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저 드라마를 다 보았을 뿐인데
아, 역시나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공허함에 못 이겨 손목에 감정을 새기고, 머릿속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왜 태어난 걸까, 왜 진작에 죽지 않았을까, 왜 아직도 살아있는 걸까.
더욱 이상한 점은 오늘 아무런 일도 없었단 것입니다. 나는 그저 재밌게 보던 드라마를 다 본 것 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아, 조금 짐작이 갑니다.
그 드라마의 주인공은 상당히 잘난 인물이었습니다. 절대적인 천재였고, 재능이 뛰어났으며 믿는 구석이 있어서 나댔습니다. 논리가 명확했고, 스펙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뭡니까? 천재도 아니고, 재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믿는 구석도 없이 나대기 바쁩니다. 논리도 흐리멍덩한 테다 스펙은 개뿔, 잘하는 것 하나 없습니다.
아, 설마 싶습니다.
나는 나보다 뛰어난 인물을 보면 열등감이 치솟습니다. 말하기 부끄러운 나의 단점이지만, 이제는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는 걸 잘 알지만, 쉽사리 되지 않습니다. 그건 그저 한 사람이 만든, 연기한 인물이니까요. 나는, 나는... 그 뭣도 아니니까요.
아, 이제 알겠습니다.
나는 드라마의 인물에게, 그 인물을 만든 사람에게 열등감과 공허함을 느끼고 있는 겁니다.
참 웃기지 않습니까? 나는 될 수 없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에게 열등감을 느끼다니, 그걸 가지고 공허함을 느끼다니.
참 한심하지 않습니까? 그런 걸 알면서도 지금 이 쓰레기 같은 글이나 찌끄리고 있다니.
해야 하는 게 무엇인지 알려고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불평불만만 하는 제가 참 한심합니다. 상대도 되지 못하는 상대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공허함을 느끼는 제가 참 웃깁니다.
하하, 저라는 인간이 왜 이리도 한심하게 느껴지는지요. 손목에 질문을 새기고 감정을 밀어 넣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오늘 그 무엇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드라마를 다 본 것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