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행을 바꾸자(5)
2014년 한국기자협회 등 5개 단체가 「재난보도준칙」을 만들 게 된 계기는 바로 세월호 침몰 참사 때문이었다. ‘기레기’라는 오명이 생겨난 세월호 참사 때의 언론 보도 행태를 반성하며 만든 「재난보도준칙」은 서문에 그 취지가 잘 드러난다.
“… 재난 보도에는 방재와 복구 기능도 있음을 유념해 피해의 확산을 방지하고 피해자와 피해지역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기능해야 한다. 재난 보도는 사회적 혼란이나 불안을 야기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며, 재난 수습에 지장을 주거나 피해자의 명예나 사생활 등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당시 ‘기레기 보도’의 반성에서 나온 「재난보도준칙」이 발표된 지 1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재난 상황에서 보도 경쟁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은커녕, 과도한 경쟁과, 이 과정에서 파생되는 선정적 영상의 여과 없는 사용, 피해 가족들에게 2차 피해를 주는 재난 발생 장면의 반복적 보여주기 경쟁 등등 고질적인 몇몇 관행은 이 준칙이 무색할 만큼 계속되어 오고 있다.
‘참사’ 상황에서 방송국들은 스펙터클한 영상으로 TV 시청률을 높이고, 웹과 모바일에서 클릭을 유발하는 기사와 콘텐츠를 만들며 조회 수 경쟁에 뒤처지지 않도록 애를 쓴다. 소방청 등 재난 당국의 브리핑장은 같은 장소에서 같은 내용을 수많은 카메라 기자들이 똑같은 브리퍼를 상대로 똑같은 촬영을 하고, 수많은 취재 기자들이 똑같은 내용을 받아치는 비효율을 반복한다.
또, 희생자 개인의 서사는 사안의 핵심이 아님에도, 사망자와 가족들의 민감한 개인사 들추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때로는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려는 의도다. 하지만, 그것이 사회 공동체에 훈훈한 감동을 주는 게 아니라 슬픔에 잠기게 할 뿐이라면 왜 굳이 방송에 낼까.
피해자와 피해지역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 혼란이나 불안을 야기하지 않도록, 개인의 명예나 사생활, 인권 침해가 없도록 하자는 「재난보도준칙」의 다짐은 왜 작동되지 않는가.
‘준칙’보다 훨씬 오래전에 만들어진 ‘관행’이 더 뿌리 깊은 탓이라고 본다. 이를 고치려면 취재에서 보도에 이르는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취재와 방송 시스템의 각 단계별 실무 기자와 데스크, 경영진까지 모두가 재난 감수성 떨어지는 여러 관행을 버리고 새로운 재난방송을 위한 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재난보도준칙」 중에 현장에서의 취재 경쟁으로 인한 혼란을 막기 위한 ‘4. 현장 취재협의체 운영’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제28조를 보면 다음과 같다.
제28조(구성) 각 언론사는 … 필요한 경우 현장 데스크 등 각 사의 대표가 참여하는 '재난현장 취재협의체'(이하 취재협의체)를 구성할 수 있다. 각 언론사는 취재협의체가 현장의 여러 문제를 줄이고, 재난보도준칙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도 유효한 대안이라는 점에 유념해 취재협의체 구성에 적극 협력하고 그 결정을 존중한다 …
이하 제29조(권한), 제30조(의견 개진), 제31조(대표 취재) 등에서 재난현장 취재협의체에 관한 사항이 자세히 수록돼 있다.
취재협의체는 재난관리 당국에 현장 브리핑룸 설치, 브리핑 주기 결정, 브리핑 담당자 지명, 필요한 정보의 공개 등 협조를 요구할 수 있고, 재난관리 당국이 폴리스라인이나 포토라인 설정 등 취재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는 사안을 결정할 경우, 사전 의견 개진, 사후 개선 협의 요청 등을 할 수 있으며, 재난 현장 접근이 제한적일 경우, 과도한 취재 인원으로 피해자의 인권 침해나, 구조 등에 지장이 있을 경우, 대표 취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10년 전 「재난보도준칙」에 이것을 명시해 놨음에도 잘 작동되지 않는 것은 왜일까? 준칙은 만들어졌지만, 각 사 기자들에게 널리 공유, 교육, 전수가 되어 있지 않은 탓이 커 보인다. 데스크들은 취재협의체를 사실상 싫어한다. 재난 시 현장 기자들이 취재협의체의 필요성을 호소해도 이 핑계 저 핑계를 들어 반영이나 허용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기자를 적극적인 취재를 하길 싫어하는 소극적인 기자로 여기거나 “바빠 죽겠는데 무슨 취재협의체야”하며, 이런 의견을 무시하거나 외면한다.
준칙에 대한 각 사 취재진 간의 합의, 데스크 간의 합의, 경영진의 합의도 암묵적인 합의에 머무르지 않고 구체적인 행동으로 합의를 보여줘야 한다. 일단 재난이 터지면 각 사 데스크와 현장 취재진이 자동적으로 취재협의체를 꾸리고 효율적으로 현장 취재에 관한 역할 분담을 하도록 하기 위해선 새로운 ‘관행’을 수립해야 한다.
현재 취재협의체와 유사한 형태의 ‘코리아풀(pool) 단’이 이미 오래전부터 가동되어 오고 있다. 지상파와 종편, 보도전문채널 등이 이 협의체에 참여하여 주로 대통령이 등장하는 이벤트에서 현장 영상 커버가 필요한 경우 촬영을 분담해서 하고, 협업을 한다. 이를 재난 시에도 적용하면 될 일이다.
물론 대통령 행사 등은 사전에 시간 약속을 하고, 장소와 그날의 동선, 일정 등이 미리 정해져 있는 이벤트여서 풀단 구성이 쉽지만, 재난은 그 모든 게 가변적, 돌발적이어서 쉽지 않다. 그러나 못할 일은 아니다. 정보의 공급자로서, 재난 시에는 경쟁에 매몰되지 않고 조금만 친절한 공급자의 마인드를 갖춘다면, 관행은 바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