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는 쏟아지는데…

부산 폭우(2020.7.23.)(2)

by 가을하늘

폭우가 쏟아지는 밤, 비가 어디에 얼마나 왔는지는 기상청이나 KBS 자체 시스템으로 대강은 파악이 가능하다. 물론 그것도 한 시간 뒤에야 알 수 있지만. 그러나, 그 비로 어디가 물에 잠기고, 어느 산에 산사태가 일어나 집을 덮쳤는지 피해 정보는 제때 들어오지 않는다. 그나마 그렇게 들어온 한 줄짜리 정보를 들고 그 밤에 ENG 카메라를 들고 현장에 나가는 건 무모한 짓이다. 대부분 빗속을 뚫고 찾아가기엔 너무 먼 곳에 현장이 있고, 그 밤에 빗속에서 촬영해 봐야 어두워서 안 보인다. 방송은 영상이 필요한데, 준비된 영상이 없으면 특보를 열기도, 특보 분량을 채우기도 쉽지 않다.

재난 현장에 접근해 촬영하고 편집해 방송에 내보내기까지는 시간도 많이 걸린다. 특보는 평시 방송보다 긴급한 상황에서 신속히 열어야 하는데 이렇게 영상을 확보해 편집하여 특보 시간에 맞춰 제때 송출하자면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재난방송을 하는 목적은 거창하게도 재난을 당한 주민들이 피해가 커지는 것을 막고, 재난 당국의 신속한 조치를 촉구하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데 기여하는 것이지만, 방송국의 현실은 미흡하기 그지없다.

무슨 뾰족한 수가 없을까?

영상 확보에 큰 도움이 되는 2가지가 있다. 제보영상과 CCTV이다. 특히 제보영상은 시청자와 함께 만들어 가는 재난방송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재난방송의 한 요소가 되어가고 있다. 과거엔 방송국에 제보하는 수단이 전화와 이메일, 편지 등이 전부였으나, 기술의 발달로 이제 누구든 휴대폰으로 촬영하고, 카카오톡 하나로도 글과 영상, 음성 등 모든 걸 손쉽게 보낼 수가 있다.

시청자들의 제보를 받아 이를 재난방송에 반영하는 시스템은 KBS의 경우 2018년쯤 본격화했다. 특보 등 주요 계기에 제보영상을 찍어 적극 보내달라고 홍보를 하자, 시청자들은 자기 동네에 재난이 나면 그 와중에 이를 찍어 감사하게도 KBS로 열심히 보내주었다. 하룻밤에 수백 수천 개의 영상이 접수되는 날도 있었다.

2020년을 전후해 방송사들은 재난방송에 앞다투어 SNS를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KBS는 재난 뉴스특보를 할 때 화면에 노란색의 카카오톡 로고와 KBS 제보 주소를 화면에 자주 표출했는데, 이때마다 제보영상이 쏟아져 들어왔다. 이 제보 영상들만 따로 모아 보여주는 코너를 만들기도 했고, 그 코너에 출연한 기자들은 제보영상 보내는 요령을 설명하며 더 많은 제보를 요청했다. 그러면 또 더 많은 제보영상이 쏟아지곤 했다. 2022년 9월 태풍 힌남노 당시엔 카카오톡 ‘KBS제보’ 채널의 친구 수가 10만 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그러나 2020년 7월 23일 부산 폭우 때는 제보 영상이 많이 들어오긴 했지만, 이를 신속히 방송에 활용하는 시스템은 그리 발달해 있지 않았다. IT시스템이 발달하지 않은 게 아니라, 이를 방송 제작 시스템에 맞게 만들어 충분히 활용할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는 말이다.

7월 23일 그날 밤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 본다. 많은 비가 쏟아지는 밤, 제보영상 접수를 담당하는 부서인 사회부에선 야근 기자와 함께 심야 담당 제보접수 요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날은 낮부터 종일 곳곳에서 비가 많이 오고 있다거나 많이 왔다며 찍은 제보 영상이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었다. 제보영상이 하도 많이 들어오니, 그 가운데 심각한 비 피해 영상이 들어오는 지역이 있어도 이를 눈여겨보지 못하고 놓치고 만다. 그냥 수백 수천 개의 비 피해 제보영상들과 마찬가지로 기계적으로 접수만 해놓기도 바쁘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제보요원들은 이런 단순 접수 업무만 할 뿐, 영상 속 상황이 심각해서 뉴스로 다뤄야 할지 여부는 판단하지 않는다. 그 판단은 그 옆자리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 사회부 야근 기자들이 해야 한다. 9시 반쯤부터는 부산에서 심각한 제보영상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때 부산의 제보 영상의 심각성을 깨달았다면, 9시 뉴스를 마치자마자 뉴스특보를 할 수 있었겠으나, 그러지 못한 채 '눈뜨고도 당한' 셈이었다.

밤 10시 반쯤이 되어서는 더욱 심각한 영상들이 들어왔다. 맹렬한 홍수 물결이 시장통을 통째로 집어삼킬 듯 휩쓸고 지나가면서 냉장고 같은 무거운 집기류도 힘없이 둥둥 떠내려가는 영상들이다. 누가 봐도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날 그 누구도 그 많은 영상의 홍수 속에 부산이 피해가 심각한 지역임을 변별해내지 못했다. 심각한 영상이 들어오고 있음을 알리거나, 특보를 하자는 건의도 없었다. 이때만 해도 피해의 정도에 따른 특보 편성 기준 등이 구체적으로 정립되지 않은 시기였다. 그저 국장이나 부장, 데스크가 특보하자고 하면 그냥 하나보다 하고 움직이는 게 그때의 시스템이었다. 국장, 부장, 데스크들의 판단도 제각기 달랐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 현장에서 시청자들이 찍어 보내주는 제보영상이 특보 편성 판단의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 심각한 제보영상 딱 하나만 틀어놓고 반복해서 보여주며 (물론, 직접적으로 인명피해가 나는 끔찍한 장면은 방송에 내선 안 되는 점은 불문가지이다.) 특보를 해도 될만했다.

그러나 이날 밤엔 그 누구도 제보영상을 꼼꼼히 들여다보지 않았다. <9시 뉴스>가 방송되고 있는 9시부터 10시 사이엔 더욱 제보 영상을 눈여겨보지 않는 습성이 있다. 피해 상황을 누군가가 한 번이라도 제대로 보고, “부산 쪽 피해 상황이 심각하다”라는 얘기를 한 번이라도 했었더라면, 통합뉴스룸은 좀 더 일찍 심리적 알람이 켜지고 특보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 밤은 밤 9시 반부터 11시 반까지 2시간의 골든타임이 그냥 지나갔고, 그러는 사이 부산으로부터 제보 영상이 쏟아져 들어왔고, 부산 동구 초량 제1지하차도가 침수되어 차들이 수몰되고, 빠져나오지 못한 3명은 끝끝내 유명을 달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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