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식탁, 다른 세계

바로 어제, 일요일이었다.
시댁 가족 모임으로 점심 식사를 하러 갔다.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어머님이 내 손을 잡으셨다.
“엄마 재발하셨다며… 어쩌냐. 니가 많이 속상하겠다.”

그 말에 순간 눈물이 올라왔다. 하지만 울면 안 될 것 같아서, 아무 이유 없이 꾹 참았다.
그리고 그렇게 식사를 시작했다. 잠시 후 시고모님이 웃으며 말했다.

“야, 니네 시어머니 이번에 건강검진했는데 100점 만점이야.
용종 하나 딱 있고 완전 건강해.”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시어머님은 원래 시댁에서 ‘대표 약골’이었다.
겨울이면 감기약을 달고 살았고, 기침은 늘 기본이었다.
매 분기마다 무릎과 허리에 주사를 맞았고, 고지혈증약을 드시며, 치매 예방이라며 뇌 영양제도 처방받아 드셨다. 그런데 그날만큼은 달랐다. 시고모님의 말에 장단을 맞추듯 어머님은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하셨다.

“그래~ 나 혈관 나이 68세래. 지금 내가 80이 다 돼 가는데 말이야.”

말씀하실 때마다 얼굴이 환해졌다.
마치 자랑처럼, 훈장처럼.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밥을 씹었다.

아까 손을 잡아주던 위로의 온기가 아직 손바닥에 남아 있었는데, 식탁 위의 공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때 문득, 지난번에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부모가 건강해야 자식이 고생을 안 해.”
“아프면 결국 자식들만 힘들지.”

그때는 고개를 끄덕이며 듣기만 했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아니, 맞는 말이길 바랐으니까.

하지만 재발이라는 말 옆에서 100점 만점이라는 말을 들으며
그 말이 다시 떠올랐다.

건강을 잘 챙기지 않아서 누군가는 고생을 하게 되는 걸까.
아니면 아무리 잘 챙겨도 고생은 결국 찾아오는 걸까.

나는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밥을 다 먹고, 웃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야 생각했다.
아마 나는 그날 슬퍼서가 아니라
혼자만 다른 세계에 서 있는 느낌이 들어서 더 힘들었는지도 모르겠다고.

그리고 그 식탁에서, 또 하나의 말이 오갔다.

시고모님은 세 아들들을 바라보며 과제를 주듯 말했다.
“다음 달에 니네 아버지 팔순인 거 알지?”
“이렇게 밥만 먹고 간단히 끝낼 건 아니지?”
“어떻게 할 건지, 계획 좀 세워.”

그 말투는 의논이 아니라 지시 같았고, 가족 행사라는 이름의 일정표를 나누는 시간 같았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가만히 앉아 있었다.
우리는 늘 그렇게 해왔기 때문이다.

시댁 생일이나 행사가 있으면 삼형제가 곗돈처럼 돈을 모아 밥을 사고, 용돈은 또 각자 따로 챙겨드린다.

반면, 우리 부모님은 다르다.
내 생일이 되면 편지를 쓰고, 밥을 사주시고, 작은 선물들을 여러 개 준비해 마치 마음을 나누듯 건네주신다.

그 대비가 그날따라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나는 그 식탁에 앉아 우리 엄마를 생각하고 있었다.
화요일이면 항암치료가 있는데,
괜찮을지, 많이 힘들지는 않을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혼자서만 계속 걱정하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들려온 팔순 잔치 계획 이야기는
너무 멀고, 너무 다른 세계의 말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참담했다.
말을 못 해서가 아니라 말을 꺼낼 수 있는 자리가 아예 아닌 것 같아서.

작가의 이전글베란다에서 엄마를 기다리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