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회사에 일주일을 쉬겠다고 말했다고 했다.
엄마는 화요일 오후,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병원에서 오는 모든 소식은 내가 아빠에게 전달했다.
나는 말했다.
“목요일, 금요일은 내가 휴가를 내고 엄마를 돌볼게.”
그러자 아빠는 말했다.
“그럼 난 목요일부터 출근할게.”
그래서 나는 다시 말했다.
“그럼 목요일 아침 7시까지는 내가 갈게.”
아빠는 알았다고 했다.
그렇게, 그 주의 역할은 정리된 것처럼 보였다.
수요일, 첫째가 장염으로 물설사를 시작했다.
병원에 데려가 수액을 맞히고, 집으로 돌아와 아이를 돌봤다.
목요일 새벽 1시, 첫째는 배가 너무 아프다며 울면서 안방으로 들어왔다.
약도 먹었는데 통증이 가라앉지 않는다고 울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나는 침대 옆에 앉아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에 가야 할지,
조금만 더 기다려야 할지를 계속 고민했다.
머릿속에는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떠올랐다.
지금 응급실에 가면 아침에 엄마를 보러 시간 맞춰 갈 수 없을 것
그러면 아빠는 또 노발대발할 것이라는 생각
그 생각 때문에 나는 망설였다.
아이의 통증보다, 또 다른 분노를 먼저 계산하고 있었다.
이런 내가 싫고 슬펐다.
하지만 시연이는 점점 더 아파했다.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
새벽 2시, 나는 시연이를 데리고 부천 순천향병원 응급실로 들어갔다.
그날 나는 한쪽에서는 암 말기 엄마를 떠올리며,
다른 한쪽에서는 배를 움켜쥔 아이를 지켜보며 병원 침대 사이를 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