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폭포가 멈춘 날>(The Day the Falls Stood Still)은 캐시 마리 뷰캐넌(Cathy Marie Buchanan)의 첫 번째 소설로, 캐나다의 나이아가라 폭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감동적인 역사 소설이다. 이 소설은 나이아가라 강가 사람 ‘윌리엄 레드 힐’의 역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폭포가 멈춘 날> 책
소설의 배경은 1915년에서 1923년 사이 나이아가라 폭포 근처의 작은 마을로, 주인공은 베스 듀얼린(Bess Heath)이다. 부잣집 막내딸이었던 베스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집안의 형편은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베스는 가족의 경제적 어려움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세상과 싸워나간다.
<폭포가 멈춘 날>은 캐나다 작가 캐리 마리 뷰캐넌의 데뷔 소설이다. 2009년 9월 캐나다와 미국에서, 2010년 2월 영국과 이탈리아에서 출간되었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출간되지 않았고 원서는 교보문고에서 구할 수 있다.
줄거리 요약
소설은 1915년의 나이아가라 폭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17세의 베스는 나이아가라 전력 회사 사장의 막내딸로 풍족하게 살았다. 그러나 집안의 몰락으로 기숙학교에서 퇴학당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집안의 상황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전력 회사 사장이었던 아버지는 일자리를 잃었고, 그녀의 어머니는 한때 자신을 접대했던 사교계 여성들에게 재봉 일을 받는 신세가 되었다. 또 활기찬 언니 이사벨은 침실에 틀어박혀 거의 먹지도 않고 두문불출이었다.
베스는 집으로 돌아오던 날 밤, 트롤리 승강장에서 우연히 톰 콜(Tom Cole)을 만났다. 이후 그녀는 가족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설명할 수 없이 톰에게 끌린다.
현지에서 신비로운 인물로 알려진 톰 콜은 전설적인 강의 수호자이자 나이아가라 폭포의 자연을 보호하는 사람이다.
나이아가라 폭포
톰은 자신의 할아버지로부터 이어받은 지식을 통해 폭포와 강의 위험을 예측하는 특별한 능력을 지녔다. 그는 폭포의 강력한 힘을 이해하고, 자연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예언자적인 역할을 한다.
그의 조상은 전설적인 나이아가라 폭포의 보트 조종사였으며, 톰 역시 폭포와 강물에 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베스의 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톰의 소박한 삶을 인정하지 않았고 그녀와 톰의 사랑은 여러 가지 사회적 압력에 직면하게 된다.
소설은 1차 세계 대전, 산업 발전,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탐구를 담고 있다. 특히 나이아가라 폭포라는 상징적인 자연 현상이 산업화와 전쟁의 파괴적인 영향 아래에서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보여준다.
톰의 대담한 구조는 그를 지역 영웅으로 만들고 폭포의 힘을 이용하려는 전력 회사에 위협적인 존재가 된다. 두 사람의 삶이 얽히면서 베스는 자신이 원하는 사랑과 가족 사이에서 고통스러운 선택을 해야 했다.
톰은 전력 회사의 근시안적인 계획을 보고 한탄하며 말했다.
“강은 크리스마스 때의 칠면조처럼 케이블과 콘크리트, 강철로 묶여 있어요.”
나이아가라강 전경
폭포의 물과 아래의 바위가 격렬하게 만나는 것처럼, 톰과 17세 베스의 우연한 만남은 폭발적인 효과를 낸다.
이 이야기는 나이아가라 폭포의 장엄한 자연, 캐나다의 역사적 변천, 그리고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깊이 탐구한다.
폭포의 상징성은 인간의 무력함, 자연의 힘, 그리고 생존을 위한 투쟁을 대변하고 있다. 그리고 베스와 톰의 사랑은 사회적 계급, 시대적 변화, 자연과의 조화를 통해 성장하고 도전받는다.
작가는 폭포가 떨어지는 굉음을 배경으로 젊은 커플의 낭만적인 시련과 강의 천연자원 착취에 대한 역사적 드라마를 엮어냈다.
작가는 강의 흐름이 인간의 심장과 마찬가지로 위협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소설의 주제
소설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 사회적 변화, 전쟁의 영향, 사랑과 희생, 그리고 개인의 정체성을 중심 주제로 다루고 있다.
베스와 톰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 캐나다의 변화하는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으며 특히 폭포의 상징적 의미가 두드러진다.
역사 속 인물 윌리엄 레드 힐(William Red Hill Sr.)
윌리엄 레드 힐은 캐나다 나이아가라 폭포 지역의 전설적인 인물로, 나이아가라 강과 폭포의 위험과 경이로움을 잘 보여주는 강의 수호자이자 영웅적인 구조원이다.
그의 삶은 나이아가라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폭포의 자연을 배경으로 한 용기 있는 행동과 위대한 업적으로 남아 있다.
생애 및 배경
윌리엄 레드 힐은 1888년 10월 5일에 캐나다 온타리오주 나이아가라 폭포 근처에서 태어났다. 그는 생애 대부분을 나이아가라 강가에서 보냈고 자연스럽게 폭포와 강의 위험을 다루는 법을 익혔다.
그의 별명인 ‘레드’는 그의 붉은 머리에서 유래했다. 폭포 근처에 살던 그는 일찍부터 나이아가라강의 격류와 폭포의 힘을 체험하며 자랐고, 자연을 대하는 두려움과 경외감을 가졌다.
구조 활동과 영웅적 업적
레드 힐은 구조원으로 유명하다. 그는 나이아가라강에서 수많은 생명을 구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출하거나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구조하는 일을 평생 해왔으며, 이는 그가 나이아가라 폭포 지역에서 ‘강의 영웅’으로 불리게 된 주요 이유다.
그는 191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활동하면서 수많은 구조 작업을 해왔다. 공식 기록에 따르면 그는 28명 이상의 사람들을 나이아가라강에서 구조했다.
그의 구조 활동 중 가장 유명한 사건은 1918년 미국의 상선인 ‘마디 오미’(the Scow and the Madie Omie)가 폭포 근처에서 좌초되었을 때, 그 배에서 사람들을 구해낸 일화다. 이 사건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고, 레드 힐의 용기는 널리 알려졌다.
도전과 스턴트
윌리엄 레드 힐은 구조원으로서 뿐만 아니라 스턴트맨으로도 유명했다.
그는 나이아가라강의 격류를 뗏목이나 특수 제작된 배로 도전하면서 여러 차례 스릴 넘치는 시도를 감행했다. 이러한 시도들은 위험천만한 모험이었지만, 그의 담력과 기술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나이아가라폭포의 성난 물줄기
그의 가장 유명한 스턴트 중 하나는 1930년에 그가 직접 만든 강철 배를 타고 나이아가라 급류를 통과한 사례다. 이 시도는 매우 위험했지만, 레드 힐은 성공적으로 수행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가족의 영향
레드 힐의 아들인 윌리엄 레드 힐 주니어 역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여러 차례 나이아가라강과 폭포에 도전했다.
그러나 그의 아들은 위험한 시도를 하다가 목숨을 잃었고 이는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유산
윌리엄 레드 힐은 나이아가라 폭포 지역 사회에서 영웅적 인물로 존경받고 있으며, 그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물과 이야기가 남아 있다.
그는 나이아가라강의 수호자, 위험을 감수하고 사람을 구하는 용감한 구조원으로서 기억되고 있다. 지금도 그의 이야기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둘러싼 여러 전설과 함께 이어지고 있다.
저자 소개
캐시 마리 뷰캐넌(Cathy Marie Buchanan)은 캐나다 출신의 소설가로 그녀의 첫 번째 소설 <폭포의 마지막 날>은 2009년에 출간되어 큰 주목을 받았다.
캐시 마리 뷰캐넌(출처- Heather Pollock)
그녀는 역사적 사실과 감정적인 서사를 결합한 작품을 통해 독자들에게 몰입감을 주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캐시 마리 뷰캐넌은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가까운 지역에서 자랐으며, 그 지역의 역사와 자연경관이 그녀의 작품에 고스란히 표현되어 있다.
뷰캐넌은 토론토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으나 소설가로서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문학의 길로 들어섰다. 그녀의 작품은 깊은 역사적 배경 연구와 섬세한 감정 묘사가 특징이며 소설은 대중과 평단 모두에게 사랑받았다.
작가가 쓴 나머지 두 권의 소설
<페인팅 소녀>(The Painted Girls) (2013)
19세기 후반 파리를 배경으로 한 소설로, 프랑스 화가 에드가 드가(Edgar Degas)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쓰였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반 괴템 자매는 삶이 뒤바뀐 것을 알게 된다. 세탁소에서 일하며 어머니가 버는 돈은 생활을 유지하기에 매우 부족했다. 결국 집을 비워주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다.
일자리가 없는 마리는 파리 오페라로 파견되어, 유명한 발레단에 들어가 에드가 드가를 만나기 위해 훈련을 받는다.
<페인팅 소녀> 책 표지
언니 앙투아네트는 에밀 졸라의 자연주의 걸작 라소무아르를 각색한 무대에서 단역으로 취직하고 위험한 청년과 사랑에 빠진다. 소설은 당시의 역사적 맥락과 가난, 예술가와 모델 간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심오한 예술적, 문화적, 사회적 변화의 순간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문명사회의 어두운 충동에 취약해진 두 자매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쓸 때 드가의 ‘14세의 어린 무희’의 실제 모델과 그 시대의 가장 유명한 형사 재판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블랙 레이크의 딸(Daughter of Black Lake) (2020)
철기 시대의 브리튼을 배경으로 한 공동체가 로마 제국의 침략에 직면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마법과 전통이 얽힌 이 시대적 배경 속에서 한 가족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 문화적 변화와 개인의 운명에 대해 고찰한다.
<블랙 레이크의 딸> 책 표지
서기 1세기 가뭄철을 배경으로 소설이 시작된다. 숲과 밀밭으로 둘러싸인 북부의 안개 낀 습지에 로마인이 남동쪽으로 수백 마일을 침략해도 닿지 않는 곳에 한 공동체의 정착지가 있었다.
이곳의 삶은 단순했다. 씨를 뿌리고 거두며 수확기에 필요한 것을 제공해 줄 대지의 신에게 경의를 표했다.
하지만 17년 후 이 정착지에 변화가 생겼다. 기근으로 투쟁이 시작되었고 군사력을 가진 외부인이 호시탐탐 이 땅을 노리고 있었다. 어린 딸에게 닥친 위험은 어머니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그러나 소녀는 놀라운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세상이 충돌하고 위험이 위협을 가할 때, 그녀는 모든 것을 구해냈다.
어린 딸은 성인이 되어 평생 함께 경작했던 청년과 달콤하게 사랑과 풍요의 미래를 꿈꾼다.
오랫동안 잊힌 시간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고대 세계를 되살려내고 상상할 수 없는 시련에 직면한 잊을 수 없는 인물을 소개하고 있다.
이처럼 작가의 세 작품은 모두 역사적 배경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의 복잡한 감정과 관계를 다루고 있으며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중요한 주제로 등장한다.
그녀의 데뷔 소설인 <폭포의 마지막 날>은 뉴욕 타임스에서 베스트셀러로 선정되었고 캐나다에서는 10년 동안 꼭 읽어야 할 소설 40선에 올랐다. 현재 작가의 작품은 9개 언어로 번역되어 팔리고 있다.
작가는 최근 Western University에서 BSc(생화학 학사)와 MBA 학위를 취득했으며 공인 요가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소설에서 나이아가라 폭포를 언급한 문장
<폭포의 마지막 날>에서 나이아가라 폭포는 중요한 상징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소설은 폭포를 자연의 힘, 시간의 흐름, 인간의 무력함과 연결 짓는 방식으로 묘사하고 있다. 몇 가지 인상적인 폭포 관련 글귀는 다음과 같다.
나이아가라 폭포
“The roar of the falls was ever-present, a constant hum in the backdrop of our lives.(폭포의 굉음은 항상 존재했고, 우리 삶의 배경에는 끊임없는 윙윙거림이 있었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이 소설에서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삶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는 존재다.
폭포의 소리는 항상 그들의 삶에 배경으로 존재하며, 그것은 마치 폭포가 살아 숨 쉬는 존재처럼 묘사되고 있다.
이 문장은 폭포의 지속적인 힘과 인간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The falls, vast and unyielding, reminded us of nature's dominion over man.(광대하고 완고한 폭포는 우리에게 자연이 인간을 지배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이 문장은 폭포의 광대함과 변함없는 힘을 강조하고 있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의 힘을 상징하며, 소설에서 여러 번 등장하는 자연과 인간의 갈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The mist from the falls carried the history of the land, as though each drop had witnessed the centuries unfold.(폭포에서 나오는 안개는 땅의 역사를 담고 있었다. 마치 물방울 하나하나가 수백 년의 역사를 목격한 것처럼.)”
폭포에서 뿜어져 나오는 안개는 단순한 물방울 그 이상으로 묘사되고 있다. 폭포의 물은 과거부터 이어져 온 시간의 흐름을 상징하며, 자연이 인간의 역사를 지켜온 증인이자,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는 장치로 사용된다.
“Tom always said the falls held secrets, a voice that only those who listened closely could hear.(톰은 항상 폭포에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말했어요. 그 목소리는 주의 깊게 듣는 사람만이 들을 수 있었어요.)”
폭포는 소설에서 신비로운 요소로 등장하며, 주인공의 연인 톰은 폭포와 깊은 연결을 맺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폭포가 단순한 물줄기가 아니라, 무언가 더 큰 존재를 담고 있다고 믿는다. 이는 자연과 인간의 영적 교감을 나타내는 중요한 대목이다.
이러한 글귀들은 소설에서 나이아가라 폭포를 단순한 배경 이상으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상징적 장치로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폭포는 시간의 흐름과 자연의 힘을 상징하고 주인공들의 삶과 감정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나이아가라 폭포의 전설 및 특이한 이야기
나이아가라 폭포는 다양한 전설과 특이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원주민의 신화부터 사람들의 도전과 모험까지, 나이아가라 폭포와 함께 전해오는 전설과 흥미로운 이야기를 소개한다.
나이아가라 폭포의 원주민 전설 - 마이덱 왕 이야기
나이아가라 폭포에 얽힌 가장 오래된 이야기 중 하나는 이 지역의 원주민, 특히 온타리오주와 뉴욕주에 거주하던 이로쿼이족과 호데노사우니 족의 전설이다.
아주 오래전, 나이아가라 폭포 근처에 평화롭게 번성하던 마을이 있었다. 어느 날 강에서 나오는 거대한 뱀이 마을을 습격해 주민들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그 뱀은 나이아가라강에 살며 매년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제물로 바치라고 요구했다.
어느 해 마이덱 왕의 딸인 레류아가 제물로 선택되었다. 그녀는 강에 제물로 바쳐지기 전 밤에 폭포 아래에서 전설 속 강의 신을 만났다. 강의 신은 뱀을 물리치기 위해 나이아가라 폭포의 물살을 사용하라고 가르쳐 주었고, 레류아는 스스로 폭포 아래로 뛰어내려 뱀과 싸워 마을을 구했다.
이 전설은 나이아가라 폭포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자연의 신비로운 힘이 깃든 장소로 여겨졌음을 상징한다.
나이아가라 폭포
애니 에드슨 테일러(Annie Edson Taylor)의 모험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벌어진 가장 유명한 사건 중 하나는 애니 에드슨 테일러의 도전이다.
1901년 늙고 가난한 한 여성이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몸을 던졌다. 주인공은 애니 에드슨 테일러라는 여성으로 당시 나이가 63세였다.
애니 에드슨 테일러는 직접 주문 제작한 오크통을 타고 나이아가라 강으로 뛰어들었는데, 통은 53m 높이의 나이아가라 폭포로 떨어졌고 그녀는 살아남았다.
테일러는 1838년 미국 뉴욕 오번시에서 태어났다. 제분업을 하던 아버지는 그녀가 12세 되던 해에 숨졌지만, 그녀는 유산 덕에 별 어려움 없이 지냈고 교사가 되어 결혼해서 아들도 낳았다. 그러나 아이가 유년을 못 넘기고 숨지고 곧이어 남편과도 사별하자 학교를 그만두었다.
이후 그녀는 근근이 생을 이어갔다. 63세의 테일러는 돈이 바닥났고 불행한 노후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도 도전한 적 없는 도전을 하기로 계획했다.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뛰어내리기로 생각한 것이다. 테일러의 결심은 획기적이었고 그녀는 성공하면 명예와 돈이 따를 것이라고 믿었다.
테일러는 먼저 1.4m 높이, 약 73kg의 오크통을 주문 제작했다. 접합 부위는 철판으로 보강하고 내부는 솜으로 감싸 추락의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게 만들었다. 폭포에서 떨어지기 이틀 전, 그녀는 자신의 고양이를 오크통에 태워 미리 실험했는데 고양이는 죽지 않았다.
테일러의 이야기를 담은 <폭포의 여왕> 책
테일러는 매니저를 고용해서 구경꾼들을 모았다. 그녀는 나사못으로 뚜껑을 고정한 후 바람 채운 자전거 튜브를 산소탱크 대용으로 준비했다. 그리고 폭포를 향해 떠내려갔다. 수많은 인파가 숨을 죽이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약 20분 뒤 무사히 구조된 그녀는 이 사건으로 일약 유명인이 되어 도시를 돌며 강연을 했다. 그러나 그녀의 계획과는 달리 막상 그 용감한 여인이 볼품없는 늙은 여자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금세 흥미를 잃었고 점점 잊혀갔다.
테일러는 기대한 만큼 큰돈을 벌지 못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매니저가 나무통을 훔쳐 달아났다.
이후 젊고 예쁜 여자를 ‘폭포의 여왕’으로 둔갑시켜 공연을 올리는 일도 발생했다. 결국 테일러는 폭포 근처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자신의 사진이 들어간 엽서와 책자를 팔며 남은 생을 살았다.
이 이야기는 <폭포의 여왕>이라는 제목의 그림책으로 사계절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저자는 판타지 대가 크리스 반 알스버그다. 저자는 <주만지>와 <북극으로 가는 열차>로 칼데콧 상을 두 번 받았고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고장 난 배’ 이야기
1918년 나이아가라강에서 철제 바지선이 좌초되는 사건이 있었다. 그 배는 폭포 상류에서 표류하다가 나이아가라 폭포 근처 암석에 걸려 좌초되었고, 두 명의 승무원이 구조되기 전까지 수 시간 동안 목숨을 걸고 폭포 위에서 기다려야 했다.
이 사건은 지역 사회와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는데 붉은 힐이라는 구조원이 그들을 구출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바지선은 현재도 나이아가라강 위에 남아 있는데 ‘아이언 스코우(Iron Scow)’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관광 명소가 되었다.
나이아가라 폭포
나이아가라 폭포의 ‘유령 이야기’
나이아가라 폭포 주변에는 다양한 유령 이야기와 초자연적인 전설이 전해진다. 그중 하나는 ‘소령 제임스 도노휴’라는 군인 유령에 관한 이야기다.
제임스 도노휴는 1812년 전쟁 중 나이아가라 폭포 근처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의 유령이 폭포 주변을 떠돌아다닌다는 전설이 있다.
또 나이아가라강에 수많은 사람들이 익사하면서, 그들의 혼령이 폭포 근처에서 목격되었다는 이야기도 자주 전해진다.
1969년의 나이아가라 폭포 ‘멈춤’ 사건
1969년에는 나이아가라 ‘폭포 멈춘 사건’이 있었다. 미국의 공병대가 폭포의 침식을 연구하기 위해 나이아가라 폭포의 물줄기를 임시로 막은 것이다.
수천 톤의 물이 흘러내리던 폭포가 갑자기 멈추자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그전에 보지 못한 바닥의 암석들을 관찰했다.
폭포가 멈춘 광경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이었으며, 이는 역사상 거의 유일한 인공적 조치로 폭포를 멈춘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에블린 딕(Evelyn Dick)의 ‘토르소 사건’
나이아가라 폭포와 관련된 가장 기이한 사건 중 하나는 에블린 딕이라는 여성의 이야기다.
1946년에 에블린은 남편의 몸통이 발견된 후 살인 혐의로 체포되었다. 이 사건은 ‘토르소 사건’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에블린은 처음에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녀는 후일 증거 부족으로 석방되었다. 그러나 나이아가라 폭포의 신비로운 이미지에 이러한 범죄 사건이 더해지면서 폭포는 더욱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장소가 되었다.
두 번째 나이아가라 방문기
두 번째 나이아가라를 방문했을 때는 모두 10명이 출발했다.
아이들의 여름방학 동안 한 달을 계획했던 여행이라 긴 휴가를 쓸 수 없는 남편은 가지 못했다. 사촌 오빠 부부는 며느리와 손주 2명을 합해 5명이 왔고, 나와 우리 아이 2명, 오빠네 부부와 조카 1명, 그리고 엄마까지 모두 12명이 복닥복닥 한 달을 함께 살았다.
미국 집들이 워낙 크니 망정이니 한국 아파트 같으면 어림없는 일이었다. 12명이 함께 식탁에 앉을 공간도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모두 3가구라 자신의 아이들은 각자 챙기기로 했으나 밥 한번 먹으려면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버지니아 동네 전경과 앞마당, 뒷마당
나는 몇 번이나 간 곳을 또 가고 또 가야 했다. 오빠가 미국으로 놀러 온 친척이나 지인들을 안내하는 루트는 대개 비슷했다. 물론 온 사람들의 일정에 따라서 약간씩 다르기는 했으나 우리에게 주어진 일정은 다음과 같았다.
*워싱턴 일주일
*뉴욕 5일
*해수욕장 2일, 나이아가라 1일, 버지니아 인근 3일
*리즈버그 아울렛 쇼핑 외 가고 싶은 곳
워싱턴 일주일 여행은 출근하는 오빠 차에 타고 사촌 오빠 다섯 가족과 우리 식구가 함께 나갔다. 우리를 워싱턴 아무 곳에나 내려주면 우리가 알아서 걸어 다니며 구경했다.
워싱턴 편에서 설명했듯이 차가 없어도 워싱턴은 볼 곳도 갈 곳도 많기에 그리 큰 어려움은 없었다.
백악관과 워싱턴 공원, 여름에는 오리떼를 흔히 만날 수 있다.
실컷 걸어 다니고 먹고 쉬고 하다가 지치면 오빠나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면 우리를 데리러 시간이 되는 사람이 와서 집으로 데려다주었다.
뉴욕은 오빠가 주말을 이용해 휴가를 앞뒤로 붙여 함께 다녀왔다. 마침 조카가 뉴욕에서 공부 중이라 임대하고 있는 아파트가 있어서 숙박비는 절약할 수 있었다.
자유의 여신상과 타임스퀘어의 낮 전경
아파트는 한국으로 치면 15평형 정도 되는데 그 많은 식구들이 거실까지 점령하고 누워 잠을 잤다. 뉴욕에서의 며칠은 난민촌이 따로 없었다. 그래도 뉴욕은 오빠의 안내로 다녔기에 그나마 편안했다.
해수욕장은 메릴랜드에 있는 오션 시티(Ocean City, Maryland)로 다녀왔다.
오션 시티는 메릴랜드 주 동부 해안에 있는 해수욕장인데 대서양과 접해 있어 인기가 있는 곳이다.
대서양과 접해 있는 오션 시티 해수욕장
해변의 길이는 10마일(약 16km)에 달하는 깨끗한 해변으로 유명하다. 한쪽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이공원도 있었다.
“이쪽 바다는 태평양이 아니라 대서양이야.”
오빠는 대서양을 힘주어 말했다. 우리는 태평양이 아닌 대서양에서 해수욕을 한다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아무튼 인원이 많다 보니 아이들은 즐거워했지만, 주말에 모두 모여 밥 한 끼 먹으려면 준비도 힘들고 설거지가 산더미였다.
뒷마당에서 바베큐 파티
나중에는 식기세척기가 고장 나서 수리해야 하는 민폐를 끼치기도 했다. 그래도 여럿이라 재미있었다. 어디를 가든 항상 왁자지껄하고 웃음이 끊이지 않던 한 달이었다.
나이아가라는 하루 일정으로 짜였다.
“가는 데만 열 시간 걸린다면서 하루에 가능해?”
“가능해. 나만 고생하면 돼. 여기 온 사람들 다 그렇게 다녔어.”
엄마와 2박 3일로 다녀온 전적이 있었기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운전은 오빠와 언니가 번갈아 가면서 했는데 대부분 오빠가 했고 언니는 아주 잠깐씩 교대해 주었다.
나이아가라 폭포까지는 버지니아에서 새벽에 출발해 가는 데만 10시간이 걸렸다. 중간에 휴게소에 잠깐 들른 것 외에는 대부분 차 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워낙 오래간만에 만난 사촌오빠와 오빠는 옛날이야기를 하느라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어른들은 그래도 견딜만했으나 아이들은 좀이 쑤셔 몸살을 앓았다. 나이아가라 폭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오후 3시가 넘어 있었다. 우리는 그야말로 온몸을 기지개 켜며 차에서 내렸다.
서둘러 표를 끊고 폭포를 보러 내려갔다. 나는 첫 번째보다 감흥은 덜했지만 역시 좋았다. 처음 폭포를 본 사촌 오빠 가족들은 연신 감동적인 표정이었고 아이들도 물보라를 피하면서도 어떻게든 폭포를 마주 보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폭포 바로 앞까지 가는 배
우리는 폭포를 먼저 보고 나이아가라폴스 주립 공원을 둘러보았다.
나이아가라폴스 주립 공원(Niagara Falls State Park)은 뉴욕주에 있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공원이다. 1885년에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Frederick Law Olmsted)의 설계로 만들어졌다.
우리는 공원을 둘러보기 위해 트롤리버스를 이용했다. 30분 동안 공원을 도는 버스는 마음에 드는 곳에서 내려 머물다 다음 트롤리를 타면 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공원을 도는 트롤리버스
공원 내에는 다양한 하이킹 코스가 있었다. 지난번에 왔을 때 걸었던 길이었다. 이 길은 폭포 근처의 전망대를 지나는데 나이아가라강의 아름다운 경관을 즐길 수 있다. 그중 가장 인기 있는 산책로는 고트 아일랜드(Goat Island)다.
공원의 나무는 폭포 주변의 독특한 기후와 환경 덕분에 여러 가지 식물군이 번성했다.
특히 여름과 가을에 노란 꽃이 피는 골든 로드(Goldenrod)는 나이아가라 폭포 주변에서 자주 눈에 띄었다.
공원의 하이킹 트레일을 따라 자연적으로 자생하는 이 꽃은 늦여름부터 초가을까지 폭포 주변을 화사하게 만들었다.
폭포 근처에서 자생하는 담쟁이와 꽃 그리고 갈대
폭포의 물로 인해 가장 많은 식물은 갈대와 미국 담쟁이덩굴이다.
담쟁이덩굴은 다른 식물들을 죽이거나 성장을 방해하는 덩굴 식물이다. 다른 나무를 기어오르면서 자라다 보니 햇빛을 막아서 광합성을 방해하기도 하고 활발한 성장을 통해 성장이 느린 나무를 무게로 무너뜨리기도 한다.
나무는 주로 단풍나무(Sugar Maple)가 많았다. 캐나다와 미국 북동부에서 자라는 단풍나무는 공원에서 가장 많이 자생하고 있었다.
가을에는 잎이 선명한 빨강, 주황, 노란색으로 물들어 매우 아름다운 단풍을 볼 수 있다.
공원을 산책하다 발견한 뱀과 공원 안내도
공원을 한 바퀴 돌고 저녁을 먹은 후 저녁 9시쯤 돌아가는 차에 올랐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모두 피곤해서 잠을 자는데 운전하는 오빠만 고생이었다.
자다 깨다 반복하며 불편한 자리에서 몸을 이리저리 틀었다. 국제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아 왔지만, 오빠는 한사코 운전대를 넘기지 않았다.
“집에 가서 자면 되지 뭐. 아까 너희들 관광할 때 나는 차에서 좀 잤어. 나는 나이아가라 질리도록 봤잖냐.”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서 친구를 비롯해 친척들이 방문할 때마다 큰마음을 먹고 오는 곳이 바로 나이아가라였다. 워싱턴은 버지니아에서 30분 거리였고 뉴욕도 4시간 반이면 갈 수 있는데 가장 먼 곳이 나이아가라였다.
그래도 늘 빼놓지 않고 오는 이유는 사람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하는 장소가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저기 많이 관광을 다녔고 가는 곳마다 다 기억에 남도록 좋았지만, 솔직히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곳은 나이아가라 폭포였다. 그만큼 멀기도 했고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는 장소였다.
당일 왔다가 돌아가는 사촌 오빠 부부는 너무 짧은 관광 시간이 아쉽다고 했다. 그러나 10명이 한꺼번에 여행을 떠나서 숙박하고 다음 날까지 식사비를 따진다면 오빠가 힘들어도 가성비 있는 여행임이 분명했다.
버지니아에서 나이아가라까지 거리는 약 400~500마일(640~800km)인데 왕복 주유비만 약 150달러, 통행료가 약 50달러 총 200달러 정도였다. 이 금액을 10명이 나누면 1인당 교통비가 20달러 정도니 운전하는 한 사람의 희생으로 우리는 알뜰 여행을 다녀온 셈이다. 물론 주유비보다 훨씬 많은 먹거리는 제외하고.
이 자리를 빌려 미국 여행 대부분의 운전을 책임진 오빠와 그 많은 손님의 먹거리를 실어 나르느라 애쓴 언니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