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르신들의 프로필 사진을 찍는다.
"어머님, 자녀들이나 지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나는 사진을 찍으러 오신 어르신들께 인상을 쓰고 있는 영정사진과 밝게 웃고 있는 영정사진을 보여드리며 물어본다. 그러면 어르신들은 하나같이 웃는 모습으로 기억되길 원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이렇게 답한다.
“그럼 밝게 웃는 모습으로 사진을 찍어드리기 위해, 촬영하는 동안 ‘사랑해’라고 크게 말해 보셔야 해요.”
그런데 막상 카메라 앞에 서면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석고상처럼 굳어버리신다. 표정이 딱딱해져서 어색하게 서 계시는 모습에 나는 다시 말한다.
“어머님, ‘사랑해’라고 한번 크게 말해 보세요.”
나는 계속해서 “김치”나 “치즈” 대신 “사랑해”라고 말해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어르신들은 쉽게 그 말을 꺼내지 못하신다. 사진을 찍다 보면 10분쯤 지나 어르신께서 지친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그만 찍어요, 이제 다 된 거 같아요.”
나는 미소를 지으며 답한다.
“어머님, ‘사랑해’라고 말하셔야 해요. 그래야 사진이 방금처럼 밝게 웃는 얼굴로 나와요.”
어르신은 마지못해 조용히 “사랑해…”라고 속삭인다.
“어머님, 그렇게 조용히 하시면 안 돼요. ‘사/랑/해’ 하고 크게 말씀해 보셔야 해요!”
그러면 어르신은 쑥스러운 표정으로 조금 더 큰 소리로 “사랑해”라고 외치신다. 그 순간, 그들의 얼굴에는 진심 어린 미소가 번지고, 그 미소 속에 담긴 따뜻한 사랑이 사진에 고스란히 담겨 나간다.
"어머님, 자녀분 성함이 뭐예요?"
"문호요."
"그럼 ‘문호야, 사랑해’라고 해보세요."
어르신은 처음에는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문호야, 사랑해”를 따라 하신다. 내가 반복해서 권유하자, 점점 더 큰 목소리로 “문호야, 사랑해”라고 따라 하신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던 어느 순간, 어르신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지기도 하고, 때로는 눈가에 눈물이 맺히기도 한다. 그리고 마침내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내 평생에 ‘사랑해’라는 말을 처음 해봤어요.”
그 말을 하는 순간, 어르신의 마음속에 꽉 눌려 있던 돌덩어리가 녹아내리듯이 편안한 숨을 내쉬신다. 얼굴에는 밝은 표정이 돌아오고, 입가에는 따뜻한 웃음이 번진다. 그제야 어르신은 “사랑해”를 기쁨과 자유로움 속에서 마음껏 외치며 즐겁게 프로필 사진을 찍기 시작하신다.
촬영이 끝날 무렵, 나는 다정하게 말씀드린다.
"어머님, 이번 명절에 아드님이 오시면 꼭 ‘문호야, 사랑해’라고 해보세요."
나는 평생을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가난한 사람들,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그리고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왔다.
모두가 사랑하는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생각하고, 행동하며 살아가지만, 정작 그 마음을 담은 ‘사랑해’라는 한 마디가 빠져 오해와 갈등이 생기고, 결국 외로운 삶을 살아가시는 분들을 많이 보았다.
행복은 표현할 때 찾아온다. 마음에 담아둔 따뜻한 말이 나올 때, 비로소 서로의 진심이 닿고 삶이 밝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