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엄마는 자주 말했다. “네가 스무 살까지만이라도 살고 싶다.”
엄마는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만성신부전증으로 혈액투석을 해왔다. 어느새 그 시간은 35년이 넘었다. 병원,기계 소리, 투석 일정은 우리 집의 일상이었다. 아픔은 예외가 아니라 기본값이었고, 엄마의 삶은 늘 ‘관리 중인 생존’에 가까웠다.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그때의 나는 몰랐다. 다만 막연히 무서웠다. 엄마가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공포, 그리고 그 이유가 혹시 나일지도 모른다는 불안. 아이에게는 너무 큰 말이었다는 걸, 나는 아주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전화기만 들면 바뀌는 목소리
시간이 흘러 내가 어른이 된 뒤에도, 그 말의 형태는 바뀌어 반복됐다.
엄마는 전화기를 들면 자동으로 아픈 목소리로 “여보세요”라고 말했다. 옆에서 웃으며 대화하던 순간에도, 전화벨이 울리면 목소리부터 달라졌다. 본인은 그 변화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건 연기도, 의도적인 과장도 아니었다. 몸이 먼저 반응해버리는 오래된 패턴 같았다. 전화는 ‘아픈 나’를 불러내는 스위치였고, 나는 그 목소리를 받아내는 사람이었다.
전문 돌봄도 무너지는 순간
어느 날, 요양보호사가 엄마에게 짜증을 냈다고 했다.
“왜 맨날 아프다고 하세요. 저는 그 얘기 듣는 게 너무 힘들어요.”
그 말을 들은 엄마는 울고 화를 내며 나에게 전화했다. 그 보호사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자신은 상처를 받았다고.
그 순간 나는 이상하게도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처음으로 알게 됐다. 이 패턴은 가족이든 전문가든, 누구 한 사람이 오래 감당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걸.
‘내 여생은 길어야 1년’이라는 말
최근 엄마는 말했다.
“내 여생은 길어야 1년일 것 같아.”
그 말은 의학적 예측이라기보다, 미래에 대한 감각이 사라진 사람의 언어처럼 들렸다. 더 나아질 거라는 상상이 안 되고, 지금의 고통이 전부가 된 상태에서 나오는 말.
그래서 엄마는 집을 팔아도 된다고 했다. 미래를 전제로 한 자산보다, 지금의 불안을 줄이는 게 더 중요해진 것이다.
아빠의 선택, 그리고 멈추지 않는 회사
반면 아빠는 힘들다면서도 회사를 놓지 못한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회사를 내려놓는 순간,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엄마는 관계를 붙잡고, 아빠는 정체성을 붙잡는다. 나는 그 둘 사이에서 계산이 가능한 사람이 된다. 그래서 이 모든 장면이 때로는 비합리적으로, 때로는 씁쓸하게 느껴진다.
아이였던 나는 너무 일찍 어른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오래전부터 엄마의 불안을 담는 사람이었다.
어린아이에게 “네가 스무 살까지만이라도 살고 싶다”는 말은, 희망이 아니라 책임이었다. 엄마를 살게 해야 한다는 무언의 의무.
이런 관계를 심리학에서는 ‘정서적 부모화’라고 부른다. 아이가 부모의 감정을 돌보는 역할을 맡는 것. 나는 그 역할을 아주 오래 해왔다. 올해 내 연차는 다 엄마의 돌봄을 위해 쓰여졌다. 정작 나의 대학병원 대장내시경 수술을 위한 연차는 진료를 위한 반차 2개와 마취 시술을 위한 연차 1개가 다 였다.
이제는 내려와도 되는 자리
나는 부모를 너무나 사랑한다. 하지만 사랑과 책임은 다르다.
부모의 여생을 설계하는 일, 부모의 불안을 모두 받아내는 일, 그 모든 것을 딸인 내가 감당해야 할 이유는 없다라고. 요즘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려고 노력한다.
“엄마의 삶은 엄마의 것이고, 나는 엄마를 사랑하지만 엄마를 살게 하는 역할에서는 내려와도 된다.” 이 글은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한 기록이 아니다. 다만 너무 오래 한 역할에서, 조용히 내려오고 싶은 사람의 이야기다.
그리고 혹시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나와 비슷한 문장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지친 건,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너무 오래 버텼기 때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