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성곽도서관

삶은 도서관 리뷰(by 인자)

by 김인숙


메리크리스마스~^^


다산성곽도서관

요즘 도서관 이름은 참 예쁘고 특이하다. 다산성곽도서관을 찾은 날은 12월 23일 화요일 오전이다. 오후에 비 소식이 있어서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가방에는 뜨거운 바닐라 라떼와 <삶은 도서관> 책 한 권을 챙겼다.

동대입구역에서 내려 5번 출구로 나갔다. 원래 도서관은 약수역에서 더 가깝지만, 나는 한양도성순성길을 이용해 도서관에 갈 생각이었다. 장충체육관을 지나면 신호등이 없는 작은 건널목이 나오는데 오른쪽으로 성곽을 오르는 길이 보였다.


한양도성순성길 시작점


그런데 아침부터 사람이 무척 많았다. 특히 젊은 사람이 떼거리로 계단을 오르는 것이 신기했다. 속으로 ‘와 여기는 인기가 많은 길인가 보다’라고 생각하고 그들을 따라 계단을 올랐다. 조금 올라가자 신라면세점 직원 전용 출입구 푯말이 보였다.


함께 올라온 젊은 사람들은 신라면세점 직원들인지 대부분 그쪽으로 들어갔다. 그곳을 지나고 나니 이제 진짜 도성길을 이용하는 사람들만 남았다. 3분 남짓 올라왔는데 길이 운치 있었다.


이정표


다산성곽길은 서울시 중구 다산동과 남산 동쪽 능선에 걸쳐 있는 총길이 1.1km 구간이다. 한양도성은 평균 높이 약 5~8m, 전체 길이 약 18.6km에 이르는 데 중구에 있는 것은 ‘흥인지문 구간, 남산(목멱산) 구간, 숭례문 구간’이다. 그중 흥인지문과 숭례문 구간은 도성이 멸실되었고 다산성곽길은 가장 잘 보존된 지역이다


잘 닦여진 성곽길


한참을 두리번거리며 성곽길을 걸었다. 오래된 소나무와 구불구불한 오솔길이 정겨웠다. 사람이 없는 이 오솔길이 나만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오른쪽으로 잘 가꾸어진 신라호텔 뒤쪽 정원이 보였는데 들어가는 문이 보이지 않았다. 길은 난간으로 막혀 있고 호텔 쪽에도 오솔길이 있었다. 어떻게 저쪽 길로 넘어갈 수 있는지 살피며 걸었지만 평행선처럼 두 오솔길이 계속 이어질 뿐 끝까지 들어갈 수 있는 문은 나오지 않았다.


포기하고 이쪽 오솔길에 집중하며 걸었다. 오른쪽으로 나가는 첫 번째 입구를 놓치면 안 되기에 계속 오른쪽을 주시했다. 얼마가지 않아 드디어 나가는 입구가 보였다. 아무런 이정표는 없지만 이 길에서 나와야 도서관으로 갈 수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니 왼쪽에 성밖으로 나가는 문이 보였다. 그 길을 통해 성밖으로 나왔다.


오른쪽 내려가는 계단을 내려와 성밖으로 나가야 한다.


낮은 성곽에서 보이는 도시


나는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걸었기에 전철역에서 도서관까지 약 40분이 넘게 걸렸다. 그러나 빠르게 걷는다면 20분 정도면 다산성곽도서관에 도착할 수 있다.


성곽 바깥길도 멋있다.


성곽을 빠져나와 바깥 도로를 걷는 것도 좋았다. 높은 성곽길은 끝없이 이어지고 도로에는 차가 거의 다니지 않았다. 조금 걷자 건너편 쪽에 다산성곽도서관 간판이 보였다.


도서관 옆 카페


도서관 입구


“회원가입은 인터넷으로 하고 왔는데 회원증을 만들어야 하나요?”


입구에서 사서에게 물었다.


“아니요, 그냥 이용하시고 책을 빌리거나 필요할 때 만드시면 됩니다.”


평일이라 그런지 이용객은 나를 포함해 모두 4명이었다. 아주머니 한 분이 우아하게 앉아 책을 읽고 있었고 아동열람실에는 세 살 배기쯤 되는 아기와 어머니가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카메라 소리가 나지 않게 조절한 뒤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도서관이 너무 예뻤다. 음악만 흐른다면 카페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카페 같은 도서관 전경


다산성곽도서관은 지난 2021년 5월 26일 문을 열었다. 이곳은 다산아트공영주차장 지상을 리모델링하여 만들었다.


도서관은 주민들을 위한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숲속형 도서관’이다. 무엇보다 한양도성 성곽길 바로 옆에 만들어져 도서관 내부 통창을 통해 600년 역사의 성곽 뷰를 감상하며 책을 읽을 수 있다.


성곽 돌담


실내는 정원과 폴딩 도어를 설치하여 외부의 자연경관이 내부로 흐르는 듯한 개방감이 있었다.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나선형으로 되어 있는 원형 서가 덕분이다. 1층부터 2층까지 연결된 거대한 원형 서가가 이 도서관의 랜드마크인데 천장까지 닿은 웅장한 서가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나선형 내리막길 서가


2층은 성곽 뷰를 볼 수 있고 예쁜 열람석과 안내데스크가 있다. 지형이 언덕으로 되어 있어 1층으로 들어가면 2층이다.


도서관 안 풍경


3층은 청소년 존 & 커뮤니티 공간으로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

옥상에는 텃밭이 있고 도서관과 옥외 독서 쉼터가 연결되어 있어 개방감이 뛰어나다.


도서관 옆 마당


도서관 정문 옆 왼쪽으로 겨울에는 문을 닫는 야외 도서관과 계단식 쉼터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종종 야외공연이 열린다고 한다. 자연 속에서 휴식과 여가를 위해 편히 머물다 갈 수 있는 장소로 여름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곳이다. 겨울에는 문을 열지 않아 들어갈 수 없었다. 사진도 유리를 통해 찍어서 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


계단식 야외공연장


아동 열람실


*찾아가는 길*

주소 : 서울시 중구 동호로17길 173(신당동)

가는 법 : 지하철 3·6호선 약수역 8번 출구에서 9분, 또는 동대입구역 5번 출구에서 성곽길 이용 가능

운영시간 : 화~일 10:00~20:00(월요일, 법정공휴일 휴관)

문의: 02-2230-2966


여기저기 둘러보며 사진을 찍고 <삶은 도서관> 책을 이곳저곳에 올려놓고 나 혼자 숨은 그림 찾기 놀이를 했다. 나의 취재를 도와주는지 고맙게도 책을 읽던 아주머니와 아기 엄마가 퇴실했다. 신나게 셔터를 누르고 혼자 놀아도 아무도 뭐라는 사람이 없었다. 물론 CC TV는 민망하게 나를 찍고 있었을 것이다.


<삶은 도서관> 책을 찾아보세요.


야외에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밖으로 나갔다. 아직 비는 내리지 않았으나 하늘은 잔뜩 흐려있었다. 패딩점퍼를 입은 데다가 옷을 겹겹이 껴입고 온 터라 춥지는 않았다. 자리에 앉아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삶은 도서관>을 펼쳐 읽지 않은 뒷부분을 마저 읽었다. 책을 다 읽을 즈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얼른 짐을 챙겨 실내로 들어갔다.


야외 책 읽는 곳


“원래 이렇게 사람이 없나요?”

“아니요, 주말에는 앉을자리가 없습니다.”


나오면서 사서에게 조용하게 물으니 평일에는 사람이 별로 없으나 주말과 방학에는 사람들이 몰려 앉을자리가 없다고 한다.


비가 꽤 많이 내려 우산을 폈다. 다시 성곽길을 이용해서 동대입구역으로 가려고 했으나 포기하고 약수역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동네가 워낙 높은 지대라 그런지 경사가 심했다. 비가 와서 신당동 떡볶이 집이나 맛집은 들르지 못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삶은 도서관> 리뷰

인자 작가와는 브런치에서 만났다. 원래 포도송이라는 이름으로 글을 올렸는데 글이 진솔하고 위트가 있어 구독을 누르고 서로 댓글을 달다가 나름 친해(?)졌다. 그런데 책이 나온 지 꽤 되었는데 아직 리뷰를 쓰지 못해 마음이 무거웠다. 작가가 워낙 인기가 많아서인지 브런치 작가들이 돌아가며 리뷰를 써주었다. 매우 훈훈한 장면이다.


내 글과도 맞고 인문학과 연관을 지어 쓰려니 그냥 리뷰를 쓰는 것보다는 훨씬 어렵게 생각되었다. 그러다 다산성곽도서관과 <삶은 도서관>을 연관 짓는다면 뭔가 그림이 나올 것 같아서 리뷰를 쓰기로 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8354820


인자 작가의 <삶의 도서관>은 우리가 지나온 시간과 공간, 그리고 그 속에 머물렀던 마음들을 마치 도서관의 서가처럼 분류하고 기록한 기억의 기록물이다.


프롤로그에서 그녀는 말한다.


“오늘 기록하지 않으면 영원히 사라질 도서관의 풍경들, 침묵 속에 가두기엔 너무나 생생히 펄떡이는 이야기들이 자꾸만 나를 등 떠밀었다.”


그녀가 기록한 대로 이 책을 읽고 도서관의 진풍경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나에게 도서관은 그저 단순히 필요한 책을 빌려보고 반납하는 곳이지만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서들은 오감을 다 이용하여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녀는 <영혼은 죽지 않는다>라는 제목으로 책을 찾아달라는 노신사에게 <죽어도 죽지 않는다>를 유추해 <죽지 않는 혼>을 찾아내는 노련함까지 보여주었다. 사실 사서에게 이런 어려움이 있으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나는 책을 읽을 때 마음에 와닿는 문장이나 좋은 문장에 가차 없이 줄을 긋는다. 처음에는 연필로 줄을 긋는 것도 망설였으나 지금은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 도구나 이용해 시원하게 줄을 긋는다. 대부분의 책은 한번 읽고 나면 들여다볼 일이 없기도 하다. 혹시 다시 책을 읽게 되더라도 줄 친 부분을 보면 확실히 기억이 빨리 되살아나는 이점도 있다.


책에 사정없이 줄 긋기


20년 전 증명사진을 내미는 이용자의 현재에서 과거를 읽어내는 작가는 자신의 20대 모습이 50대 모습에 겹쳐 보이는 신비한 경험을 떠올린다. 이런 작가의 너그러움은 너무나 인간적이다.


작가는 도서관을 찾는 여러 군상을 보며 자신의 과거를 건져 올리고 현재를 설계하며 미래를 그려낸다. 그래서 도서관 서가 사이사이에는 작가의 삶이 오롯이 녹아있다. 때로는 글을 막 쓰기 시작하는 소녀로, 때로는 삶의 절박한 상황을 살아냈던 시기로, 때로는 아버지와 자장면 한 그릇의 추억을, 때로는 삼겹살을 구워 먹는 가족들까지 대동한다.


<삶은 도서관> 책


나는 이 책에서 사서 일을 하는 그녀 외에 날 것 그대로의 삶이 통째로 녹아있는 장면을 심심찮게 발견했다. 가령 다음과 같은 빛나는 문장에서다.


“아마도 나의 98퍼센트 온순함 속에는 2퍼센트의 발칙함이 숨어 있었던 모양이다. 그 2퍼센트의 발칙함이 98퍼센트의 온순함에 마침내 저항하던 날, 모험을 감행할 만큼 짜장면에 대한 열망이 절정에 달했다. 나는 가장 친한 친구와 이른바 짜장면 원정대를 결성했다.”


나는 경건한 마음으로 교재와 노트, 유인물이 담긴 A4 클리어 파일을 펼쳤다. 꺅! 이게 뭐지? 001 가거라 삼팔선아. 002 가는 세월, 그리고 그 아래 아래에는 가로수 그늘아래 서면. 그렇게 나의 백석은 흰 당나귀를 타고 나타샤와 산골로 달리다 그만 축축한 지하 노래방으로 달려갔다.


이럴 땐 남편 등에 업혀야 하는데, 순간 나를 업다 허리를 삐끗할 남편의 모습이 그려졌다. 허리디스크라도 터지면 남편도 고생, 나도 개고생. 그냥 멀리 돌아가기로 했다.


“난 좋은데? 오늘 우리 황순원의 소나기 한편 찍은 거 같지 않아?”


정말 어이가 없다. 저 잔망스러운 입을 젖은 수건으로 확 틀어막고 싶었다.


이렇게 위트가 넘치는 그녀의 문장이 나는 좋다. 그렇지만 다음과 같은 문장에서는 삶 앞에서 한없이 진지한 작가의 모습이 나타난다.


새 책이 온다는 것은 밀려나는 책도 있다는 뜻이니까. 도서관 맨 앞줄에 정렬된 책들의 자리는 길어야 1년. 그중에는 단 한 번도 대출되지 않은 책들도 있었다. 그 책들이 뒤편으로 밀려날 때면 대도시에서 밀려났던 나의 그때가 생각났다.


어찌 밀려나는 것이 책뿐이겠는가? 맨 앞줄에 서서 초롱초롱 빛나던 젊음이, 청춘이, 어느새 스러지고, 빛이 바랜 채 점점 뒤로 밀려나 출구를 찾지 못하는 구석으로 몰려가고 있는 게 우리네 삶 아닐까?


그녀의 문장은 화려하지 않지만 담백하고 차분한 문장으로 독자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또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사물, 일상, 삶의 굴곡을 깊은 시선으로 관찰하여 기록해 낸다.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희망은 우연의 옷을 입고 내게로 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희망은 결코 아무에게나 오지 않는다. 항상 준비하고 기다리고 기름 조이는 자들에게나 찾아온다. 따라서 이 책을 손에 쥐기까지 우연을 가장한 작가의 간절한 노력이 있었다고 본다.


그녀의 글은 서가 사이를 조용히 걷는 발자국소리를 닮았다. 너무 크지 않게, 하지만 분명하게 울리는 문장들이 삶의 단면을 반추하게 만든다. 이 글을 읽은 후 반문해 본다. 만약 내 삶이 도서관이라고 한다면 지금 나는 어떤 카테고리의 책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을까?


시인이라는 타이틀을 얻고도 명함을 내밀지 못한 채 몇십 년을 가슴속에 불덩이를 안고 살았을 그녀가 마침내 활화산처럼 응축된 문장들을 쏟아냈다. 앞으로도 그 열정이 오래오래 식지 않기를 바라며 계속 승승장구하는 작가가 되길 응원한다.


걸어 다니는 도서관 정약용

중구 다산로(茶山路)는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丁若鏞)의 호를 따서 붙였다. 종로구 창신동 327-2번지(숭인동 사거리)에서 중구 신당동을 지나 용산구 한남동 산 9-2(약수고개)에 이르는 폭 30m, 길이 3,200m의 6차선 도로가 다산로다.


도서관 건너편에 있는 성곽마을마당


원래 다산로는 조선시대 청계천의 영미교(영도교)를 건너 왕십리, 광나루나 한강진으로 나가는 통로였다. 그러나 현재 다산로는 이름만 다산로일 뿐 정약용과 관련된 지명은 아니다.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동은 이곳보다 나중에(2017년 신설) 다산동으로 이름을 붙였으나 그곳은 정약용이 태어난 곳으로 오히려 관련이 깊은 곳이다.


정약용 생가 여유당(남양주시 다산동)


중구는 특성상 다산로를 비롯해 충무로, 퇴계로, 을지로 등 옛 선조를 특정하는 이름의 길이 많은 편이다.


도서관의 이름이 된 다산 정약용(1762~1836) 선생은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인물이다. 그가 추구했던 가치는 오늘날 도서관이 지향하는 ‘정보의 공유’와 ‘실용적 지혜’와 맞닿아 있다.


다산로 골목길


다산은 자타가 공인하는 ‘독서광’이자 ‘공부의 화신’이었다. 특히 18년이라는 긴 유배 생활 동안 수백 권의 책을 읽고 쓸 수 있었던 것은 독서에 대한 집요함 덕분이었다. 오늘은 정약용의 독서 습관과 철학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일화들을 정리해 보았다.


조선의 독서왕

정약용에게 독서는 생존이었다. 과골삼천(踝骨三穿)의 고사성어를 만든 이가 바로 정약용이다. 과골은 복숭아뼈를 말하고 삼천은 구멍이 세 번 났음을 뜻한다. 그는 오랫동안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책을 읽고 쓰느라 복숭아뼈에 구멍이 세 번이나 날 정도로 책에 몰입했다.


정약용


이 일화는 그가 단순히 책을 훑어보는 것이 아니라, 몸이 상하는 줄도 모르고 몰입했음을 증명하고 있다.


정약용은 어렸을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다. 집에 있는 책을 다 읽고 나면 외가 윤선도의 집에서 책을 빌려다 읽었다.


어느 날 정약용은 외가에서 책을 빌려 황소 등에 가득 싣고 집으로 오고 있었다. 그때 훗날 조선의 대학자 이시구가 그 모습을 보았다. 며칠 후 이시구는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또 정약용을 만났다. 정약용은 그날도 황소 등에 책을 잔뜩 싣고 있었다.


“너는 며칠 전에도 책을 싣고 가더니 오늘도 또 책을 싣고 가는구나. 너는 책을 읽지 않고 나르는 심부름을 하느냐?”


“소인은 집에 있는 책을 다 읽어서 외갓집에서 책을 빌려다 읽고 있습니다. 오늘은 다 읽은 책을 돌려주러 가는 길입니다.”


이시구가 책을 살펴보니 유교경전과 제자백가 등 어려운 책이었다. 이서구는 그중 한 책을 꺼내 내용을 물었다. 그런데 어린 소년은 묻는 내용을 척척 대답했다. 이서구는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정약용의 독서법

정독(精讀)

글을 아주 세세하게 뜻을 새겨가며 자세히 읽고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한다. 모르는 것은 자료를 찾아서 그 원인과 근본을 밝혀낸다.


“수천 권의 책을 읽어도 그 뜻을 정확히 모르면 읽지 않은 것과 같다. 그리고 읽다가 모르는 문장이 나오면 관련된 다른 책들을 뒤적여 반드시 뜻을 알고 넘어가야 한다. 또한 그 뜻을 알게 되면 여러 차례 반복하여 읽어 너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게 해라.”(아들에게 쓴 편지)


질서(疾書)

책을 읽다가 깨달은 것이나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 생각을 잊어버리기 전에 재빨리 기록한다.


질서는 묘계질서(妙契疾書)를 말하는데 묘계는 ‘번쩍 떠오른 깨달음’이고 질서는 ‘빨리 쓴다’라는 뜻이다.

정약용은 기록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흔들리는 배 위에서도 쉴 새 없이 메모하고 시를 지었다고 한다.

정약용 동상


초서(抄書)

책을 읽다가 중요한 내용이 나오면 그대로 옮겨 적는 것이다. 요즈음의 필사로 글을 베껴 쓰는 것이지만 무조건 베끼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을 읽는 목적에 부합하도록 베껴 쓰는 것이다.


정약용은 초서를 할 때 주제 정하기, 목차 정하기, 뽑아서 적기, 엮어서 연결하기 등 4단계를 거쳤다. 여기에 경험을 더하여 하나의 작품을 완성했다.


“독서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한번 쭉 읽고 버려둔다면 나중에 다시 필요한 부분을 찾을 때 곤란하지 않겠느냐? 그러니 모름지기 책을 읽을 때는 중요한 일이 있거든 가려서 뽑아서 따로 정리해 두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이것을 초서(抄書)라고 한다. (중략) 이런 학문의 중요한 방법에 대해서는 앞서 누누이 말했는데 너희가 필시 잊어버린 게로구나. 책 한 권을 얻었다면 네 학문에 보탬이 되는 것만을 뽑아서 모아둘 것이며 그렇지 않은 것은 잊어라. 이렇게 하면 100권의 책도 열흘간의 공부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부지런히 메모해라. 쉬지 말고 적어라. 기억은 흐려지고 생각은 사라진다. 머리를 믿지 말고 손을 믿어라. 메모는 실마리다. 메모가 있어야 기억이 복원된다. 습관처럼 적고 본능처럼 기록하라.”


이 당부의 글 역시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다. 이처럼 정약용은 독서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요소를 기록이라고 강조했다.


잠영(潛泳) - 물속에 잠기듯 읽다

정약용은 책을 읽을 때 ‘잠영(潛泳)’이라는 표현도 썼다. 이는 마치 물고기가 물속 깊이 헤엄쳐 들어가듯, 책의 내용 속으로 깊숙이 침잠하는 독서법을 말한다.


이 방법을 자주 썼던 그는 한 번 책을 잡으면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를 정도로 몰입했다. 특히 어려운 경전을 읽을 때는 그 의미를 완전히 깨달을 때까지 며칠이고 한 문장에 매달리기도 했다.


“책을 읽어야 살 수 있다.”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폐족(조상이 죄를 지어 몰락한 집안)이 된 아들들에게 끊임없이 편지를 보내 독서를 독려했다.


“폐족일수록 더욱 책을 읽어야 한다. 그래야만 짐승과 다른 인간의 품격이 유지된다.”


아들들이 생계가 막막해 책 읽기가 힘들다고 하소연하자, 정약용은 오히려 “책을 읽지 않으면 그나마 남은 기개마저 사라져 평범한 시골뜨기로 늙어 죽을 것”이라며 매섭게 꾸짖었다는 일화가 있다.


죽는 순간까지 놓지 않은 책

정약용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전, 자신의 삶을 정리하며 쓴 자서전 ‘자찬묘지명’에 자신이 평생 읽고 쓴 기록들을 소중히 정리하며 생을 마감했다.


정약용에게 독서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자신을 지켜내는 유일한 생존 전략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