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새벽, 두 개의 병실 사이에서

by 혼자서도 합니다만

응급실에서 시연이는 수액을 맞으며 혈액검사를 했고,
엑스레이를 찍었다.
의사는 장마비가 의심된다며 CT를 찍자고 했다.

CT 결과, 가스와 변이 많이 차 있었다.
관장을 하고 다시 엑스레이를 찍은 뒤 그다음 결정을 하자고 했다.

그 과정을 모두 지켜보며 나는 시계를 계속 확인했다.


“엄마, 오늘 7시에 할머니 보러 가야 하잖아요”

아침 6시, 시연이가 내게 이렇게 물었다.

“엄마, 오늘 7시에 할머니 돌보러 가야 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내려앉았다.

아이조차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집에서 누군가를 돌보는 일은 항상 시간과 마음을 쪼개는 일이라는 걸.

그리고 너무 미안했다.


전화 한 통

나는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다행히 바로 받았다.

“나 지금 순천향 응급실이야.”

그러자 아빠는 반색하며 말했다.
“벌써 왔어?”라고 말하는 아빠에게 상황을 설명하자

아빠는 당황하며 “그럼 내가 일단 응급실 대기실 1층으로 내려갈게”라고 했다.

응급실 대기실에서 만난 아빠는 아이 상태를 잠깐 묻더니 곧바로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

“나 회사 가야 하는데 어떡하지.”

아이는 응급실에 있었고, 검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그의 초점은 이미 회사에 가 있었다.


또다시 계산해야 했던 선택지

나는 말했다.

“시연이 검사 끝나면 내가 데려다주고 올게.
회사에 조금 늦는다고 말하고 가요.”

그 순간, 시연이를 카카오택시로 혼자 보내야 하나 잠깐 고민까지 했다.

그런데 아빠는 아무 말 없이 그냥 가버렸다.

나는 아이를 혼자 둘 수 없어 다시 응급실로 돌아갔다.


아침 8시 30분

모든 진료가 끝난 시간은 아침 8시 30분이었다.

나는 다시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아이 괜찮냐?”고 묻기에

나는 “장염이래. 지금이라도 회사에 조금 늦는다고 말하고 가요.

내가 시연이 데려다주고 바로 갈게.”라고 말했다.

그 순간, 전화기 너머에서 무지막지한 화가 쏟아졌다.

“여기가 내 회사냐? 목요일부터 간다고 했다가 내 마음대로 바꾸고
늦게 간다고 어떻게 하냐? 난 그냥 그만둔다고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빠는

“너는 네 식구나 봐.
나는 내 식구 돌볼게.”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결국 내가 한 일

나는 첫째를 집으로 데려왔다.
유치원에 잘 데려다줬는지 남편과 통화했고, 첫째를 재웠다.

정오가 되자 죽을 먹이고 약을 먹였다.

아빠에게 다시 전화했지만 받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병원으로 갔다.


병실 앞에서

출입카드가 없어 병실 앞에서 아빠에게 전화를 했지만 역시 받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에게 전화했다.

“나 병실 앞이야. 아빠한테 문 좀 열어달라고 해줘.”

그렇게 병실에 들어갔다.

아빠는 내게 물었다.

“왜 왔어?”


이해되지 않는 장면들

나는 아빠를 달래기 위해 말했다.

“아빠도 피곤하니까 집에 가서 쉬어요. 엄마는 내가 돌볼게요.”

왜인지 모르게 그 말에 아빠는 기분이 풀렸다.

그날 오후 3시, 아빠는 집으로 돌아갔다.

만약 나라면, 회사가 그렇게 중요했다면
그 길로 회사에 가서 상황을 설명하고 근무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빠는 집으로 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슬리퍼를 가지고 와야한다는 엄마의 말에 통화하니 아빠는 말했다.

“이발소 가서 머리하려고 나왔어.”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회사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말하던 사람이 왜 그 선택을 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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