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자해를 했다고요? (1)
보시기에 앞서 이 글에는 자해요소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립니다. 읽으시는 데 있어 참고해 주시고, 만약 불편하시다면 다른 글을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일 차가운 겨울
때는 열세 살의 겨울. 무엇인가에 분을 품은 열세 살의 미지수는 유일하게 자신을 받쳐주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무엇이 어린 미지수를 화나게 만들었는지, 무엇에 그리 분을 품은 건지 정확히 기억나는 건 없었지만 그때의 감정만은 너무나도 생생히 내 안에 살아있다. 세상 모든 것이 너무나도 지겨웠고, 제발 열세 살의 미지수가 사라졌으면 좋겠고, 스스로의 미래조차 너무 버거운, 그런 마음. 그런 탓일까, 때문에 나는 아침에 피어오르는 겨울냄새를 맡고 있을 때면 나의 첫 자해가 생각난다. 많이 어설픈 만큼 참 아팠던 나의 첫 자해가 지금의 흉터들을 만들어냈고, 그건 곧 영원한 문신으로 남게 되리라.
안 아파?
내 흉터를 보시고, 내 상처를 보고 엄마가 하신 말씀이었다. 칼로, 가위로, 샤프로 그렇게 벅벅 그어대면 아프지 않냐고 물으시던 엄마는 곧 들려온 나의 대답을 듣고 더 이상 같은 질문을 하지 않으셨다. 나는 아프지 않냐는 엄마의 질문에 늘 '안 아파. 사는 게 더 아픈데 이거라고 아프겠어?'라고 둘러대곤 했다. 고작 열몇 살 난 아이가 세상을 살아가는 게 아프단 말을 하고 있으니, 내가 엄마의 입장이어도 어이가 없었을 것 같다. 그러나 지금 드는 생각은 '열몇 살 난 아이가 얼마나 아팠으면 저런 말을 할까'이기 때문에 그어낸 자리가 조금은, 아주 조금은 아픈 것도 같다. 물론 안 아프다고 할 수는 없었다. 멀쩡한 살에 칼을 대는 것이 어떻게 안 아프겠는가. 그래도 나는 아파야 살아남는 쪽에 가까웠기에, 그렇게 열세 살, 열네 살, 열다섯 살의 미지수들은 제 손목에 상처를 새겨가며 살아내는 중이었다.
만약 부모라면
그럴 때가 있었다. 내 손목에 피가 마를 날이 없을 때. 그때 우리 엄마는 나를 절대로 혼자 두지 않았는데, 자신이 가는 곳은 모조리 나를 데리고 다녔다. 음, 아마 엄마는 몰랐을 테였다. 혼자 두지 않았을 때 내가 얼마나 아팠는지, 그리고 그 아픔이 어디에 새겨지는지. 엄마가 나를 혼자 두지 않아서 나는 또 손목에 칼을 새겨 넣었고, 그건 들키기에 매우 쉬운 곳이었기에 엄마는 다시금 절망했다. 이 아이가 자해를 멈출 수 없겠다고, 이번엔 자신이 한 방법 때문에 또 칼을 새겼다고. 사실 매정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당시에 나는 미안하다는 감정을 느끼진 못했다. 열다섯, 한창 자신의 시간이 필요할 나이에 자유시간을 모조리 앗아간다니, 이 얼마나 잔인한 일이었겠는가. 그래서 언제 한번, 엄마께서 나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만약 네가 부모인데 네 자식이 너와 똑같다면 어떻게 할 것 같냐고. 나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난 내버려둘 것 같아. 혼자 뭘 하든 간에 따라가기 싫다고 하면 내버려둘 것 같은데. 그 아이도 얼마나 아프겠어. 아마 그 아이도 하기 싫었을 건데, 이젠 자신의 행동 때문에 부모조차도 못 믿어서 아이를 혼자두지 않으면... 그럼 더 할 것 같아서. 왜냐하면, 나는 잘 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