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서(老舍, 1899~1966)는 중국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극작가다. 본명은 수칭춘(舒庆春)이며, ‘라오서’라는 필명으로 활동했다.
그는 루쉰(鲁迅), 바진(巴金)과 함께 중국 근대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라오서가 쓴 <낙타 샹즈(骆驼祥子)>와 <차관(茶馆)> 같은 작품은 중국 교과서에 실려 있고 지금도 중국의 대표적인 고전 문학 작품으로 읽히고 있다.
또 그의 문학적 유산을 기리기 위해 중국에서는 ‘라오서 문학상’이 제정되어 매년 수여되고 있다.
북경(베이징) 출생인 라오서는 주로 중국 하층민의 삶을 생생하게 그린 작품들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은 사실적이고 비극적인 요소가 강하며 유머와 풍자를 섞어 당시 사회의 모순과 불평등을 날카롭게 묘사하고 있다.
<낙타 샹즈>는 라오서가 1936년 교수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하며 1년간 집필하여 발표하였다.
우연히 듣게 된 베이징의 인력거꾼 이야기에서 소재를 얻었다고 한다.
<낙타 샹즈>는 1945년 미국에서 <Rickshaw Boy>(인력거꾼)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8년에 출간되었다.
현재 미국에서 팔리고 있는 <인력거꾼>
<낙타 샹즈>와 <아Q정전>의 비슷한 점과 다른 점
라오서의 <낙타 샹즈>와 루쉰의 <아Q정전(阿Q正传)>은 중국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중요한 작품들로, 둘 다 1920~1930년대 중국 사회의 하층민을 중심으로 그들의 고통과 사회적 부조리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두 소설은 비슷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접근 방식과 캐릭터 묘사에서는 차이가 있다.
비슷한 점
사회적 배경과 하층민의 묘사
두 작품 모두 1920~1930년대 중국 사회의 혼란과 부조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당시 중국은 군벌의 싸움, 정치적 혼란, 빈부 격차가 심화되던 시기였으며, 이로 인해 하층민들은 극심한 빈곤과 억압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샹즈와 아Q는 모두 이러한 사회적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하층민의 대표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두 소설의 주인공들은 모두 자신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사회적 구조적 문제로 인해 꿈이 좌절된다.
샹즈는 자신의 인력거를 소유해 자립하고자 했지만, 군벌과 부패한 사회 속에서 그의 꿈은 무너진다.
아Q는 자신이 사회에서 인정받고 싶어 하지만, 그는 오히려 더 큰 굴욕을 당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사회 비판과 풍자
두 작품 모두 사회 구조의 부조리와 중국 전통 사회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루쉰은 <아Q정전>에서 중국 전통사회의 부패와 무지를 강하게 풍자하며, 하층민이 겪는 고통을 비판한다.
라오서 역시 <낙타 샹즈>에서 사회적 불평등과 부조리로 인해 좌절하는 하층민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으며 중국 사회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비극적 결말
두 작품의 결말은 모두 비극적이다. 샹즈는 결국 자신의 꿈을 잃고 삶의 의지를 상실한 채 방탕하게 살아가게 되고, 아Q는 허무하게 처형당한다.
두 주인공은 개인적 실패와 사회적 억압의 희생자로 묘사되며, 이는 당시 중국 사회의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다른 점
주인공의 성격과 대응 방식
샹즈는 성실하고 희망을 가진 청년으로, 자신의 노력만으로 삶을 개선하려는 이상을 가지고 있다.
그는 처음에는 순진하고 열심히 일하지만, 반복되는 좌절과 사회적 부조리를 경험하면서 점점 희망을 잃고 타락하게 된다.
샹즈는 처음부터 개인의 노력에 의지해 꿈을 이루려 하지만, 사회의 억압과 불공정으로 인해 좌절한다.
이는 사회 구조가 개인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문제임을 보여준다.
반면 아Q는 자신의 불행을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 위안을 삼는 독특한 캐릭터다.
그는 자신을 굴욕 하는 사람들 앞에서 정신승리법을 통해 자기만족을 얻고, 자신이 더 위대한 사람이라고 믿으려 한다.
아Q는 사회적 부조리 속에서도 자신의 무지와 자기기만으로 인해 상황을 개선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를 위로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문제를 직시하지 않고 현실 도피를 하며 이로 인해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두 작품 모두 비극적 결말을 맞지만, 라오서는 개인의 이상과 사회적 구조의 충돌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루쉰은 풍자를 통해 중국 사회의 전통적 무지와 자기기만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낙타 샹즈> 줄거리
소설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내가 소개하고자 하는 이는 샹즈(祥子)이지 낙타가 아니다. 낙타는 단지 그의 별명일 뿐이다. 그러니 먼저 샹즈에 관해 이야기한 뒤, 내친김에 낙타와 샹즈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지나가면 그만일 것이다.” (<낙타 샹즈> 본문에서 발췌)
그러나 소설의 끝부분에 가면 샹즈는 “이 자식! 야 너 말이야, 낙타! 좆같은 새끼, 너 줄 맞춰 못가?”라는 취급을 받게 된다.
황소자리 출판사에서 출간된 <낙타 샹즈>
중국에서 가장 추락한 사람이 하는 일은 상갓집에서 대신 울어주거나 상여를 옮기거나 만장을 드는 일이라고 한다. 결국 샹즈는 더는 내려갈 수 없는 밑바닥 삶을 살게 된다.
따라서 이 작품은 사람 샹즈가 낙타와 같은 동물적 존재로 변해가는 과정을 세밀하게 표현하는 과정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농촌에서 온 가난한 청년 샹즈는 북경에서 인력거꾼이 된다. 샹즈의 이름은 상서롭고 복되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는 이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해는 짧고 날씨 또한 추우니 길가에 사람이 많을 리 없다. 이렇게 고단한 하루를 보내도 한 끼 밥벌이하기 힘든 게 인력거꾼의 삶이다. (중략) 그러니 겨울이면 인력거꾼의 가족 모두가 지옥 같은 생활을 하는 셈이다. 귀신보다 각박한 삶이다. 개들처럼 길거리에서 죽어 나자빠지는 것이 그들에겐 최대의 안식일지도 모른다. 얼어 죽은 귀신은 얼굴에 웃음을 띤다고 했던가. (<낙타 샹즈> 본문에서 발췌)
샹즈는 건강하고 성실한 인력거꾼으로, 자신만의 인력거를 사서 자립하고자 하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그는 자신의 노력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믿고, 매우 근면하게 일한다.
국내에서 상영된 연극 <낙타 샹즈> (자료사진 연극공작소 마방진)
누구나 살아갈 방법이 있고, 어디나 구멍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유독 샹즈만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바로 인력거꾼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인력거꾼이라는 게 먹느니 허접한 끼니요, 쏟아내는 건 피밖에 없었다. 그들은 온 힘을 다해 돈을 벌지만 가장 낮은 보수를 받았다. 이 세상 가장 낮은 곳에 서서 모든 사람, 모든 법, 모든 고난의 직격타를 맞았다. (<낙타 샹즈> 본문에서 발췌)
샹즈가 전세 인력거꾼으로 일하던 집주인은 차오 선생(曹先生)이다. 그는 인자하고 명석해서 샹즈가 따르는 몇 안 되는 인물이지만 사회주의자다. 후일 샹즈는 그 때문에 모아놓은 인력거 살 돈을 뺏기게 된다.
얼마 후 샹즈는 어렵게 모은 돈으로 인력거를 사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전쟁통에 돈을 더 준다는 손님을 잘못 받았다가 군부대에 붙잡히는 바람에 인력거를 빼앗기고 감옥에 갇힌다.
그는 부대가 혼란한 틈을 타 겨우 탈출에 성공하는데 군인들이 버리고 간 낙타 세 마리를 끌고 온다. 이 때문에 그는 ‘낙타 샹즈’라는 별명을 얻는다.
샹즈는 돈을 덜 받더라도 낙타를 고깃집에 파는 대신 죽이지 않고 아껴줄 사람에게 파는 인정 많은 젊은이였다.
그는 낙타 판 돈을 합해 다시 인력거를 사려고 열심히 일하는데, 인력거 대여소의 딸 호뉴가 샹즈에게 관심을 보낸다.
샹즈는 애써 무시했지만 호뉴의 유혹에 넘어가고 호뉴가 거짓 임신으로 협박과 회유를 하자 결국 호뉴와 결혼하게 된다. 샹즈는 호뉴의 자금을 빌려 다시 인력거를 산다.
국내에서 상영된 연극 <낙타 샹즈> (자료사진 극공작소 마방진}
얼마 후 호뉴가 정말 임신하게 되었는데 그녀는 출산 중 죽는다. 샹즈는 아내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다시 인력거를 처분한다. 게다가 호뉴를 간호하다가 병을 얻는 바람에 몸이 많이 약해져 예전처럼 인력거를 끌 수 없게 된다.
비는 부자에게도, 가난한 사람에게도 내린다. 의로운 사람에게도 의롭지 못한 자들에게도 똑같이 내린다. 그러나 비가 공평하게 내리는 것은 아니다. 본래 공평하지 않은 세상이기 때문에…. (<낙타 샹즈> 본문에서 발췌)
샹즈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이웃집 샤오푸쯔와 살림을 차려 열심히 살려고 한다. 샤오푸쯔는 샹즈와 호뉴 부부 이웃집에 살던 얼창즈의 딸로 장교에게 첩으로 팔려 갔다가 돌아왔다.
그러나 샤오푸쯔는 사창가에 팔려 갔다가 자살한다.
샤오푸쯔가 죽으면서 샹즈의 마지막 남은 희망도 사라진다. 그의 꿈과 의지는 결국 사회적 억압과 반복된 실패 속에서 무너져 버리고 만다.
이후 샹즈는 완전히 좌절하고, 더는 인생의 희망을 품지 않고 방탕한 삶을 살게 된다.
돈은 롼밍의 인격을 깎아내렸고, 돈은 샹즈의 눈을 멀게 했다. 그는 롼밍을 60원에 팔아먹었다. 롼밍이 원하던 것은 군중의 역량이었고, 샹즈가 원한 건 롼밍과 같은 향락이었다. 롼밍의 피는 운동 자금 위에 뿌려졌고, 샹즈는 돈을 허리춤에 쑤셔 넣었다. (<낙타 샹즈> 본문에서 발췌)
샹즈는 차오 선생의 제자였던 롼밍을 고발하고 이념까지 바꾼다. 그러나 샹즈는 등에 무거운 짐을 지고 끝없는 사막을 걸어가야 하는 낙타처럼, 자신의 인간다움을 잃은 채 음식물 찌꺼기나 담배꽁초를 줍는 비참한 신세로 전락한다.
북경 만리장성 근처에서 찍은 낙타
그는 체면을 차리고, 강하고 의롭고 성실하게 행동하려 했는데, 이제 아무 소용이 없다. 이 ‘개’ 같은 운명 때문에! (<낙타 샹즈> 본문에서 발췌)
주제 및 의미
<낙타 샹즈>는 꿈과 이상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던 한 청년이, 사회의 부조리와 불공정한 현실 속에서 서서히 무너지는 과정을 통해 중국 사회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있다.
특히 샹즈의 좌절은 당대의 빈곤층과 하층민이 겪는 고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의 실패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적 문제를 암시한다.
이 소설은 인간의 존엄성과 희망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당시 중국 사회의 혼란과 경제적 불안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작가 소개
라오서(老舍, 1899~1966) 북경의 하층민 가정에서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본명은 수칭춘(舒庆春)이다. 라오서가 11살 때 그의 아버지는 청일전쟁 중 전사했으며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이러한 성장 배경은 그가 작품에서 하층민의 고난과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베이징 사범대학에서 학업을 마친 후, 교사로 일하며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낙타 샹즈>의 저자 라오스(사진-나무위키)
이후 영국인 에반스의 추천을 받아 런던으로 가서 1924년부터 1929년까지 거주하며 런던대학에서 중국어 교수로 부임해 중국어를 가르쳤다.
이 무렵 그는 초기 문학 작품들을 집필하기 시작하여 3편의 장편을 발표했는데 문단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1930년대 초, 중국으로 돌아온 라오서는 산둥대학교 교수로 한동안 창작과 교수 생활을 병행했다.
그러나 그는 소설을 쓰겠다는 열망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낙타 샹즈>를 집필하여 큰 명성을 얻게 되었다.
1946년 미국 국무부 초청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연구 활동을 하던 라오서는 중국 공산당의 요청으로 귀국해 문화단체 요직을 맡았다.
그러나 1966년 여름 문화혁명이 발발하자 그의 말년은 비참했다.
8월 23일 마오쩌둥을 추종하며 많은 지식인, 예술가들을 핍박하였던 홍위병들이 라오서를 발견하고 그를 생포하였다.
홍위병들은 라오서를 ‘제1의 반동적인 학술 권위자’라고 비판하며 공자 사원 계단 앞에서 머리를 강제로 밀고 먹물로 얼굴을 칠한 뒤 심한 구타와 조리돌림, 모욕을 가하였다.
라오서는 다음 날 밤 베이징의 타이핑 호수 근처에서 의문사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사람들은 라오서가 모욕감에 분을 못 이겨 자살했다고 하는데 자살인지 타살인지 진위는 알 길이 없다.
주요 작품
<고향(离婚> (1933년)
한 부부의 이혼 이야기를 통해 중국 사회의 전통적인 가족 제도와 그 변화 속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다룬 이야기다.
주인공 부부는 서로 다른 가치관과 욕망으로 인해 이혼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라오서는 전통과 근대화가 충돌하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주제는 중국 전통적인 가족 제도와 결혼제도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개인과 사회의 갈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라오서는 당시 중국에서 전통적인 가족 구조와 그 속에서 억압받는 개인의 삶을 조명했다.
라오서의 책들
<도시 풍경(都市风景)> (1934년)
이 작품은 도시화 과정에서 변화하는 중국 사회를 배경으로, 도시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도시노동자와 상인들의 삶을 중심으로, 급격히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그들이 겪는 혼란과 갈등을 묘사한다.
주제는 도시화와 근대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하층민과 중산층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과 그 속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을 다루었다.
<사합원(四合院)> (1945년)
베이징의 전통적인 주거 형태인 사합원(四合院)을 배경으로, 이곳에 사는 다양한 계층 사람의 삶을 묘사했다.
이웃 간의 갈등과 우정, 그리고 그들이 직면한 시대적 변화를 통해 중국 사회의 여러 문제를 드러낸 작품이다.
주제는 사합원이라는 공간을 통해 라오서는 중국 전통 사회의 변화와 현대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탐구한다.
특히, 가족 간의 갈등과 세대 차이, 그리고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의 인간관계를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정처 없는 삶(无家可归)> (1947년)』
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중국 사회에서 발생한 난민들의 고통을 다루었다.
일본의 침략으로 인해 집을 잃고 떠도는 사람들의 비참한 현실을 묘사하고 그들이 겪는 고난과 절망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주제는 전쟁의 참상과 인간의 고통을 중점적으로 다룬 작품으로, 전쟁 중의 비극적 현실과 인간의 생존 투쟁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특히 전쟁 속에서 파괴된 인간성에 관해 탐구하고 있다.
<차관(茶馆)> (1957년)
베이징의 한 찻집(차관)을 배경으로, 청나라 말기부터 국민당 정부 시기까지의 사회적 변화를 다루는 작품이다.
찻집을 찾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 이야기를 통해 시대 변화에 따른 중국 사회의 혼란과 몰락을 묘사했다.
주제는 중국 근대사의 흐름을 대변하는 작품으로 특히 사회적 갈등, 부패, 그리고 정치적 혼란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각각의 등장인물이 시대의 희생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라오서는 중국 사회의 몰락을 상징적으로 그려냈다.
이 외에도 라오서는 수많은 소설, 단편소설, 희곡을 남겼으며, 그의 작품들은 중국 사회의 변화를 깊이 탐구하고 하층민의 고통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문화 대혁명 이후의 재평가
라오서는 문화 대혁명 중 홍위병에 의해 비판받고, 결국 그 비극적인 죽음으로 인해 많은 사람의 동정을 받았다.
문화 대혁명 이후 중국 정부는 라오서를 ‘인민 예술가’로 다시 평가하고, 그가 문화 대혁명의 희생자였음을 인정했다. 이로 인해 라오서는 문학적 가치를 넘어 정치적으로도 재평가되었다.
현대적 의미
라오서의 작품들은 단순히 과거 중국 사회를 묘사하는 것을 넘어, 오늘날 중국 사회의 문제를 성찰하는 데에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의 작품 속에서 묘사된 사회적 불평등과 인간의 존엄성 문제는 여전히 현대 중국 독자들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한국에서의 라오서의 위상
라오서는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중국 작가로, 그의 작품은 여러 번 번역되어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되었다.
한국에서는 중국 근대 문학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작가로 평가받고 있으며 특히 중국 하층민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의 문체와 주제 의식이 주목받고 있다.
<낙타 샹즈>의 시대적 배경
1920~1930년대의 중국은 중국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변혁의 시기였다.
당시 중국은 청나라의 멸망(1912년) 이후 군벌(군벌 시대, 1916~1928년)과 국민정부로 이어지는 격동의 시대를 겪고 있었다.
이러한 혼란과 변화 속에서 중국 사회의 경제적 불안, 정치적 갈등, 그리고 하층민의 고통이 극대화되었으며, 이것이 <낙타 샹즈>의 시대적 배경이 된다.
군벌 시대(1916~1928년)
1912년 신해혁명으로 2천 년 동안 이어졌던 황제제도가 무너지고 중화민국이 성립되었지만, 중국은 곧 군벌들이 각 지역을 장악하며 정치적 혼란에 빠졌다.
이 시기 동안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약해지고 군벌들이 각지에서 독립적인 세력을 구축해 싸움을 벌였으며 이로 인해 전국적으로 내전과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군벌 간의 전쟁
각 지역의 군벌들은 서로 권력을 다투며 끊임없는 전쟁을 벌였다. 이로 인해 민중은 전쟁과 폭력 속에서 고통을 겪었고 경제적, 사회적 혼란이 가중되었다.
소설 속에서 샹즈가 인력거와 재산을 군벌에게 빼앗기는 장면은 이 시기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잘 보여준다.
국민당의 북벌(1926~1928년)
1926년, 쑨원의 후계자인 장제스(장개석)가 이끄는 국민당이 군벌들을 정리하고 중국을 통일하기 위한 군사작전인 북벌을 시작했다.
1928년 북벌이 성공하여 베이징을 점령하고 국민정부가 중국의 공식 정부로 자리 잡으면서 군벌 시대는 막을 내렸다.
경제적 불안
군벌 시대의 내전과 혼란으로 인해 중국의 경제는 매우 불안정했다.
특히 농촌 지역은 가난과 기근에 시달렸고, 도시로의 이주가 늘어나면서 도시노동자, 인력거꾼과 같은 하층민들의 생활은 더욱 어려워졌다.
하층민의 고통
1920년대의 북경은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인력거꾼, 상인, 노동자들로 구성된 하층민들이 도시에 몰리면서 경쟁이 치열해졌고, 이들의 삶은 매우 열악했다.
샹즈와 같은 인력거꾼들은 극심한 빈곤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꿈을 이루려 노력했지만, 사회적 구조적 문제와 경제적 불안정으로 인해 꿈이 좌절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당시 중국 사회의 심각한 빈부 격차를 반영하고 있다.
신문화 운동(1910~1920년대)
1910년대부터 중국에서는 전통적인 유교 사상과 문화에 대한 비판과 함께 서구식 근대 사상이 확산하였다.
이를 신문화 운동이라고 하며, 이 운동은 중국 문학과 예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많은 지식인이 서구의 민주주의, 자유, 평등의 가치를 받아들이고 중국 사회의 개혁을 요구했다.
라오서 역시 이러한 문화적 흐름 속에서 사회적 부조리와 빈부 격차를 비판하는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중국 근대 문학의 발전
신문화 운동의 영향으로 중국 근대 문학이 크게 발전했다.
특히 라오서, 루쉰(鲁迅), 바진(巴金) 같은 작가들이 사실주의 문학을 통해 중국 사회의 문제점을 고발하고, 하층민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작품을 발표했다.
북경(베이징)의 역할
당시 북경은 청나라가 멸망하고 중화민국이 성립된 후에도 여전히 중국의 정치적 중심지로 남아 있었다.
많은 군벌들이 북경을 점령하기 위해 싸웠고, 군벌 시대 동안에도 북경은 중요한 정치적, 문화적 중심지였다.
북경은 급속한 도시화와 함께 하층민들의 고통이 극심했던 도시였으며 샹즈가 인력거꾼으로 살아가는 무대가 바로 이 북경이었다.
<낙타 샹즈>가 주는 메시지
이 소설은 1930년대 북경 하층민의 고난을 그린 소설이지만, 현대 독자들에게도 여전히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당시 중국 사회의 불평등과 개인의 꿈이 좌절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적 부조리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현대 독자들에게 전할 수 있는 주요 메시지를 몇 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사회적 부조리와 개인의 한계
샹즈는 성실하고 열심히 일하는 인물이지만, 사회 구조적 문제와 부조리로 인해 그의 꿈이 계속 좌절된다.
당시 북경은 빈부 격차가 크고 하층민이 쉽게 자립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장벽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사회적 연대와 변화의 필요성을 이 소설은 강조하고 있다.
꿈과 좌절의 반복
샹즈는 계속해서 자신의 꿈을 이루려 하지만 번번이 좌절한다. 이는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현대 사회에서도 사람들은 자신의 이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만, 외부의 환경이나 예상치 못한 문제들로 인해 좌절을 겪는다.
꿈을 이루기 위한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즉 사회가 개인의 꿈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삶의 무상함과 인간성의 상실
샹즈는 처음에는 성실하고 희망이 가득한 청년이었지만, 점차 좌절을 반복하면서 인간성을 잃고 무기력해진다. 이는 인간의 존엄성이 어떻게 사회적 환경에 의해 훼손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인간관계의 복잡성
샹즈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종종 배신을 당하거나 이용당한다. 그의 결혼도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이후 인생이 더 힘들어진다.
이처럼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생기는 갈등과 상처는 오늘날에도 흔히 겪는 문제다. 사람 간의 신뢰와 진실한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 소설은 일깨워 준다.
<낙타 샹즈>는 당시 중국 사회의 문제점을 고발하면서도, 현대 독자들에게는 여전히 사회적 부조리, 경제적 불평등, 인간성 상실에 대한 경고를 던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즉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를 직시하게 하며,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어떻게 연대하고 나가야 할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연극으로 공연된 <낙타 샹즈>
<낙타 샹즈>는 지난 2016년 대학로 국립극단의 제작으로 공연되었다.
하층민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사회적 불평등과 인간의 좌절을 주제로 한 내용이 현대 관객들에게도 공감을 주는 요소가 많아, 연극 무대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이 연극은 중국 베이징 인민예술극원과 협력하여 제작되었으며 라오서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각색되었다.
국립극단은 이 연극을 통해 중국 문학의 대표작을 한국 무대에 선보이며, 중국과 한국의 문화적 교류를 확대하고자 했다.
국내에서 상영된 연극 <낙타 샹즈> (자료사진 연극공작소 마방진)
연극은 소설의 주요 내용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무대화 과정에서 한국 관객들이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각색되었다.
사실주의적인 연출
연극 <낙타 샹즈>는 소설의 사실주의적 요소를 그대로 반영했다.
당시 북경을 배경으로, 주인공 샹즈가 겪는 고난과 절망, 그리고 그가 살아가는 빈곤한 사회 환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샹즈의 인간적 갈등
연극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주인공 샹즈의 내면적 갈등이었다.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사회적 장벽을 넘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하는 샹즈의 이야기는 인간의 꿈과 좌절, 그리고 현실의 냉혹함을 무대에서 강렬하게 표현했다.
특히 그가 경험하는 배신, 절망, 그리고 희망의 상실은 한국 관객들에게도 깊은 감동을 주었다.
한중 협력의 의미
이 연극은 중국 베이징 인민예술극원과의 협력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이는 중국과 한국 간의 문화적 교류를 더욱 확대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중국 측 연출과 협력은 원작의 중국적인 배경과 사회적 맥락을 더욱 충실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왔고 이를 한국 관객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재해석했다.
연극 <낙타 샹즈>는 한국 관객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낙타 샹즈>에 등장하는 북경의 장소
이 소설은 주로 1920~1930년대 북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당시 북경의 중요한 장소들이 묘사되어 있다.
라오서는 북경의 거리와 명소를 배경으로 하층민의 일상과 고단한 삶을 생생하게 그렸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중요한 북경 명소를 소개한다.
북경의 번화한 거리
샹즈가 인력거를 끌며 다니는 주요 무대는 북경의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거리다.
당시 북경의 상업 지역과 주요 도로는 많은 사람이 오가는 번잡한 곳이었고, 인력거꾼들이 주요 교통수단으로 활동하는 장소였다.
천안문 광장
시장과 골목
샹즈는 북경의 여러 시장과 골목에서 일하며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난다.
시장은 북경의 활기찬 경제적 활동이 이루어지는 장소로, 많은 상인과 손님들로 붐비는 곳이다.
소설 속에서 샹즈가 돈을 모아 인력거를 사고자 하는 배경이 되는 중요한 공간이다.
북해공원(北海公园)
북해공원은 북경의 역사적인 명소 중 하나로 제국 시대 궁전과 정원이 있는 곳이다.
이곳은 샹즈가 잠시나마 꿈을 꿨던,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며 지나가는 장소로 묘사되었다.
북해공원은 당시에도 북경 시민들이 자주 찾는 휴식 공간이었다. 라오서는 이러한 공간을 통해 샹즈의 희망과 현실의 대조를 보여주고 있다.
천단(天坛, Temple of Heaven)
천단은 북경의 유명한 제단으로, 명·청 시대의 황제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장소다.
이곳은 북경에서 매우 상징적인 장소 중 하나로, 당시 사람들에게 중요한 종교적 의미를 가진 곳이었다.
소설 속에서 샹즈는 이곳 주변을 지나치며, 북경의 웅장한 전통 건축물과 자신의 작은 삶을 대조적으로 느끼는 장면이 있다.
천단
자금성(紫禁城, Forbidden City)
자금성은 베이징의 중심에 있는 궁궐로 중국의 역대 황제들이 살았던 곳이다. 소설에서 직접적인 주요 배경은 아니지만,
베이징이라는 도시의 상징적인 장소로 등장한다.
자금성은 북경의 문화적, 정치적 중심을 상징하며 샹즈와 같은 하층민들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권력의 상징으로 작용한다.
자금성 성안에서 찍은 사진
후퉁(胡同)
후퉁은 북경의 전통적인 골목길로, 북경의 독특한 생활 방식과 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장소다.
샹즈가 인력거를 끌며 자주 오가던 길목이 바로 이런 후퉁이며 이곳에서 그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가 전개된다.
후퉁은 당시 북경 서민들이 살아가는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며 사람들 간의 얽히고설킨 인간관계도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일반 가정집 마당을 구경할 수 있다.
이 소설은 베이징의 명소들을 통해 당시 도시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하층민들의 고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베이징의 화려한 문화유산과는 대조적으로, 샹즈의 삶은 끊임없는 좌절과 고난으로 채워져 있다는 점에서 큰 대조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패키지여행의 장단점
북경 여행은 패키지여행으로 다녀왔다. 일단 중국은 그리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딸과 둘이 떠났기 때문에 가이드가 있는 편이 훨씬 좋다고 생각했다.
나는 컴퓨터를 켜고 ‘북경 패키지’를 입력했다. 일단 여행사도 많았지만, 가격도 천차만별이었다.
또 알 수 없는 단어가 들어있는 노 옵션 노 쇼핑의 품격 있는 여행이라는 단어도 있었다.
북경은 대부분 여행지도 비슷했다. 나는 짬만 나면 컴퓨터 앞에 앉아 노트에 여행사별로 죽 적어놓고 가는 곳과 숙박시설, 항공편 등을 꼼꼼히 체크했다.
후기들을 살펴보니 대부분 가격이 싼 것은 입장료를 내고 관광하는 곳보다 전문대가, 왕부정거리, 798 예술구, 더스페이스, 스차하이 등 거리 투어가 많다고 적고 있었다.
물론 북경 여행의 백미인 만리장성과 이화원, 자금성 등은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만리장성도 걸어서 올라가는 것과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 것이 있었고 비행기도 북경으로 바로 가지 않고 천진으로 가서 다시 북경으로 관광을 하러 나오기도 했으며 국적기가 아닌 것도 있었다.
너무 많이 검색하다 보니 눈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만리장성
북경에 가기도 전에 벌써 북경의 하루가 머리에 죽 들어찼다. 또 검색하다 보니 옵션이라는 것은 선택 관광을 말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선택 관광은 발 마사지, 전신 마사지, 금면왕조 쇼(좌석 업그레이드), 인력거 투어+민가 방문, 이화원 뱃놀이, 경산공원, 중화민족원, 천단공원, 마담투소 박물관 등이 있는데 모두 체험하려면 1인당 230달러를 더 내야 했다.
자전거로 풍경이 멋진 동네를 한 바퀴 도는 인력거 투어
아쉽게도 내가 가고 싶었던 용경협은 날씨가 추워서 11월 15일부터 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도 중간 정도의 패키지인 499,000원의 가격은 국적기로 북경을 왕복하는 항공권과 숙박비도 되지 않았다.
숙박에 관광지 입장료, 먹거리, 리무진 대여 등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도 가능하지 않은 금액이었다.
뒷부분에 네 군데 쇼핑을 해야 하며 쇼핑을 하지 않으면 1인당 30달러의 벌금을 내야 한다는 글귀가 있기는 했다.
그 네 군데의 쇼핑은 한약방, 진주, 차, 라텍스라는 글도 발견했다.
너무 패키지를 생각하다 보니 머리가 아팠다. 누군가 계획을 짜고 ‘이렇게 갑시다’라고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결국 한 가지 상품을 선택했다. 이름 있는 5성급 호텔에 묵는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고 국적기에 만리장성도 케이블카를 타고 이동하며 여행지도 대부분 다 들어있었다.
나는 바로 이거다 싶은 생각에 그동안의 시름이 싹 가시는 듯했다.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를 살펴보니 먹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숙박시설이 너무 좋았다는 평이 많았다. 마침 학교에서 돌아온 딸아이를 붙들고 나는 흥분해서 말했다.
“드디어 좋은 상품을 찾았어. 그런데 생각해 봐. 돈은 1인당 50만 원인데 왕복 비행기 표가 30만 원에 호텔이 5성급이래. 그러니 관광지 입장료하고 뭐 하고 하면 가격이 도대체가 안 나와. 그래서 엄마 생각에는 먹는 것은 포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컵라면 하고 햇반하고 고추장, 김 이런 거 좀 싸가기고 가자. 참 그리고 쇼핑하는 게 있대. 우리는 무조건 안 산다.”
물건을 보면 필요보다 덥석 잡고 보는 딸에게 나는 미리 못을 박았다.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딸아이는 무척 행복해했다. 무엇보다 학교에 체험학습서를 내고 놀러 가니 기분이 최고였다.
캐리어를 꺼내놓고 일주일 내내 짐을 꾸렸다.
가능하면 꼭 필요한 물건은 챙기고 필요 없는 물건은 넣지 말라는 내 조언에 수없이 물건들을 넣었다 빼기를 반복했고 인터넷을 뒤져 중국에서 꼭 사 와야 할 것과 먹어야 할 것 등을 수첩에 꼼꼼히 적기도 했다.
드디어 출발일이 되었다. 공항에 도착하니 6시 40분이었다. 피켓을 든 직원이 2층 빵집 앞에 있다고 해서 2층으로 올라갔다.
우리가 빵집 앞에서 두리번거리자 한 여자가 다가왔다. 우리가 예약한 여행사 직원이었다. 나는 일행이 궁금해서 물었다.
“나머지 인원은 모두 한 팀인가요?”
나는 ‘아니요’라는 대답을 원했는데 여행사 직원은 ‘네’라고 대답했다. 14명이 일행이고 딸아이와 나만 다른 팀이면 낙동강 오리알처럼 불이익을 당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14명의 일행 중 먼저 도착한 2명을 여행사 직원이 소개해주었다. 나이는 나보다 어려 보였는데 옷차림이며 화장이며 이상한 사람들 같지는 않았다. 그나마 다행한 일이었다.
“단체 비자는 한 명이라도 빠지면 출국, 입국이 힘드세요. 그러니 서로 잘 챙겨서 즐겁게 다녀오세요.”
여행사 직원은 비행기 티켓팅을 해준 후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이제 믿을 사람이라고는 생면부지 14명의 일행이 전부였다.
14명이 비자 순서대로 번호를 정해 줄을 섰다. 딸아이가 15번 내가 마지막 16번이었다.
중국 입국심사를 받고 나오자 가장 먼저 보인 것
물론 다녀와서 느낀 점은 패키지여행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여행 경비가 절감되었고 숙박은 정말 훌륭했다.
먹거리는 형편없어서 가이드에게 1인당 100달러를 더 주고 현지 식당으로 업그레이드해 달라고 한 것을 빼면 그런대로 괜찮았다.
첫날 점심 식사는 역한 향신료에 도저히 우리가 먹을 수 없는 음식이 나왔다. 한국에서 돼지국밥도 잘 먹는 내 식성도 한 숟갈 뜬 후에는 수저가 가지 않았다.
중국에서 먹었던 음식
저녁에는 특식으로 북경 오리를 먹으러 갔는데 오리가 통째로 나올 것을 기대한 것은 너무나 큰 오산이었다.
오리는 우리나라 마켓에서 파는 슬라이스가 나왔다. 그것도 아주 얇게 썰어서 겨우 접시를 덮었을 뿐이었다. 이것은 음식이 아니었다.
패키지여행의 출발은 어떤 사람들과 함께 가느냐가 매우 중요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운이 없는 편이었다.
나와 딸을 제외한 나머지 14명의 인원이 모두 한 회사의 커리어우먼들이었다. 그들은 모 화장품 회사에서 우수 사원으로 뽑혀 회사에서 보내주는 단체 여행에 왔다고 신이 나서 말했다.
전국에서 우수 사원으로 뽑힌 14명의 아주머니는 여러 면에서 매우 우수했다. 동작도 빨랐고 가이드가 내려 주는 상점에 들어가면 물건을 사느라 나올 줄을 몰랐다.
덕분에 가이드의 입은 여행하는 내내 입이 귀에 걸려있었다.
우리는 가이드가 안내해 준 쇼핑센터를 들어가자마자 휙 둘러보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이것저것 사느라 정신없는 아주머니들이 빨리 안 나온다고 툴툴거렸다.
우리의 관광을 책임졌던 리무진 버스
그런데 저녁에 가이드가 고마워서 한턱내는 양고기까지 얻어먹었으니 도대체 아주머니들이 돈을 얼마나 뿌렸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 뒤에 앉은 아주머니는 라텍스 침대를 200만 원 주고 구매해 한국으로 부쳤다고 했다.
총 50만 원짜리 패키지여행에 200만 원짜리 라텍스 매트리스를 덥석 사들이는 아주머니들의 통 큰 씀씀이에 기가 턱 막힐 뿐이었다.
아무튼 아주머니들은 관광에는 관심이 없고 온통 쇼핑에만 정신이 팔려있었다.
나는 여행사에서 가겠다고 프린트해서 나누어준 장소를 왜 빼놓고 안 가느냐고 연신 항의했고 아주머니들은 어디를 가든 불만이 없었다.
아마 여행사 직원은 여행 내내 내가 눈엣가시처럼 얄미웠을 것이다.
첫날 먹거리가 너무 형편없어 가이드에게 항의했더니 그 패키지여행 가격으로는 그것도 훌륭한 식사라고 말했다.
좋은 방법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1인당 100달러씩 더 내면 여행사에서 지정한 식당이 아닌 현지 식당을 안내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아주머니들의 대표를 찾아 사정을 말하고 1인당 100불씩 더 내는 게 어떠냐고 설명했다.
대표는 첫마디에 콜이었다. 통이 큰 아주머니들을 만난 것이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패키지여행을 많이 해본 아주머니들은 먹을 것을 바리바리 싸 와서 여행사에서 주는 밥이 시원찮으면 먹지 않는다고 했다.
싸가지고 온 음식을 다 처분하고 가야 하니 아마 내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을 것이다.
가이드는 다음날부터 현지에서 유명한 음식점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만둣집, 중국집 등 다양한 요리를 맛보았다.
특히 테이블을 돌려서 먹는 중국집은 그릇들이 멀쩡한 게 하나도 없이 다 이가 나갔는데 중국은 그런 집이 최고의 맛집이라고 했다.
중국집 간판이 너무 어마어마해서 요릿집이 아니라 무슨 대회에 참가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중국집의 생김새와는 달리 요리는 맛있었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은 온천이 개별 방에 설치되어 있었으며 게다가 복층이어서 정말 기분이 좋아지는 숙소였다.
그리고 조식도 훌륭했다.
복층 호텔, 침실은 2층에 있고 1층은 거실(사진에 다 못 담았는데 엄청 넓었다)
다만 패키지여행이라는 것이 쇼핑을 동반하는 것이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떠났지만, 솔직히 그 정도로 시간을 많이 빼앗길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것만 알고 떠난다면 저렴한 가격에 여행을 다녀올 수 있는 매력이 있다.
하지만 나는 다음부터는 패키지여행은 가지 않을 것이다. 혹시 이용한다면 돈을 더 주더라도 노 옵션, 노 쇼핑, 노 팁을 선택해서 갈 것이다.
*중국 여행기는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