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폭우(2020.7.23)(1)
2020년 여름 장마는 중부 지방 기준 6월 24일부터 8월 16일까지 54일간 계속됐다. 역대 최장 장마였다.
누적 강수량은 곳곳이 역대급이었다. 강원도 인제의 향로봉 2,325mm, 미시령에선 2,065mm가 넘었다. 우리나라 한 해 강수량이 평균 1,400mm 정도인데 불과 며칠사이 이렇게나 많이 왔다.
꾸준히 조금씩 온 게 아니다. 양동이로 물을 들이붓듯 국지적으로, 기습적으로 시간당 100mm 정도의 비가 내렸다. 시간당 100mm가 얼마나 큰 비일까. 기상청은 통상 시간당 30mm의 비가 올 때 ‘집중호우’라는 표현을 쓴다. 이 정도 비만 와도 자동차 와이퍼를 가장 빨리 작동시켜도 차량 유리창은 빗물로 금세 덮이는 지경이다. 그러니, 100mm는 두 말할 필요가 없는 가공할 양이다.
2020년 장마 때는 이런 시간당 100mm가량의 폭우를 기록한 곳이 수두룩했다. 7월 23일 부산에 시간당 87mm, 7월 30일 대전과 완주에서 각각 시간당 101mm와 100mm, 8월 2일 경기도 안성에서 시간당 104mm, 10일 양주에서 시간당 90mm가 왔다.
기상청 단기 예보문은 새벽 5시, 오전 11시, 오후 5시 하루 3번 발표된다. 이 예보문이 기상청 웹사이트에 뜰 때마다 재난방송을 하는 기자들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내일까지 ○○ 지역에 몇 mm, 많게는 몇 mm의 비가 더 올 것’이라는 문구에 눈을 떼지 못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200, 300 등 엄청난 수치가 적히다 보니 점점 성적표를 받는 듯 긴장이 됐다. 이 수치와 강수 지역, 시간 등을 감안해 재난방송 편성을 짜야했다.
물론 그 예상치조차 실제 내린 양과 크게 차이가 나는 날도 많다. 어느 날은 예상치를 훌쩍 넘는 폭우가 쏟아져 허겁지겁 특보를 열어 재난방송을 하고, 어느 날은 애매한 양이 와서 밤새 뉴스특보를 열지 말지 고민을 한다. 집중호우와 숨바꼭질하듯 뉴스특보를 이어가는 동안 나인투식스(9to6)의 출퇴근과 주 52시간제 등 근무시스템은 의미가 없어져 가고, 허다한 야근에 시간 외 근무로 채워졌다.
7월 23일. 그날 밤에도 폭우가 쏟아졌다. 밤은 여러모로 취약하다. 밤 9시 뉴스가 시작된 시점부터 10시까지 부산에 무려 시간당 70mm의 비가 내렸다. 시간당 70mm는 어마어마한 기록적 호우다. 이렇게나 많은 비가 내릴 줄 미리 알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한창 비가 오는 그 시간 동안은 역설적으로 비가 얼마나 오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시간당 70mm니, 80mm니 하는 수치들은 말 그대로 한 시간 동안 우량계에 담기는 비를 측정한 것이기 때문에, 밤 9시부터 10시까지 꼬박 한 시간이 다 경과할 때까지는 측정값을 알 수 없다. 집중호우는 그래서 눈뜨고도 놓치기 쉬운 재난이다.
<9시 뉴스>가 시작되고 톱 뉴스와 두 번째 꼭지를 비 소식으로 다뤘다. 그리고 두 번째 꼭지에서 기상전문기자가 ‘부산과 경남 해안 지역에 시간당 30mm가 넘는 집중호우가 쏟아지고 있다’고 알리긴 했다. 그러나 그 뒤로 뉴스 마칠 때 클로징 멘트에서 몇 마디 더 한 것 빼고는 폭우 소식을 다루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그 시각 부산의 피해는 이미 매우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다. 한참 뒤에야 알았지만, 그날 밤 9시 반쯤 부산 동구 초량 제1지하차도가 침수되면서 자동차가 물에 잠겨 3명이 사망한 참사가 있었다.
이 참사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그날밤 그 시각 부산에서는 무지막지한 폭우가 쏟아지면서 피해가 속출하고 있었다. 그러나 TV에서는 <9시 뉴스>가 끝난 뒤로 1시간짜리 다큐멘터리와 30분짜리 시사 토크쇼를 한 뒤 밤 11시 30분 뉴스 시간이 되어서야 비 소식을 비교적 자세히 다루었다. 톱 아이템부터 중계차 2곳과 기상전문기자 출연까지 3 꼭지로 비 소식을 다룬 뒤 뉴스 후반에도 3 꼭지를 했다.
그러나, 11시 30분 뉴스 때조차도 초량 제1지하차도 참사 소식은 전하지 못했다. 심지어 부산 취재기자 중계차 연결을 할 때조차도 이 사실이 반영이 안 됐고, 그냥 부산 동천이 또 범람했다거나, 도시철도역이 침수됐다는 등의 소식만 전했을 뿐이었다.
인명피해가 난 심각한 상황은 이때까지도 파악이 제대로 안 된 셈이었다. 그래서인지 특보 편성을 더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뉴스라인이 끝난 뒤엔 다시 기존 편성대로 ‘올댓뮤직’이라는 음악프로그램을 방송했다. 뉴스특보는 밤 1시가 되어 25분짜리 한 번을 한 게 전부였다. 부산총국은 23일 오후에 4시 45분부터 13분간 로컬 특보를 했고, 저녁 7시에 40분짜리 로컬 뉴스 시간에 톱뉴스로 다루는 등 우리가 볼 땐 ‘할 만큼 했다’고 평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시청자의 눈으로 볼 땐 재난방송이 한참 미흡했다. 홈페이지의 시청자 청원 게시판에 뜬 아래와 같은 게시글 몇 줄이 이를 보여준다.
<제목 : 부산에서는 수신료 받아가지 마세요.>
재난방송주관사라던 kbs. 지금 부산 비 와서 거의 모든 도로 침수되고 건물로 비가 다 들어차는데 뉴스에서 한두 꼭지 하다가 마네요. 수신료의 가치 전혀 못 하는데 왜 강제 징수하나요?
<제목 : 경남, 부산 물난리인데 특보 안 하나요????>
공익방송 케이비에스 전 국민 tv 수신료 받으면서 부산 물난리 나서 난리 났는데 뉴스속보 특보 없이 천하태평하네요. 저녁부터 난리인데 부산시민들이 커뮤니티에 사진 올리고 나서 한참 뒤에야 기사 내는 척하고 있는 거 보니 속 터지네요. 조중동은 그렇다 치고 수신료 받는 kbs 먼저 앞장서서 보도해서 국민들 알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거기 방송국 기자님들 뭐 하세요?
이후 이걸 소재로 몇몇 매체들이 비판 기사를 내자, 방통위에서 연락이 와서 이날 밤 재난방송을 제대로 했는지 꼬치꼬치 따졌다. 시청자위원회와 외부 기관 등 여기저기서 재난센터로 연락이 와서 “왜 재난방송을 제대로 안 했느냐”라고 추궁을 해댔다.
이때는 2019년 고성 산불 때 미흡한 재난방송으로 지탄받은 지 고작 1년 남짓 지난 시점이었다. 그동안 재난방송 시스템을 혁신한다고 했지만, 그게 그렇게 금방 시스템이 고도화되긴 어려웠다. 그 이유는 다음의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집중호우는 기본적으로 현대 과학으로도 원천적으로 예측 불가능한 영역이 있다. 일기예보를 자세히 보면, 해당 지역에 호우주의보나 호우경보가 발령된다고 해서 구체적으로 어느 동네에, 언제, 비가 얼마나 많이 오는지 정확히 예보하지 못한다. 넓은 지역에 걸쳐 대략적인 강우량 예측만 가능할 뿐이다. 때문에 하룻밤에 내릴 비의 양과 위치를 정확히 예측하고, 집중호우가 어디로 올지, 피해가 어디서 발생할지 미리 파악해 기동성 있게 대응하며 방송하기란 애초에 불가능에 가깝다. 늘 재난이 발생하고 일정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될 수밖에 없다.
둘째, 하늘에서 내린 비의 양이 막대하다고 해서 지상에 무조건 피해가 나진 않는다. 바다나 산속 깊은 곳에 내리면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다. 또, 배수 시설이나 빗물 터널 등이 잘 갖춰진 도심에서는 이 정도에도 별로 피해가 안 날 수도 있다. 그래서 하늘만 쳐다보고, 일기도만 분석하는 것은 반쪽짜리 예측에 불과하고, 반드시 지상의 형편에 대한 기본 취재와 연구가 필요하며, 과거 산사태와 침수가 많이 발생한 곳에 대한 분석 데이터가 사전에 충분히 축적되어 있어야 한다. 사전 취재와 연구, 데이터 축적이 안 되어 있으면 백전백패다.
셋째, 기상과 지상에 관한 사전 연구와 데이터 축적, 정보 공유 체계가 잘 되어 있다고 해도 현장 취재 인력의 투입, 영상확보 및 리소스 공급, 특보 편성 등을 잘해야 하는 건 또 다른 영역이다. 비가 많이 오는 지역, 피해가 생길 곳을 최대한 예상하여 특보 시간을 편성하고, 그 현장에 중계차나 ENG 취재진을 보내 준비하면, 비구름은 금세 그곳을 지나가 버린다. 그래서 늘 놓친다. 취약 시간대인 밤이나 주말엔 인력조차 적은 시간대엔 더욱 열악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게시판 글에 나타난 시청자들의 감수성과 눈높이를 도외시하면 안된다. 백날 공급자의 입장에서 ‘안 되는 이유’만 들며 앉아 있으면 해결되는 일은 없다. 이는 재난방송 주관방송사의 존재의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셈이다. 어떻게든 예측력을 높이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