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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호 Nov 26. 2024

당신도 모르는 당신의 아름다움

   

카메라를 들고 어르신 앞에 서면, 나는 먼저 이렇게 말한다.  

"오늘은 특별한 주문이 있어요. 사진 찍을 때 김치나 치즈 말고, ‘사랑해’라고 말해보세요."       

처음엔 다들 어색해하신다. 웃음기 없는 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머뭇거린다.  

"사랑해요?"  

"네, ‘사랑해’요. 크게 한번 따라 해 보세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망설임과 수줍음이 얼굴 위에 번진다. 고개를 숙이는 분도 계시고,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웃음을 터뜨리는 분도 있다.      

“사랑해!”  

"더 크게요! 사랑해!"       

어르신들의 입이 열리고, 입술이 움직이며 어눌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몇 번이고 따라 하다 보면, 어느새 목소리는 커지고 웃음이 번진다. 그러다 갑자기 그 웃음 뒤로 부끄러움이 찾아온다. 바로 그 순간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다.       

사람들은 웃는 사진이 가장 아름답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부끄러워하는 얼굴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고개를 살짝 숙이며 눈길을 피하는 순간, 그 얼굴엔 오랜 시간 묻어두었던 어린 시절의 순수함이 되살아나는 것 같다. 그 모습은 카메라를 통해 더없이 고요하고 깊게 담긴다.       

촬영이 끝나면 나는 늘 이렇게 말한다.  

"어르신도 몰랐던 어르신의 아름다움을 찾았습니다."       

어르신들의 반응은 늘 같지 않다. 어떤 분은 사진 속 자신을 바라보며 "이게 정말 나야?"라며 놀라워하시고, 대부분의 어르신이 고맙다는 말씀을 하신다. 평생 누군가로부터 "아름답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며, 그 말을 처음 듣는 날이 오늘이라는 분도 계신다.       

이 작업은 단순히 사진을 찍는 일이 아니다. 어르신들의 마음속에 숨어 있던 빛을 찾아내는 일이다. 나는 가난하고 소외된 어르신들이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돕고 싶다. 사진 한 장이 만들어내는 기적 같은 변화를 믿는다.       

사랑해, 그 간단한 말 한마디가 어떤 분들에겐 낯설고 어렵다. 하지만 그것이 그분들의 얼굴에 작은 미소를 띠게 하고, 그 미소가 다시 큰 웃음으로 번지게 하며, 결국 삶의 한 모퉁이를 따뜻하게 밝힌다.       

사진 한 장, 미소 하나 그리고 따뜻한 말 한마디.  

그것이 누군가의 삶에 작은 등불이 될 수 있다면, 나는 평생 카메라를 놓지 않을 것이다.       

“나는 사진 찍는 사회복지사이다. 오늘도 당신의 아름다움을 찾아드리러 간다.”       


# 미소 없는 미소       


"치즈라고 해 보세요."  

카메라 앞에 선 어르신들에게 그렇게 말하면, 다들 어김없이 "치즈"라고 따라 한다. 입술은 움직이지만, 그 얼굴엔 웃음기가 없다.  

"김치라고 해 보세요."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말은 하지만, 마음은 닿지 않는다.       

사진 촬영을 마치고 인화를 하면, 사진 속 얼굴은 미소를 띤 것 같지만 어딘가 어색하다. 눈은 웃고 있지 않으니까. 미소가 없는 미소, 행복이 빠진 행복의 흉내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사랑해’라는 말을 대신 권한다. 처음엔 "사랑해요?"라며 되묻는 어르신들이 많다.  

"네, 크게 한번 따라 해 보세요. 사랑해!"       

어색한 목소리로 작은 "사랑해"가 흘러나온다. 그 소리는 조용히 시작하지만, 점점 커지며 웃음으로 번진다. 어르신들은 처음엔 부끄러워하다가도 곧 입술을 벌리고, 웃음이 가득한 목소리로 "사랑해"를 반복하게 된다.       

그때 셔터를 누른다.   

    

‘치즈’나 ‘김치’로는 담을 수 없던 온기가 사진 속에 스며든다. 웃음과 함께 눈가에 깃든 부드러운 주름, 부끄러움으로 붉어진 얼굴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싸는 따뜻한 빛이 카메라 안에 담긴다.       

어르신들 대부분은 평생 카메라 앞에서 주눅이 들거나 자신의 모습을 애써 숨기며 살아왔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얼굴에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고, 모든 이야기는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당신도 모르는 당신의 아름다움을 찾아드립니다."  

카메라 렌즈 너머에서 바라보는 그들의 모습은, 어쩌면 그들조차 한 번도 마주하지 못했던 그들의 진짜 얼굴이다.       

미소 없는 미소로 남겨지던 얼굴들이 ‘사랑해’라는 말 한마디로 살아난다.     

  

# 사랑해, 그 한마디의 기적       


"사랑해라는 말 한번 해보세요."  

어르신들에게 그렇게 말하면, 긴장이 얼굴에 가득하다. 이마에는 미세한 주름이 더해지고, 입술은 꼭 다물린다. 어쩌면 평생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말, ‘사랑해’. 그 한마디를 내뱉기 위해 어르신들은 용기를 낸다.       

그 용기는 참으로 큰 것이다. 오랜 시간 마음속에 쌓인 수줍음과 머뭇거림을 깨부수고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 말은 단순한 단어 이상이 된다.       

"사랑해."       

부끄러움과 함께 터져 나오는 그 말은 가늘고 떨리지만, 어김없이 미소를 불러온다. 그리고 그 미소는 마치 빗물이 마른 땅을 적시듯 얼굴 위에 환하게 퍼진다. 처음 한 번이 어렵지, 그다음부터는 놀랍도록 자연스럽다.       

"사랑해!"  

어르신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웃음소리가 뒤따른다. 어떤 분은 그 말이 얼마나 신나는지 스스로 멜로디를 붙여 노래까지 하신다.  

"사랑해, 사랑해~"       

그 순간, 카메라 셔터가 찰칵 소리를 낸다.  

그 한 컷에는 어르신들의 용기와 부끄러움이, 미소와 웃음이, 그리고 행복이 고스란히 담긴다.       

‘사랑해’라는 말이 어르신들의 얼굴을 어떻게 바꾸는지 볼 때마다 나는 새삼 놀라운 기적을 경험한다.      

어르신들은 사진 촬영이 끝난 후에도 ‘사랑해’를 계속 중얼거린다. 얼굴에 미소를 띤 채로, 집으로 돌아가서도,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 말을 해보려고 노력한다. 그 한마디가 누군가의 마음을 녹이고, 관계를 바꾸고, 삶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든다.       


# 잇몸과 함께 피어난 미소       


"사랑해라고 한번 해보세요."  

내 말에 어르신들은 입술을 꼭 다물고 고개를 돌린다. 일부러 못 들은 척, 내 목소리가 닿지 않는 곳으로 시선을 보낸다. 어쩌면 이 어색한 분위기를 견디기 위해 더 굳은 표정을 지으시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안다. 이건 단순히 용기가 없어서도, 부끄러워서도 아니다.  

많은 어르신이 틀니를 착용하신다. 그러니 치아가 보이지 않는 잇몸을 드러내는 게 창피하신 거다. 나를 포함해 다른 사람들에게 치아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게 얼마나 불편하고 낯설게 느껴지실까.       

"사랑해요! 크게 한번 해보세요!"  

내가 다시 권하면, 입술은 더욱 단단히 다물린다. 그 모습이 조금 안쓰럽기도 하고, 때로는 사랑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갑자기 이런 순간이 온다.  

"사랑해."       

누군가 작은 목소리로 내뱉는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나도 잠시 멈칫한다. 주변 어르신들도 놀란 얼굴로 그분을 바라본다. 그러다 모두가 웃음이 터진다. 이미 잇몸을 드러내 버린 상황에, 그 어르신은 마치 "다 들켰는데 뭐 어때"라는 듯 손을 휘젓는다.       

그다음부터는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다.  

"사랑해!"  

"사랑해요!"       

큰 소리로 말을 외치며 손짓을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춤을 추며 ‘사랑해’를 노래로 만들어 부르기도 한다. 잇몸을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 얼굴은 세상 그 무엇보다도 빛난다. 그 순간 카메라 셔터가 찰칵찰칵 울린다.       

나는 사진을 찍는 사회복지사다.  

나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프로필 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내 카메라가 담아내는 건 그 이상의 것이다. 어르신들의 얼굴에는 평생 감춰왔던 자신감이 서서히 피어나고, 부끄러움이 사라지며, 숨겨졌던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잇몸이 드러난 웃음이 어색했던 그 순간은 이제 추억이 된다. 그것은 웃음없는 미소가 아닌, 진심이 담긴 사랑의 얼굴로 변한다. 잇몸이 드러나도, 주름이 깊어도, 나는 그 얼굴에서 눈부신 아름다움을 본다.       

사진을 통해 어르신들의 자신감이 생기고, 그들이 가진 이야기가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온다. 틀니를 신경 쓰던 어르신들이 더 이상 숨지 않고, 목소리와 웃음으로 자신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나는 오늘도 카메라를 든다.  

어르신들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사랑해’ 한 마디가 그들의 삶에 작은 변화를 일으키기를 바라며, 그 변화가 세상에 작은 빛이 되기를 바라며.  

사랑해, 그 한마디. 그 한마디가 만드는 기적을 나는 믿는다.     

  

# 숨김없는 미소       


어르신들의 얼굴에 숨김이 없어진 순간,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가끔 이렇게 생각한다.  

어떻게 참고 살았을까.       

평생 무언가를 숨기며 산다는 건 얼마나 힘든 일일까.  

잇몸을 드러내는 것이 부끄러워 환하게 웃는 대신 입을 꾹 다물고 살았을 날들이 눈앞에 그려진다. 사람들 앞에서 웃음소리가 작아지고, 사진을 찍을 때마다 표정이 굳었던 기억들. 그 모든 순간이 얼마나 무거운 짐이었을까.       

그런데, 그 짐을 내려놓는 순간이 온다.  

"사랑해."  

송곳니 두 개만 남은 치아를 보이며, 큰소리로 웃는 어르신의 얼굴은 세상 무엇보다 빛난다. 숨기는 게 없어지니 어깨가 펴지고, 마음이 가벼워진다.       

숨김이 없어지니 당당해진다.  

당당해지니 더 크게 웃는다.  

그리고 그 웃음은 송곳니 두 개만 남은 치아 따위와는 상관없이 아름답다.       

"이제 남들 다 알게 되었으니, 오늘부터는 지금처럼 크게 웃으면서 사세요."  

내가 그렇게 말하면, 어르신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그 웃음은 부끄러움이 아닌 용기에서 나오는 웃음이다. 그리고 그 용기에서 나온 웃음은 어떤 값비싼 보석보다 더 빛난다.       

나는 사진을 찍는 사회복지사다.  

내가 담는 건 단지 얼굴이 아니라, 그 얼굴에 새겨진 이야기다.  

숨기지 않아도 괜찮다고, 지금처럼 환히 웃어도 된다고 말하는 사진 한 장이 어르신들의 삶을 바꿀 수 있다면, 나는 카메라를 놓지 않을 것이다.       

오늘 어르신들이 보여준 큰 웃음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세상과 마주하는 모습이다.  

그 웃음은 숨김없이 살아가겠다는 선언이다.       

송곳니 두 개뿐이어도, 숨김없는 미소가 가장 아름답다.  

이제부터는 숨기지 말고, 세상에 그 미소를 마음껏 보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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