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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숙 Sep 26. 2024

<호밀밭의 파수꾼> 배경지 뉴욕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J.D. Salinger)

*뉴욕 편을 한 번 더 연재하는 이유

연휴 동안 우연히 <호밀밭의 파수꾼>을 다시 읽게 되었다. 사실 얼마 전 뉴욕 편에서 나는 <위대한 개츠비>와 <호밀밭의 파수꾼>을 놓고 어떤 작품을 쓸지 고민했었다.


두 작품 중 <위대한 개츠비>를 택한 이유는 <호밀밭의 파수꾼>에 비해 별로 잡음(?)이 없는 소설이어서였다.     


그러나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은 후 이 작품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부분들을 한번 짚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에 심취한 독자라면 내가 쓰고자 하는 내용을 이미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J.D. Salinger)가 1951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이 책은 16살 주인공 홀든 콜필드의 방황과 고독을 그렸다.      


10대들의 불안과 정체성의 혼란, 사회 부적응 등을 깊이 있게 탐구한 소설이지만 거친 언어와 성적인 내용 때문에 과연 청소년이 읽어도 좋을 소설인지 논란이 일었고 한동안 청소년의 금서 목록에 올랐다. 그러나 금서가 되었다는 상징성 때문인지 오히려 책은 더 많이 팔렸다.      


현재 <호밀밭의 파수꾼>은 전 세계 누적 판매 7,000만 부를 돌파하였고 미국에서는 해마다 30만 권이 팔리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꾸준히 팔리고 있는 스테디셀러다.  

   

<호밀밭의 파수군>  책


<호밀밭의 파수꾼> 줄거리

4번째 퇴학

16세 소년 홀든은 명문 펜시고등학교 2학년으로 기숙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다. 그가 좋아하는 것은 순수한 것, 변하지 않는 것이다.

     

싫어하는 것은 위선자, 사기꾼 등이며, 심지어 영화나 연극도 배우가 진짜같이 연기하는 것 때문에 싫어한다.      


뉴욕에서 1달러를 주고 산 빨간 사냥 모자를 항상 쓰고 다니는데, 이는 위선자들을 총으로 사냥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홀든은 키가 6피트 반 인치(약 185cm)에 비쩍 마른 소년으로 키는 크지만, 체력은 약골이다.     


상류층 콜필드 가의 차남으로 아버지는 유능한 변호사다. 어머니는 동생 앨리가 병으로 죽은 후 몸이 좋지 않고 예민한 탓에 홀든은 자기가 퇴학당한 사실을 숨기려 한다. 형은 작가였으나 지금은 할리우드에서 잘 나가는 영화 제작자다. 그리고 귀여운 여동생 피비가 있다. 홀든은 남동생을 사랑했었다.     


“동생이 죽은 날 나는 차고 안에서 잤는데 주먹으로 창문을 모조리 때려 부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그러고 싶었을 뿐이다.”     


홀든은 5개 과목 중에서 영어를 제외한 4개 과목을 낙제해 퇴학당했고 그 사실을 알리는 편지는 집으로 이미 발송되었다. 하필이면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날이었다.


그는 이미 다른 학교에서 3번의 퇴학을 당했고 이번이 4번째였다.     


펜싱부 주장인 홀든은 시합하는 날 내릴 정류장에 온통 정신이 팔려 펜싱 도구를 지하철에 두고 내린다. 도구를 몽땅 두고 내렸으니 당연히 경기를 치르지 못했고 부원들의 원성을 듣는다.     


홀든이 잘하는 것은 독서와 작문뿐이다. 그는 토요일 오후 룸메이트와 말다툼을 벌이고 얻어터진 후 가방을 싸서 학교를 나온다.


뉴욕으로

그는 기차를 타고 집이 있는 뉴욕으로 간다. 그러나 갈 곳이 없는 홀든은 싸구려 호텔에 머무르며 과거의 여자친구를 떠올리고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을 시도한다.


호텔 건너편에는 커튼도 치지 않고 이상한 행동을 하는 어른들이 빤히 보인다.

 

뉴욕의 한 호텔


“그놈의 호텔은 변태와 얼간이로 가득 차 있었다. 그곳에서 정상적인 인간은 아마 나 혼자뿐이었을 것이다. 이건 지나친 말이 아니다.”

    

홀든은 여자를 불러 이야기만 나누고 5달러를 주지만 10달러를 주지 않았다고 찾아온 웨이터에게 또 얻어터진다.


이처럼 그가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는 대부분 삐걱거리고, 그는 더욱 깊은 고립감과 소외감을 느낀다. 홀든은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만일 누군가 내 시체를 덮어준다는 확신만 있었다면 정말 투신자살했을 것이다. 피투성이가 된 나를 바보 같은 구경꾼들이 내려다보는 건 원치 않았다. 내가 눈을 뜬 것은 겨우 열 시경이었다.”  


여동생 피비

홀든이 가장 아끼는 사람은 그의 여동생 피비다. 10살인 피비는 순수하고 명랑하며 홀든을 진심으로 이해한다.


홀든은 아파트 경비에게 부모님이 외출한 것을 확인하고 몰래 아파트로 들어가 자는 동생을 깨운다.


동생은 오빠가 퇴학당한 사실을 눈치채고 “아버지가 오빠를 죽일 거야”라고 몇 번을 말한다. 둘은 대화를 나눈다.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한 가지만 말해봐.”

“난 앨리가 좋아. 그리고 지금처럼 너하고 앉아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해.”

“앨리는 죽었어. 그건 실제가 아니야 다른 것을 말해봐.”

“만일 내게 그 지랄 같은 선택권이 있다면 말이야.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밌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앞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떨어질 것 같으면, 어딘가에서 나타나 재빨리 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짓인 줄은 알고 있어.”

피비는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드넓은 호밀밭


홀든이 아이들을 지키고 싶다는 것은 순수함과 무고함을 보호하고 싶은 자신의 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홀든은 동생에게 2달러만 빌려달라고 말한다. 피비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돈을 오빠에게 준다. 8달러 65센티를 받아 든 홀든은 고마움과 미안함에 동생을 껴안고 울다가 다시 몰래 집을 빠져나온다.      


그날 저녁 갈 곳 없던 홀든은 안톨리니 선생님을 찾아가 하룻밤 신세를 지기로 한다. 그러나 잠이 들었던 홀든은 선생님이 자신에게 다가와 이마를 쓰다듬는 손길을 느끼고 놀라서 도망치듯 선생님 집에서 나온다. 그리고 센트럴 기차역에서 노숙한다.      


센트럴역


아침 일찍 붐비는 역에서 깬 홀든은 마지막으로 동생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멀리 떠나기로 한다.      


“서부로 떠나 귀먹은 벙어리 행세를 할 참이었다. 그러면 누구 하고도 쓸데없는 대화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학교 앞에서 만난 동생은 커다란 여행 가방을 들고 오빠와 함께 떠나겠다고 말한다.     


당황한 홀든은 떼쓰는 동생을 달래기 위해 동물원을 찾고 동생에게 회전목마를 태워준다. 그때 갑자기 비가 내렸다.


그러나 홀든은 비를 고스란히 맞는다. 동생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며 홀든은 그 순간이 행복하다고 느낀다.


공원의 회전목마


“너무나 기분이 좋아서 큰소리로 마구 외치고 싶었다. 왜 그랬는지 모른다. 하여튼 피비가 파란 외투를 입고 빙빙 돌고 있는 모습, 이건 너무나 멋있었다. 정말이다.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뿐이다. 난 이 이야기를 많은 사람에게 한 걸 후회한다.”     


정신적 붕괴와 결말

소설의 마지막 장은 정신병원에 입원한 홀든의 이야기다. 그는 절망감에 빠지면서 점차 정신적, 신체적으로 한계에 다다르고 결국 입원했다.      


홀든은 병원에서 곧 퇴원을 앞두고 있지만, 앞으로의 삶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다만 병원에서 나가면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      


그러나 홀든은 그동안 자신의 상처와 불안에 대해 어느 정도 깨닫고 치유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는다.     


핵심 주제

순수함과 상실

홀든은 아이들의 순수함을 지키고 싶어서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환상적인 역할을 꿈꾼다. 이는 그가 세상의 부패와 타락에 대한 반감을 느끼는 이유와 연결된다.     


정체성의 혼란

홀든은 자신이 누구인지, 세상에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워한다. 그는 사회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불만족을 느끼며 자아를 탐구한다.   

  

서점에서 팔고 있는 책

고독과 소외

홀든은 타인과의 진정한 연결을 찾고자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며 점점 더 고립감을 느낀다. 그는 세상과 어울리기보다는 그로부터 도망치려는 경향을 보인다.     


성장과 방황

홀든의 뉴욕에서의 방황은 그가 성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과정으로 해석될 수 있다.     


결말과 의미

소설은 홀든이 정신병원에서 이야기를 회상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는 자신의 상태가 여전히 혼란스럽고 불확실하다. 다만 입원하기 전 여동생 피비의 행복한 미소가 홀든에게 큰 위로와 희망을 주었다는 것을 말하며 소설은 끝난다.

    

홀든이 센트럴파크에서 회전목마를 보며 얻은 통찰은, 샐린저가 자신의 전쟁 상처를 치유한 것과 같은 깨달음이었다. 그리고 둘 다 입을 닫고, 그 깨달음을 두 번 다시 말하지 않았다. 따라서 『호밀밭의 파수꾼』의 마지막 문장인 “누구에게든, 무슨 이야기든 하지 말기를. 그러면 모든 이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할 테니까.”를 읽을 땐 샐린저와 2차 세계대전을 모두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전사자들도. (샐린저 평전 p.202~203) 


작가소개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Jerome David Salinger)

출생: 1919년 1월 1일, 미국 뉴욕 맨해튼

사망: 2010년 1월 27일(91세), 미국 뉴햄프셔주 코니시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Jerome David Salinger)


손자: 에이버리 샐린저(Avery Salinger), 개넌 샐린저(Gannon Salinger)

자녀: 맷 샐린저(Matt Salinger), 마거릿 샐린저(Margaret Salinger)

부모: 솔 샐린저(Sol Salinger), 미리암 샐린저(Miriam Salinger)

형제자매: 도리스 샐린저(Doris Salinger)


배우자: 콜린 오닐(Colleen O'Neill, 1988년~2010년), 클레어 더글라스(Claire Douglas, 1955년~1967년), 실비아 웰터(Sylvia Welter, 1945년~1947년)     


샐린저는 미국의 작가로 그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1951)은 비평가들의 찬사와 열렬한 팬을 얻었다. 그는 특히 2차 세계 대전 이후 세대의 대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샐린저는 <호밀밭의 파수꾼>을 쓴 이후 사람들의 눈을 피해 작은 농장에 칩거한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작품을 썼지만 발표하지 않았다. 그의 사생활은 신비함에 가까울 정도로 통제되었다.


다행히 그가 죽고 난 지 1년 후인 2011년 캐니스 슬라웬스키가 <셀린저 평전>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 평전으로 인해 베일에 싸인 샐린저의 일상생활을 많은 이들이 알게 되었다.


슬라웬스키는 집요할 정도로 샐린저 주위를 파고들어 취재하여 평전을 냈다고 한다.

샐린저 평전-아마존에서 구할 수 있다.


샐린저는 유대인 아버지와 유대교를 받아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홀든 콜필드처럼 뉴욕시에서 자랐으며 학교에서 퇴학당한 경험이 있다. 이후 아버지의 권유로 공립학교와 군사학교에 다녔다.      


뉴욕과 컬럼비아 대학에서 잠시 공부한 후, 샐린저는 전적으로 글쓰기에 전념했고 그의 단편은 1940년에 정기 간행물에 실리기 시작했다.      


미국 육군에서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후(1942-46), 샐린저는 ‘뉴요커’ 잡지에 작품을 발표하게 된다. 그러나 원작 그대로가 아니고 편집자와 여러 번 싸움 끝에 원고를 고친 후 게재하였다.     


샐린저는 전쟁 경험과 실연이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여 깊은 정신적 고통을 겪었고, 이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고통받았다.

 

6월 6일에 샐린저와 함께 상륙했던 3080명의 군인들 중 1130명만 살아남았다. 샐린저가 속한 사단이 유난히 피해가 컸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가 느꼈을 상실감이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2차 세계대전 때 유럽 전투에 참가한 미군 부대 중 샐린저가 속한 부대의 사상자 비율이 가장 높았다.(1944년 한 해에만 12 연대는 소속 장교의 76퍼센트, 사병의 63퍼센트를 잃었다.)(샐린저 평전 p.143) 


<샐린저 평전>은 우리나라 민음사에서도 펴낸 있다.

여러 곳을 검색한 결과 아직 평전을 파는 곳도 있었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샐린저는 일상으로 돌아왔으나 전쟁의 후유증으로 역사상 미군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벌지전투와 끔찍한 나치 수용소를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호밀밭의 파수꾼>을 끝으로 그는 칩거하고 대중에게 나타나지 않았다.


많은 평론가들은 그가 세상을 등진 이유가 전쟁의 후유증 때문이라고 말한다.

 

샐린저의 여인들

J.D. 샐린저의 개인적인 삶은 그의 작품만큼이나 신비에 싸여 있다. 그는 두 번 결혼했지만, 그의 삶에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 몇몇 연인이 있었다.     


첫 번째 아내-실비아 웰터(Sylvia Welter):

결혼 시기: 1945년     


샐린저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유럽에서 독일 출신의 여의사 실비아 웰터와 만나 결혼했다. 그녀는 샐린저의 첫 아내였으며, 전쟁 후 샐린저는 그녀를 미국으로 데려왔다. 그러나 이 결혼은 오래가지 않았고 몇 달 후 이혼했다.     


이혼 사유는 두 사람 사이에 문화적, 성격적 차이가 컸고, 샐린저는 전쟁 후 트라우마로 인한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두 번째 아내–클레어 더글라스(Claire Douglas):

결혼 시기: 1955년     


클레어 더글라스는 영국 출신의 문학 전공자였으며, 그녀는 샐린저와 결혼해 딸 마거릿(Margaret Salinger)과 아들 매튜(Matthew Salinger)를 낳았다.      


클레어는 샐린저와 1967년까지 함께 살았으나, 샐린저의 은둔적인 성격과 종교적 집착이 커지면서 그와의 결혼 생활이 점점 힘들어졌고 결국 이혼했다.     


이혼 사유는 샐린저의 고립적인 생활 방식과 극단적인 생활 철학, 특히 불교와 관련된 영적 추구가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클레어는 자신과 아이들이 점점 더 소외된다고 느꼈다.     

회고록 <드림캐어>


의 딸 마거릿은 2000년에 회고록 <드림캐처>를 발표했는데 이 책에서 아버지와의 고립된 가족생활과 가족에게 무관심했던 모습을 폭로하기도 했다.     


세 번째 여인–조이스 메이나드(Joyce Maynard)

시기: 1970년대 초


조이스 메이나드는 대학생 시절 샐린저와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당시 메이나드는 뛰어난 에세이로 주목받던 젊은 작가였고, 샐린저는 그녀에게 깊은 관심을 보였다.      


메이나드는 샐린저가 53세였을 때 18세의 나이로 그의 집에 들어가 동거를 시작했지만, 이 관계는 오래가지 않았다.


메이나드는 이후 회고록에서 샐린저와의 관계를 상세히 다루었고, 이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샐린저는 자신이 추구하는 생활 방식과 메이나드의 젊고 활기찬 삶이 서로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고 한다.     


우나 오닐(Oona O'Neill)

우나 오닐은 샐린저가 젊은 시절 가장 사랑했던 여인이다. 우나는 극작가 유진 오닐의 딸로 아름답고 지적인 여성이었고 샐린저와 열렬한 연애를 했다.


그러나 그녀는 샐린저와 헤어진 후 할리우드로 떠나 찰리 채플린과 결혼했다.

     

아버지 유진 오닐, 딸 우나 오닐, 찰리 채플린(자료-나무위키)


샐린저는 우나가 채플린과 결혼한 것을 큰 배신으로 느꼈고 이 사건은 그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녀에 대한 애정과 상실감은 그가 쓴 단편소설에 반영되어 있다.


진 밀러(Jean Miller)

샐린저가 1949년 플로리다에서 만난 14세 소녀 진 밀러는 그가 사랑했던 또 다른 여성이다.


두 사람은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진은 샐린저가 쓴 여러 소설의 영감이 되었다. 이들의 관계는 주로 플라토닉 했지만 샐린저에게 진은 매우 중요한 존재였다.     


샐린저의 삶에서 중요한 여성들은 그의 창작 활동과 개인적 삶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그의 여성편력은 왠지 헤밍웨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부인이 여러 명인 점과 어린 소녀와의 사랑까지, 글을 잘 쓰려면 카사노바여야 하는 걸까? 아니면 잘 쓰기 때문에 카사노바가 되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든다.


아무튼 우나 오닐과의 이별, 실비아 웰터와 클레어 더글라스와의 결혼 실패, 조이스 메이나드와의 관계는 모두 그가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경험들은 그의 은둔적인 삶의 선택과 인간관계에서 오는 실망과 외로움에 대한 깊은 통찰이었고 더러는 그의 작품에 반영되어 있다.     


J.D. 샐린저의 작품 소개

샐린저는 <호밀밭의 파수꾼> 외에도 몇 편의 중요한 단편소설과 중편을 남겼다. 그의 작품들은 주로 인간의 내면과 소외, 영적 탐구를 다루고 있다.      


샐린저의 주요 작품들은 대개 간결한 문체와 심리적 깊이를 느낄 수 있다. 특히 글래스 가문(Glass family)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들은 많은 관심을 받았다.     


<나인 스토리즈(Nine Stories)>(1953)

<나인 스토리즈>는 샐린저의 단편소설 9편을 모은 단편집으로, 샐린저의 문학 세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단편들은 주로 인간의 상처와 고립, 그리고 영적 구원에 관하여 탐구하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단편을 소개한다.     


<바나나피시를 위한 완벽한 날>(A Perfect Day for Bananafish)

이 이야기는 시모어 글래스라는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전쟁에서 돌아온 후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시모어는 그의 아내 머티엘과 함께 플로리다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다.      


시모어는 해변에서 어린 소녀인 시빌과 대화를 나누며 순수한 관계를 맺지만, 내면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자살을 선택한다.      


이 이야기는 인간의 고통과 정신적 혼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에스메를 위하여, 사랑과 고통을 담아>(For Esmé—with Love and Squalor)

이 소설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유럽에서 어린 소녀 에스메와 만난 한 병사의 이야기를 다뤘다.      


병사는 에스메와의 만남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에서 잠시 벗어난다. 이 소설에서 에스메는 순수함과 치유의 상징으로 그려지고 있다.


인간관계가 어떻게 상처받은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웃는 사자>(The Laughing Man)

청소년 야구팀을 이끄는 수수께끼의 ‘치프’라는 인물과 그가 팀원들에게 들려주는 허구의 이야기다. 


‘웃는 사자’의 모험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소설이다.


‘치프’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과의 관계가 끝나가면서 점차 현실 속에서 무너져 가고,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 역시 비극적으로 변한다.      


이 소설은 상상과 현실이 교차하면서, 인간의 상실감과 고통을 강렬하게 묘사하고 있다.     


<프래니와 조이>(Franny and Zooey)(1961)

이 작품은 두 개의 중편 소설 프래니와 조이를 합친 책으로, 글래스 가문의 막내인 프래니 글래스와 그녀의 오빠 조이 글래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대학 생활 중 삶의 의미와 영적 구원을 갈망하게 된 주인공 프래니가 종교적 열망을 가지며 방황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녀는 세속적 가치와 허영에 회의를 느끼며, 일종의 영적 위기를 맞이한다.     


조이에서는 그녀의 오빠 조이가 등장해 방황하는 프래니를 돕기 위해 그녀와 깊은 대화를 나눈다. 조이는 자신도 비슷한 방황을 겪었던 인물로 프래니에게 “삶은 진정성 있는 개인적 신앙을 통해서만 의미를 찾을 수 있다”라고 말하며 그녀를 위로한다.


이 작품은 샐린저가 가진 영적 탐구와 인간 내면에 대한 깊은 고찰을 드러내고 있다.     


샐린저가 쓴 책들


<햇빛 속으로의 긴 여행>(Raise High the Roof Beam, Carpenters and Seymour: An Introduction) (1963)

이 책은 두 개의 중편 소설을 합친 것으로 글래스 가문을 주제로 한 이야기다.     


1. <햇빛 속으로의 긴 여행>(Raise High the Roof Beam, Carpenters)

이 작품은 글래스 가문의 맏형인 시모어 글래스의 결혼식 날, 그의 형 버디가 시모어의 결혼식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회상하는 이야기다.      


시모어는 결혼식 당일에 돌연 사라지고, 남겨진 사람들은 시모어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한 채 당혹스러워한다.


시모어의 신비로운 성격과 그의 내면세계를 엿볼 수 있다.     


2. <시모어: 서문>(Seymour: An Introduction)

이 작품은 시모어의 동생 버디 글래스가 시모어에 대해 회상하는 형식으로 쓰였다.


버디는 시모어가 얼마나 영적이고 지적인 인물이었는지, 그가 남다른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묘사한다.      

그러나 시모어는 그의 내면적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자살한다. 이 작품은 시모어라는 인물의 복잡한 내면을 심층적으로 탐구하며, 인간의 영적 갈등과 고통을 다루고 있다.     


<하파워스 16, 1924>(Hapworth 16, 1924) (1965)

이 작품은 글래스 가문 시리즈 중 마지막으로, 시모어 글래스가 7세였을 때 여름 캠프에서 쓴 긴 편지 형식으로 쓰였다.      


편지에서 시모어는 자신의 깊은 통찰력과 조숙한 지혜를 드러내며,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성숙한 철학적 성찰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작품은 매우 난해하고 장황한 문체로 인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샐린저의 작품은 대개 글래스 가문을 중심으로 한 시리즈가 많다. 그 외에도 여러 단편소설들이 그의 문학적 재능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이야기들은 종종 인간의 내면적 갈등과 영적 탐구를 다루고 있으며 현대 사회에서 느끼는 소외와 고독도 심도 있게 묘사한다.     


샐린저가 은둔한 이유

샐린저는 <호밀밭의 파수꾼> 출간 이후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로 인한 대중의 관심과 유명세를 매우 불편하게 여겼다.


그는 책이 출판되자 자신의 사진을 책에서 없애 달라고 요구했고 홍보 인터뷰도 거부했다.      


특히 영화와 연극 요청은 모두 거절했는데, 그는 “주인공 홀든 콜필드가 이러한 대중적 소비를 싫어해서”라고 말했다고 한다.     


샐린저의 은둔 생활은 1953년 뉴햄프셔 코니시로 이주하면서 본격화되었다.


그는 외부와의 접촉을 최소화하며 전기, 전화도 없는 고립된 생활을 했으며, 이후에도 글을 계속 썼지만 단 한 권도 출판하지 않았다.     


사진 금지 이유

샐린저가 자신의 사진을 책에 넣지 말라고 한 이유는 자신의 사생활 보호에 대한 강한 의지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유명해지는 것을 꺼렸고, 대중이 자신의 외모나 사생활에 대해 말하는 것을 피하려고 했다.      


단 한 번 고등학생에게 인터뷰를 허락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인터뷰가 지역 신문에 대서특필되자 분노하며 더욱 고립된 생활을 이어나갔다.     


샐린저의 이러한 은둔 생활은 그가 자아를 보호하고 명성에 휘둘리지 않으려는 시도였으며, 종교적, 철학적 탐구에 몰두하면서 더욱 깊어졌다.


그는 작품 속 주제처럼, 자신만의 순수성을 유지하려 했다고 한다.     


<호밀밭의 파수꾼>이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 이유

J.D. 샐린저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을 강하게 반대했다. 그의 영화에 대한 거부감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작가가 영화화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이 책은 해마다 25만 부씩 팔려나가고 있다.  그리고 더 아이러니하게도 <호밀밭의 반항아>라는 샐린저의 전기 영화가 극장에 걸렸다. 이 내용은 아래에서 설명하겠다.

  

뉴욕 브로드웨이 전경


창작물의 왜곡에 대한 두려움

샐린저는 자신의 작품이 영화로 각색되면서 원작의 의미가 훼손되거나 왜곡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영화라는 매체가 소설이 전달하려는 섬세한 감정과 주제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강한 소유욕

샐린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강한 애착과 소유욕을 가졌다. 그는 문학이 영화와 달리 독자가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많이 남긴다고 생각한 반면, 영화는 그 상상력을 제한한다고 믿었다.     


첫 영화에 대한 불쾌함

샐린저는 자신의 단편소설 <코네티컷의 삼촌 위글리>(Uncle Wiggily in Connecticut)가 영화화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큰 실망감을 느꼈다.


소설은 1949년 영화 ‘My Foolish Heart’로 각색되었는데, 그는 이 영화가 원작의 본질을 잃었다고 여겨 이후 영화 제안을 일절 거부하게 되었다.     


영화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홀든

작품 속에서 홀든 콜필드는 영화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감정이 있다. 그는 영화가 가식적이고, 위선적이며, 진실을 왜곡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태도는 그가 세상에 느끼는 불신과도 연결된다.


소설에서 홀든은 영화에 대해 여러 번 “구역질이 난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영화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낸다.     


“그 뒷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더 이상 말했다가는 토해버릴 것만 같아서 도저히 못 하겠다. 내가 특별히 이 영화를 엉망으로 망치고 있는 건 아니다. 더 이상 망치고 말고 할 것도 없는 영화였기 때문이다. 어쨌든 토사물을 뒤집어쓰고 싶지 않다면, 이런 영화는 보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홀든이 영화관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영화를 싫어한다. 정말 싫어한다. 그놈의 영화들은 나를 구역질 나게 한다.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영화다.”     


또한 그는 어머니가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을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엄마는 영화를 매우 좋아한다. 그래서 나 보고도 같이 가자고 하지만 나는 영화 때문에 구역질이 난다.”     


이러한 표현들은 홀든이 영화에 대해 얼마나 강한 반감이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곧 작가의 영화에 대한 불쾌감을 투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영화 <호밀밭의 반항아>

<호밀밭의 반항아>는 2017년에 개봉되었으며, J.D. 샐린저의 삶을 다룬 전기 영화다. 이 영화는 샐린저가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경험과 <호밀밭의 파수꾼>을 집필하는 과정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또 그가 어떻게 성공과 명성을 얻었고 이후에 은둔 생활을 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대니 스트롱이 감독하고 니콜라스 홀트가 샐린저 역을 맡았다.

 

영화 <호밀밭의 반항아>


샐린저는 생전에 <호밀밭의 파수꾼>이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을 철저히 거부했다. 그 이유는 위에서 설명하였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것은 <호밀밭의 파수꾼>을 원작으로 한 것이 아니라 샐린저의 삶을 다룬 케네스 슬라웬스키의 <샐린저 평전>을 원작으로 했기에 샐린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제작될 수 있었다.


오리 에피소드

오리 에피소드는 주인공 홀든 콜필드가 자신의 혼란과 불안, 그리고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다.


이 에피소드는 홀든이 뉴욕 센트럴파크 연못에 사는 오리들이 겨울이 되면 어떻게 되는지를 궁금해하는 대화로 나타난다.


홀든은 택시 운전사에게 “겨울이 되면 센트럴파크 공원의 오리들이 어디로 가는지” 묻는다.


그러나 제대로 된 답변을 듣지 못한다. 이는 홀든이 겪고 있는 혼란과 불확실성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다.


뉴욕 택시들


오리들이 추운 겨울을 어떻게 극복하는지를 묻는 그의 질문은 곧 자신이 닥친 삶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상태를 반영한다.     


특히 택시 기사 호라츠에게 질문할 때의 대화는 인상적이다.     


“센트럴파크 남쪽에 있는 연못 말이죠, 거기 오리들 있잖아요. 겨울이 되면 그 오리들은 어디로 가나요? 물이 얼면 오리들은 어떻게 되나요?”     


택시 기사는 홀든의 질문에 진지하게 답하지 않고 오히려 그가 바보 같은 질문을 한다고 생각한다. 이때 홀든은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는 자신의 고립감을 더욱 깊이 느낀다.     


우습지만 겨울철 공원의 오리들이 진짜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서 나는 인터넷을 뒤졌다.     


겨울이 되면 센트럴파크의 오리들은 날씨가 추워지고 물이 얼기 시작할 때 미국 남부나 멕시코, 중앙아메리카 같은 남쪽의 따뜻한 지역으로 이동한다는 아주 간단한 답이 나왔다.

     

센트럴파크 연못의 오리


일부 오리들은 얼지 않은 물과 먹이를 찾을 수 있으면 센트럴파크 공원에 남기도 한다. 오리들은 계절과 환경 변화에 따라 적응하고 생존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택시 운전사가 홀든의 질문에 이러한 실제 답변을 해주었다면 어땠을까?


물론 작가는 오리들이 본능적으로 살아가는 방식처럼 홀든이 세상의 복잡한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전달하려고 일부러 답을 넣지 않았겠지만….     


<호밀밭의 파수꾼>의 노래 오류

소설의 제목인 <호밀밭의 파수꾼>은 홀든과 여동생 피비와의 대화 중에 나온다. 홀든은 아이들이 호밀밭에서 뛰어놀다 절벽에서 떨어질 위험에 처할 때 그들을 지켜 주는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이 말을 하게 된 동기는 다음과 같다.

     

홀든은 일요일에 공원을 거닐다가 가족과 함께 지나가는 한 어린아이가 부르는 노래를 들었다.


꼬마는 노래를 부르며 위험하게 인도와 차도를 오르내렸다. 그 순간 아이의 노랫소리가 홀든의 귓가에 들어왔다.     


“If a body meet a body coming through the rye….”

(호밀밭을 걸어오는 누군가를 만난다면….)     


이 노래를 아이가 잘못 불렀는지 아니면 홀든이 잘못 들었는지 홀든은 다음 내용으로 해석했다.     


“If a body catch a body coming through the rye….”

(호밀밭을 걸어오는 누군가를 붙잡는다면….)     


홀든은 피비와 대화를 이어나간다.     


“너 ‘호밀밭을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는다면’이라는 노래 알지? 내가 되고 싶은 건…”     


이 말을 들은 피비는 곧 오빠의 말을 정정한다.     


“그 노래 가사는 ‘호밀밭을 걸어오는 누군가와 만난다면’이야.”     


그렇지만 피비가 옳았다.

나는 ‘만나면(meet)’을 ‘붙잡는다면(catch)’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작가 샐린저는 홀든이 잘못 알고 있는 오해를 의도적으로 소설에 쓰면서 홀든의 왜곡된 세계관과 세상에 대한 고립감을 드러냈다고 말하고 있다.


호밀밭 전경


홀든은 어린아이들의 순수함을 지키고자 하지만, 현실은 그가 그렇게 간단히 구원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하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결국 홀든의 해석 실수는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그의 내면적 갈등을 상징하는 장치로 샐린저가 의도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소설가는 참 머리가 좋아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살인범의 책장에서 발견되는 책이라는 오명

<호밀밭의 파수꾼>은 ‘살인자의 책장에 꽂힌 책’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그 이유는 몇몇 악명 높은 사건들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범죄와 연루된 인물들이 소유하거나 언급한 책으로, 그들 사이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 이러한 오명을 얻게 되었다. 관련된 주요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Mark David Chapman)-존 레넌 살해 사건

가장 잘 알려진 사례는 1980년 12월 8일, 비틀스 멤버 존 레넌을 살해한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이다.     


채프먼은 존 레넌을 권총으로 쏜 후 체포될 때 “모든 사람이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어야 한다”리고 밝혀서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는 고교 시절부터 이 책을 읽었다고 한다.     


채프먼은 소설 속 주인공 홀든 콜필드와 자신을 동일시한 것으로 보이며, 홀든처럼 사회에 대한 불만과 소외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는 법정에서도 이 책을 언급하며 살인 사건과 관련된 중요한 단서로 여겼다.   

  

각 출판사에서 발간한 <호밀밭의 파수꾼>


존 힝클리 주니어(John Hinckley Jr.)-로널드 레이건 암살 미수 사건

존 힝클리 주니어는 1981년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을 암살하려 했던 인물로, 이 사건 역시 <호밀밭의 파수꾼>과 연관이 있다.      


힝클리 주니어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서 영화배우 ‘조디 포스터’에게 집착하여 그녀의 관심을 끌기 위해 범죄를 저질렀다.


그의 정신적 상태와 고립된 삶이 홀든 콜필드와 비슷하다는 분석이 있었고 힝클리도 이 책을 소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로버트 존 바르도(Robert John Bardo)-레베카 셰퍼 살해 사건

1989년, 배우 레베카 셰퍼를 살해한 로버트 존 바르도 역시 <호밀밭의 파수꾼>을 가지고 있었다. 바르도는 셰퍼에게 집착하여 그녀를 스토킹 하다가 결국 살해했다.      


그의 범행 동기와 정신 상태는 홀든 콜필드와 연관 지어 해석되기도 했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주인공 홀든 콜필드가 사회적 고립감과 반항심을 느끼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에 사회로부터 소외된 인물들이 자신을 홀든과 동일시하고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생긴 것이다.     


물론 <호밀밭의 파수꾼> 자체가 폭력을 선동하는 책은 아니지만, 이러한 사건들로 인해 이 책은 ‘살인자의 책장에 꽂힌 책’이라는 오명을 얻게 되었다.     


주인공이 헤매는 뉴욕의 장소

홀든은 뉴욕 곳곳을 배회하면서,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센트럴파크나 자연사 박물관 같은 장소를 방문한다.


소설은 뉴욕이라는 대도시의 익명성과 혼란을 배경으로 현대 사회에서의 인간 소외와 정체성의 상실을 잘 묘사하고 있다.


라디오 시티 뮤직홀(Radio City Music Hall)

홀든은 라디오 시티 뮤직홀로 영화를 보러 간다. 이 장면에서는 영화와 현실의 차이를 강조하며, 상업화된 문화에 대한 홀든의 반감이 드러난다.


그는 영화가 현실을 왜곡한다고 생각하며 영화를 보는 동안 허무함을 느낀다.     


센트럴파크

홀든이 이야기 중 여러 번 언급한 곳으로, 특히 호수의 오리에 대해 집착하며 겨울에 오리가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한다.


그 외에도 센트럴파크를 늦은 밤에 배회하는 장면도 나온다.     


눈 내린 센트럴파크


홀든이 말하는 연못은 센트럴파크의 남동쪽 부분에 있는 ‘The Lagoon’이다. 주변에 ‘플라자 호텔’과 59번가가 있다.


이 연못은 실제로 오리들이 겨울에 이동하는 자연스러운 변화에 대한 홀든의 질문을 나타내며, 그의 불확실성과 불안감을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센트럴파트에는 곳곳에 연못이 있다.


뉴욕 자연사 박물관(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

홀든은 자연사 박물관을 방문하며 그곳의 변하지 않는 전시물에 대한 애정을 표한다.


박물관은 홀든이 변화를 두려워하고, 세상의 혼란스러움에 대해 느끼는 불안감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박물관의 전시물이 자신에게 위안을 준다고 말한다.     


"난 그 자연사박물관이 좋아. 그 안에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으니까. 그게 제일 좋아. 어디 가도 다 똑같아. 새로울 게 하나도 없어. 네가 무얼 하든, 네가 어떻게 변하든 말이야, 그 전시물들은 그대로야. 그건 절대로 변하지 않지. 유일하게 변하는 건 너 자신뿐이야."


자연사 박물관


그리니치빌리지 (Greenwich Village)

홀든은 그리니치빌리지의 한 바에서 친구를 만나 술을 마신다. 이 장소에서는 홀든의 외로움과 사회적 부적응이 더욱 드러나며, 그는 어른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카페테리아(Bickford’s Cafeteria)

홀든은 뉴욕 시내의 여러 카페와 레스토랑을 방문하는데, 그중 하나가 빅퍼드 카페테리아다. 여기서도 홀든은 주위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점점 더 고립되어 가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     


그랜드 센트럴 역

홀든이 안톨리니 선생님 집에서 도망치듯 나와서 역에서 노숙하고 이후 가족에게 돌아가기 전 피비에게 마지막으로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걸어갔던 곳이다.

      

센트럴역


역에서의 장면은 그가 더는 갈 곳이 없다는 절망감을 나타내며, 그의 외로움이 극대화되는 장소 중 하나다. 그랜드 센트럴은 지금도 뉴욕에서 가장 유명한 기차역 중 하나다.     


이렇게 다양한 뉴욕의 장소들이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홀든의 심리적 상태를 반영하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울러 뉴욕의 복잡한 도시 환경은 홀든의 내면세계와 그의 고립감을 더욱 강조하는 배경이 된다.     


친구와 함께 둘러본 뉴욕

내가 처음 미국에 갔을 때는 오빠를 따라 이민 간 엄마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당시 나는 서른두 살이었으나 결혼 전이었고, 엄마와 몇 년간 떨어져 지내다 보니 때때로 외롭고 지칠 때 엄마가 몹시 보고 싶었다.     


출판사에 다니고 있던 나는 1년 휴가를 모아 겨우 2주간의 여행을 허락받았다. 그러나 비자를 받으러 간 미국 대사관에서는 나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살폈다.


당시는 미국 여행을 가더라도 비자가 필요한 시기였다.     


아침 일찍 광화문에 있는 미국 대사관으로 가서 길게 줄을 섰다. 비자를 받을 사람이 많아서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담벼락에 빙 둘러서서 기다렸다가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왠지 힘없는 약소국의 현실을 대변하는 것 같아 서글펐던 순간이었다. 지금은 인터넷으로 ESTA 비자를 쉽게 받을 수 있으니 참 편리한 셈이다.  

   

뉴욕의 빌딩숲


대사관 직원은 도장을 빨리 찍어주지 않고 이것저것 물었다. 마치 ‘쇼생크 탈출’에서 가석방 심사를 받는 모건 프리먼을 앞에 두고 가결을 찍을 것인지 부결을 찍을 것인지를 놓고 여러 가지 질문을 해대는 모양새였다.      


내 경우는 미혼에 오빠와 엄마가 미국에 있으니 들어가서 나오지 않고 눌러앉을까 봐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보는 탓이었다.      


그동안 들어온 말로는 나와 같은 경우 미국으로 들어가 6개월만 지나면 진짜 눌러앉을 수 있는 길이 있다고 했다.


물론 공식적으로 허가받지 않았으니 비자가 완료된 시점부터는 숨어서 살아야 했다.     


아무튼 직원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연이어서 했다.     


“여기서 무슨 일을 합니까?”

“출판사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어떤 출판삽니까?”

“**출판삽니다.”

“거기서 하는 일이 뭡니까?”

“편집부 차장으로 원고를 쓰거나 고치고 있습니다.”

미국에는 얼마나 머물 계획입니까?”

“여름휴가 2주 동안입니다.”

“미국에서 살 생각은 없습니까?”

“없습니다.”

“어머니와 가족이 있는데요?”

“거기에는 제가 할 일이 없습니다. 저는 여기서 하는 일이 좋습니다.”     


한참 질문을 퍼붓던 직원은 내 마지막 말에 의심이 풀린 듯 오케이 하며 도장을 찍어주었다. 꼴랑 한 달짜리 비자였다.     


대한항공 기내식


그렇게 처음으로 미국 땅을 밟았다. 미국으로 들어가는 입국심사에서도 같은 질문을 받았다. 그곳에서는 조금 후하게 두 달짜리를 찍어주었다.


실제로 오빠와 만나자 농담 삼아 말했다.     


“한국도 그렇고 여기도 그렇고 내가 돌아가지 않을까 봐 엄청나게 질문 공세던데?”

“그냥 돌아가지 말고 6개월 숨어 살래? 2년만 들키지 않으면 영주권 나오는데.”

“내가 여기서 할 일이 없잖아?”

“할 일이 왜 없어? 공부를 계속해도 되고, 일을 해도 되고.”

“공부는 하기 싫고, 영어가 안 되는데 일자리가 있겠어?”

“많아. 우체국에 가서 포장만 하면 한마디도 할 필요 없어.”

오빠와 나는 큰소리로 웃었다.     


오빠는 공항에서 일하는 미국 공무원이었다. 평일에는 시간을 내기 힘들어 엄마와 어린 조카 셋이서 워싱턴 관광을 며칠 나갔고 마침 친구가 뉴욕에서 유학 중이어서 혼자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타고 뉴욕으로 가기로 했다.     


처음 타보는 그레이하운드 버스에는 맨 뒤쪽에 화장실이 있었는데 그것이 매우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하필이면 옆좌석에 덩치가 큰 흑인이 앉았다. 인종차별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5시간이나 가야 하는 옆자리에 남자 흑인이 앉은 것은 긴장되었다. 일단 자리가 좁았다.     


한참 버스가 달리는데 갑자기 옆좌석 남자의 손이 내 앞을 쓱 지나더니 창문을 열었다. 남자는 창문을 열어도 되느냐는 질문조차 하지 않았다. 솔직히 너무 놀랐지만, 겁이 나서 불쾌한 내색도 하지 못했다.     


뉴욕으로 달리는 내내 밖을 감상할 사이도 없이 시간은 더디 흘러갔다. 나는 창가 쪽으로 바짝 붙어 앉아 불편했고 마음대로 몸을 움직일 수도 없어 괴로웠다.


다행히 남자는 뉴욕까지 가지 않고 중간에서 내렸다. 그제야 나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 옆좌석은 도착지까지 비어서 갔는데 정말 편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멀리서 손을 흔드는 낯익은 친구의 얼굴이 보였다. 몇 년 못 본 사이에 친구는 많이 변해 있었다. 공부만  하기에도 시간이 없을 텐데 왠지 세련된 느낌이 풍겼다.     


친구는 나를 식당으로 안내했다. 무슨 음식을 먹었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아마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가 미국까지 왔다고 맛있는 음식을 시켜주었던 것 같다.   

  

한적한 센트럴파크


“오늘은 피곤할 테니까 우리 센트럴파크에 가서 쉬다가 저녁 먹고 들어가자.”     


나는 친구가 안내하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당시만 해도 여행 다닐 때 그리 계획적이지 않던 나는 뉴욕에서 볼 게 무엇인지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그저 누구나 다 아는 자유의 여신상,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타임스 스퀘어, 센트럴파크가 전부였던 것 같다.


   

센트럴파크에서 내기 찍어준 친구 사진


처음 가는 센트럴파크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그동안 밀렸던 이야기를 나누며 공원 여기저기를 걸어 다녔다. 실은 그때의 기억이 잘 생각나지 않아 앨범을 찾아보았다.

    

엠파이어 스테이드 빌딩


지금은 뉴욕을 많이 다녀서 유명 명소는 다 알고 있지만, 그것이 그때의 기억인지 최근의 기억인지 범벅이 되어 알 길이 없다.     


아무튼 <호밀밭의 파수꾼>에 나오는 장소들은 대부분 다 다닌 것 같다.      


친구는 비싼 뉴욕의 물가 때문에 외국인 친구와 함께 빌린 작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그것도 지하철을 이용해 뉴욕 시내에서 몇 정거장 떨어진 퀸즈였다.     


“룸메한테 민폐 끼치는 거 아냐?”

“아니야 줄리도 가끔 친구 데리고 와. 오히려 내 친구가 거의 안 오는 편이지.”

“룸메 이름이 줄리야?”

“응.”     


우리는 저녁에 먹을 간식거리까지 야무지게 챙겨 친구의 아파트로 향했다. 한국에 있어도 밤을 새워 이야기할 판에 미국으로 떠난 지 5년이나 된 친구와 나눌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내일은 강행군이야, 우리 자두자.”     


친구의 말에 까무룩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간단하게 친구가 만들어준 달걀 넣은 토스트와 커피를 마셨다.     


나는 친구가 이끄는 대로 뉴욕 시내를 누볐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자유의 여신상, 브루클린 브리지, 월가 등등이었다.   

   

자유의 여신상


 년 후 오빠, 가족들과 다시 뉴욕을 방문했을 때 유명 관광지는 대부분 그때 다 다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과 공부를 병행하느라 많이 지친 친구였는데 그래도 오랜만에 만난 나를 극진히 대접한 마음 씀씀이가 고마울 따름이었다.     


나는 뉴욕에서 3일을 보낸 후 버지니아로 돌아왔고 친구는 그로부터 1년 후 귀국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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