그녀의 일이고... 나는 그녀를 사랑하니까, 나는 돈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보내는 거예요. 사랑은 그녀와 상관없이, 나의 표현입니다."

"그래도 돈을 모아서 좀 더 좋은 데서 자고, 돈을 모으면서 선생님 노후도 생각하고, 다른 여자 만나서 살 수도 있잖아요? 자신을 생각해야지요."

"나란 존재는 그녀가 없으면 존재하지 않아요. 다른 여자를 생각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어요. 인생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나는 그녀를 통해서만 존재해요. 그녀가 어떻든 상관없어요. 그녀를 사랑하는 나의 마음이 중요하고, 그것이 완성되면 돼요. 나는 그 힘으로 살아요. "

"그래도 집사람은 혼인신고도 하지 않고, 20년 동안 안 보고, 만나지도 않는다면서요. 5, 6백만 원을 매달 20년 동안 보냈다면 엄청난 돈을 보낸 건데... 그 돈이 어디 쓰이는지 궁금하지도 않으세요?"

"상관없어요. 나는 나의 사랑을 표현한 것이고, 돈은 그냥 종이고, 마음이 중요해요. 몸이 떨어져 있어도 마음으로 표현되는 사랑은 거리를 초월해서 존재합니다. 인생의 본질은 사랑이고, 사랑은 존재를 초월합니다."


그는 고등학교만 나왔다는데 가끔 말하는 표현이 상당히 지적이었다. 그리고 막일 판에 있는 사람 같지 않게 어린 사람에게도 자연스럽게 존댓말을 썼고, 헤어질 때는 '오늘 재미있었어요' 하면서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댓글이 재미있었다. 인상은 조폭, 말은 수행자... 꽃뱀에게 걸린 것 같다... 막일 판의 수행자 같아요. 존경스러워요... 피디님, 그분 설득하려고 노력하지 말아요. 노가다 판에는 원래 허언증 환자 많아요. 아마 이분은 자신이 여자에게 배신당한 후, 어떤 트라우마 때문에 자신의 환상을 갖고 살아가는 것 같아요.


그러나 핸드폰을 통해 주는 메시지를 보니, 돈을 보내자. 받았다는 답신이 있었다. 집사람이 가상의 인물은 아니었다. 알고 보니 그는 어릴 적, 트라우마가 있었다. 남동생이 아주 어릴 때 죽고, 그 시신을 항아리에 넣어 아버지가 묻는 것을 보았고, 어릴 적에 관에 있는 해골도 보고... 충격이 좀 있었나 보다. 사춘기에 신경쇠약증을 앓고... 성적인 호기심과 함께 죽음에 대한 고민을 하고... 그가 읽었던 책 중에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괴테의 파우스트 등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러다가 30대 후반에 18살의 여인을 만났다. 21년 차이. 그는 어린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했으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그의 장인뻘 되는 사람은 그의 직장에 쫓아오고... 결국 직장에서 쫓겨난 그는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자신의 사랑 고백을 그렇게 '돈 보내는 것'으로 표현했다는 것. 그런데 돈을 조금 보내는 것이 아니라, '몽땅' 보내면, 그녀가 고시원비와 약간의 식비와 일하는데 도움 되는 단백질만 보낸다는 것. 그것을 20년 동안 해왔다.


그리고 들려주는 자신의 삶, 건강 비법도 흥미로웠다. 고시원 좋은 데 묵어 보았지만 그런데 있으면 마음만 허전해지고, 나태해진다면서, 에어컨 없는 창고 같은 방에서 묵고, 더우면, 옥상에 올라가거나, 길바닥에 나와서도 잔단다. 그것이 좋단다. 자연스러움... 그는 거의 팬티 바람으로 작업장에서 일하고, 거기 수돗물로 그때그때 샤워하고...


보통 사람이 이해하기에는 힘든 '기인'이었다.

그런데 그가 일하는 모습을 보면 그 나이에 온몸을 다 드러내놓고, 꿈틀거리면서 일을 하는 모습에서 어떤 있는 그대로의 인간의 모습이 보였다. 건강 비법은 자기 에너지를 다 소비하는 것이라 하는데, 평범한 사람들이 흉내 내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말에는 확신과 믿음이 있었다. 눈빛과 말에 힘이 있었다. 그의 삶에서 나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허언증은 아닌 것 같았다.


가장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20년 동안 자기가 번 돈을 무조건적으로 다 보내는데 만나지 못한다는 것.

여자도 그를 만나기 싫어한다는 것. 이 부분에서 pd가 매우 안타까워서 설득하려고 했지만 그는 확고했다.


"사랑은 그녀의 반응과는 상관없어요. 그녀가 다른 사람하고 살아도 괜찮아요. 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에 대한 사랑의 표시로 돈을 보내는 거니까, 그것으로 완성되는 겁니다. 인생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그는 종교적인 인간이 아니었지만 그의 믿음, 사랑의 대상에 하나님, 예수님 혹은 부처님이 들어가도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가 만약 어떤 종교심에서, 초월적 존재에게 그랬다면 사람들은 인정하고, 존경했을지 모르지만, 그의 대상은 세속적인 인간. 20년 동안 만나지도.. 앞으로 만날 수도 없는 여인. 그녀도 이제 40대 초반 정도 되었으려나... 그런데 계속 돈을 받는 그녀의 마음은 무엇이지?


제삼자가 볼 때는 그것이 안타까워서 온갖 댓글들이 달렸다.

심지어는 이분,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 꽃 뱀을 수사해야 한다... 등등.


약 2시간 넘는 그 동영상을 보면서, 생각을 많이 했다. 긍정과 부정, 안타까움과 감탄이 오갔다.

나로서는 판단이 잘 안 선다. 숭고해 보이기도 하고, 어리석어 보이기도 하고...

어쨌든 하루하루 자기 몸을 다 바쳐서 땀 흘려 일하고, 또 다 줘버리는 행위. 이것은 보통 사람이 흉내내기 힘든 것이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옛날에는 기인이라고 불렸어요. 내가 생각해도 좀 그랬어요... 우울증에도 시달리고, 사람 만나기 싫어서 낚시만 하기도 하고... 그러다, 사람 속에서 살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했지요. 그런 외로움, 허망함 속에서 나를 살려준 것이 '집사람'이었어요. 그 후, 나는 삶의 의미를 찾았어요. 그녀는 나에게 삶의 의미와 사랑을 주었기 때문에, 더 이상 원하는 것은 없어요. 나라는 존재는 그녀를 통해서만이 존재합니다. 그러니, 그녀 이외의 여인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내가 한눈팔면, 내 존재의 의미가 다 사라지는 겁니다. 사람은 정신이 무너지면 다 무너져요. 나는 사랑 없이 허깨비처럼 살아본 적이 있어요. 아주 심하게 경험했어요. 그런데 많이 배운 사람들, 책을 통해서 인생을 배운 사람들은 나이 들어서... 세상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요. 나는 흔들리지 않아요. 내가 밑바닥까지 갔었으니까요... 나는 지금이 행복해요. 아주 평범하게 살아가잖아요? 나는 이런 게 꿈이었어요. 아무에게도 눈에 띄지 않게 세상 속에서 살아가니까."


그런데 그는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또 이런 유튜브 방송에 응해서 자신을 보여주고 있으니, 주변에도 소문이 났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여전히 외로웠기 때문이 아닐까? 자신을 찾아오는 젊은 pd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길게 한 후, 헤어질 때는 항상 "오늘 재미있었어요..." 하면서 밝게 웃고, 손까지 흔들었다.


그런데 모든 것은 다 자기 삶이고, 좋은데... 저렇게 살다가 돈도 못 모은 채, 나중에 병들고 쓰러지면 어떡하지? 걱정이 되었다. pd도 그것이 걱정이 되어서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니까 몸 관리를 잘해야지요."


그런 좀, 싱거운 대답을 했다. 어쩌면 그는 안 좋은 상황이 오면 구차스럽게 삶을 이어가지 않겠다는 각오를 이미 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는 언제나 '살아 있는 동안'만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그가 기인이면서도, 속세의 수행자처럼 보이기도 하나보다. 그냥 모든 것을 다 세상에 내던지고,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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