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실과 당직근무

시스템과 워크플로우를 바꾸자(1)

by 가을하늘

2022년 10월 이태원 참사 당시 용산구청과 구청장의 대응이 도마에 올랐을 때 눈길을 끈 것 중 하나가 바로 ‘재난안전상황실’이다.

원래 재난안전법상 지방자치단체장은 ‘상시’로 재난안전상황실을 운영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참사 당시 용산구청 재난안전상황실은 상시 조직이 아니었고, 인력난 등의 이유로 상시로 운영하지 않고 있었다.

용산구청만 그런 게 아니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태원 국조특위 위원)이 2022년 12월 행정안전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 ‘전체 시·군·구 재난안전상황실 운영현황’을 보면, 전국 시·군·구 226개 중 단 49개만이 24시간 재난안전상황실을 ‘상시’ 운영하고 있었다.

「재난안전법」 제18조에 보면 재난안전상황실은 ‘재난정보의 수집·전파, 상황관리, 재난 발생 시 초동 조치 및 지휘 등의 업무’를 위해 ‘상시’ 설치·운영해야 한다. 그럼에도, 49개 지자체를 제외한 177개 시·군·구는 상시 운영하지 않았다. 재난안전상황실을 위한 별도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 않거나, 주간에는 종합상황실, 야간이나 취약 시간에는 ‘당직실’로 운영하긴 하지만, 당직자들은 야간과 휴일에 당직실이 재난안전상황실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다.

‘당직실’은 엄연히 ‘상황실’과는 다른 개념이다. 상황실은 재난이나 비상 상황에 대비해 재난안전통신망 단말기나 CCTV 등 관제장비 등을 집결시켜 놓고, 상위 기관(구청의 경우 서울시 등)으로부터 상황전파 내용을 신속히 접수 전파하거나, 관할구역의 실시간 상황을 모니터링하는 곳이 아닌가.

이런 사실을 전혀 아는지 모르는지, 이태원 참사 이후에야 서울 각 구청 등 전국의 지자체들이 부랴부랴 24시간 상시 재난안전상황실을 구축했다. 좀 웃긴 것은 지자체들이 너도나도 보도자료를 내고 '우리는 24시간 철통 대응체제를 구축했다'며 홍보에 열을 올린 점이다. 사실 법에서 진작에 의무 조항으로 명시해 놓은 건데, 법이 만들어진 지 몇 년이나 지나 뒤늦게 만들면서, 언론에 잔뜩 생색을 내는 모습이 가관이었다. 그나마 지금은 이태원 참사 뒤로 꽤 많은 지자체가 재난안전상황실을 24시간 상시 운영하게 됐다.

방송사는 어떤가? 현행법상 방송사도 재난안전상황실을 의무적으로 상시 운영하도록 되어 있나? 그렇지는 않다. 현재 어느 방송국도 재난안전상황실을 상시 운영하는 곳은 없다. 방송국은 그때그때 재난이 발생했을 때 그 경중에 따라 정시 뉴스 시간에 보도를 하거나, 중대한 경우 특보를 할 뿐, 재난안전상황실을 상시로 운영하며 재난의 발생이나 발생 우려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있지는 않다. 야간이나 휴일에 발생하는 주요 사안에 대응하기 위해 소수 인력이 남아 ‘당직’ 근무를 하면서 대응하는 정도이다.

KBS의 경우, 관련된 의무가 부과되어 있긴 하다. 「방송통신발전기본법」 제40조의 2 (재난방송 등의 주관방송사) ③ 항을 보면 KBS는 ‘재난방송등을 위한 인적·물적·기술적 기반 마련’을 해야 한다. 재난안전상황실을 상시 운영하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주관방송사로서 재난방송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란 말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2019년 KBS 보도본부에 재난방송센터를 설치했다. 재난방송을 위한 인적, 물적, 기술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이지만, 24시간 상시로 운영하는 ‘상황실’의 수준까지는 미치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방송국들의 재난 및 비상사태에 대한 대응은 상황실을 상시 운영할 만큼 인력이 충분치 않다. 대신, 소수의 인력이 당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야간 및 휴일에 사무실에 남아 대처하는 ‘당직 근무’ 형태로 운영한다.

이 당직근무는 기관마다 여러 가지인데, 방송국이나 언론사에서 취재기자들이 하는 당직은 엄밀히 따지면,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등에서 말하는 일반적인 당직근무, 즉 방범, 방호, 화재방지 등을 위한 감시나 긴급 문서나 전화 처리, 돌발 상황 대비 등 경미한 업무를 수행하며 대부분의 시간은 대기 상태로 보내는 단순한 당직이 아니다.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제5조(당직 및 비상근무) ①항을 보면, “휴일 또는 근무시간 외의 화재ㆍ도난 또는 그 밖의 사고의 경계와 문서 처리 및 업무 연락을 하기 위한 일직근무자ㆍ숙직근무자ㆍ방호직 공무원 또는 그 밖의 당직근무자는 모든 사고를 방지하여야 하며, 사고가 발생하였을 때에는 신속하게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라고 되어 있다. 이런 전형적인 당직 근무는 근로자가 수행하는 통상 업무와 내용이 다르고, 그 자체의 노동 강도도 낮은 경우가 많아, 전형적인 당직근무 시간은 근로시간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대판 2023.6.23, 선고 2023다 223508). 업무 내용 및 강도가 실제 근로에 준하는 당직근무일 경우에는 통상근로로 인정된다. (대판 1995.01.20, 선고 93다 46254)


당직의 유형엔

① 보안 및 비상연락망 대기 목적의 당직

② 휴일이 없는 기관의 업무 가동 목적의 당직

③ 응급 상황 발생 시 대기 목적의 당직 (응급실 등 응급 상황에 대처 능력이 있는 의사 등이 투입되는 당직)

④ 의사결정 목적의 당직 (경찰, 소방, 법원 영장 발부 등 의사결정을 할 권한이 있는 사람의 당직)

등이 있다고 한다.


방송사 보도국의 기자들이 서는 당직은 본질적으로 낮에 하는 업무와 성격이 같은, ‘취재와 보도’ 업무이고, 위 ②, ③, ④번과 유사하다. 돌발 재난에 대응한 재난방송을 위해선 더욱 그런 성격이 강하다. 사실 이걸 ‘당직’이라고 부르는 건 관행적 오용(誤用)에 가깝다고 본다. 보도국 기자들이 밤사이 뜬 눈으로 취재하며 기사를 쓰고 리포트를 제작하여 아침 뉴스에 내는 근무는 일반적 의미의 당직근무와는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업무강도가 강한데도, 보도국 당직 시스템은 정규 뉴스를 예정된 시간에 예정된 분량을 진행할 수 있을 정도만 인력을 투입할 뿐, 취약 시간 돌발 재난 발생을 넉넉히 감당할 정도로 투입하진 않는다. 수뇌부건 직원이건 취약 시간에 많은 수의 인원이 투입되는 걸 본능적으로 싫어한다. 이걸 좋아하는 이가 어디 있겠나.

KBS를 예로 들면, 보도본부에는 매일 밤 소수의 일반 취재부서 기자들과 뉴스제작부서 기자들이 남아 사실상 아침 정규 뉴스 준비를 하는데, 요즘은 이런저런 이유로 야근자 수가 더욱 줄어 하룻밤에 보도국에 남아 철야 근무를 하는 취재기자는 5명 정도이다. (스태프나 엔지니어, 그래픽 디자이너 등은 이와 별도로 인력 운영을 한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인력이 부족해서 소수가 돌아가며 근무를 서지만, 그 소수가 다 해낼 수 없는 일이 터지면, 대응은 지연될 수밖에 없고,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 특히, KBS는 규모 5.0 이상의 지진과 지진해일, 민방공 사태 등 긴급 상황 발생 시 10분 안에 의무적으로 특보방송을 해야 하는데, 이 소수의 야근 인력들이 10분 안에 특보를 신속히 열기는 너무 어렵다.

결론적으로, 법령상 방송국은 재난안전상황실을 상시 운영 의무가 없어 운영하지 않고 있지만, 대부분의 방송국은 이른바 취약 시간엔 소수 인력이 아침 정규 뉴스 등을 준비하며, 비상시의 대응도 겸하고 있는데, 이것이 돌발 재난 상황이 닥쳤을 때 특보 방송 등을 하기엔 역부족이고 골든타임을 놓치기 십상인 취약한 구조라는 것이다. 취약시간에 큰 일 터지면 매번 우왕좌왕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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