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있고 싶다는 말

by 혼자서도 합니다만

엄마는 올해 초 자궁내막암 3기 C 판정을 받았다.
지금은 입원 중이다.

엄마는 의학 용어 대신 자기 방식으로 설명했다.
임파선에 크게 혹이 나 있다고 했다.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나는 굳이 더 묻지 않았다.

엄마의 말투는 담담했지만 그 표현 하나로 몸 안에서 무언가가
이미 경계를 넘어갔다는 걸 나는 알아들었다.


아빠는 경비 일을 하고 있다. 엄마가 바란 건, 아빠가 일을 그만두는 것이었다.

집을 조금 줄이고,
생활을 단순하게 하고,
그렇게 해서 남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다고 했다.

멀리 가지 않아도 되고,
가까운 곳을 천천히 다녀도 괜찮다고.
그냥 같이 있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그 말에 돌아온 대답은
“그만두면 9개월치 실업급여를 못 받는다”였다. 그러니 지금은 다녀야 한다는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을 다시 아빠에게 전했다.
엄마의 의중을, 엄마가 얼마나 지쳐 있는지를.

그런데 아빠는 또다시 9개월치를 이야기했다.
그리고는 자기도 아프고, 지쳤다며 화를 냈다.

그날 이후로 나는 한편으로 엄마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올해 초, 엄마가 항암 부작용으로 장폐색이 와 응급실에 실려 갔을 때였다.
아빠는 나에게 5분에 한 번씩 전화를 걸었다.

여긴 언제 치료를 봐주느냐고, 엄마가 이전에 암수술받았던 산부인과 간호사에게 전화해서
“지금 응급실에 와 있는데 빨리 좀 봐달라”고 말해달라고.
엄마가 계속 아프다고 소리를 지른다고.

세 시간 동안 열두 번 넘게 전화가 왔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빠는 경비 일을 하고 있었고, 사장 눈치가 보여서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니 니가 좀 오라고 했다.


그날 응급실에는
아픈 엄마와,
일터로 돌아가야 한다는 아빠와,
일하던 중 호출된 딸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를 이해하게 됐다.
왜 “이제는 그만두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는지,
왜 삶을 줄이자고 했는지.

그 말은 누군가를 부양해달라는 요구가 아니라, 혼자 아프지 않게 해달라는 부탁이었다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엄마를 온전히 돌볼 수가 없다.

둘째는 아직 만 네 살이다. 손이 많이 가는 나이이고,
돌봄의 공백은 그대로 나의 책임이 된다.

내년 6월까지는 집 하나를 처분해야 한다. 그 전까지는 이자를 감당해야 하고,
지금 일을 그만둘 수는 없다. 육아휴직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돌보고 싶은 마음과 그만둘 수 없는 현실 사이에서 계속 막혀 있다.

엄마를 이해하면서도,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딸로.

요즘 나는 ‘현실’이라는 말이 얼마나 잔인한지 생각한다.
현실은 언제나 아픈 사람의 시간을 가장 먼저 깎아낸다.


오늘도 나는 출근을 했다.
그리고 마음 한켠에서는
엄마가 혼자 아프지 않기를,
우리가 너무 늦지 않기를
계속 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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