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가치를 중심으로.
최근 NTF에 대한 뉴스가 많다. 아무런 실물 가치가 없는 소위 “코인”들이 어마어마한 자산 가치를 뿜내고 있다.
최근에는 게임과 연관 지어 게임을 하면 관련 코인을 주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그렇다면 만약 게임 플레이가 노동임금을 넘는 경우는 어떻게 되는가? 게임 자체는 유의미한 노동이 되지 못한다. 노동의 정의란 “사회적으로 사용가치가 있는 무언가를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게임이 “사회적으로 가치가 있는 무언가”를 생산할 수는 있지만 “사용가치” 즉 소비재로써의 가치는 없다.
그렇지만 만약 노동임금보다 게임 플레이로 더 많은 돈을 버는 게 가능하다면, 그 누가 노동을 하겠는가. 결국 노동의 희귀해지면서 물가 상승과 동시에, 임금 상승도 나타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물가 상승이 임금 상승보다 클 것이냐, 적을 것이냐는 것이다. 만약 후자라면, NTF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착취를 억제하는 것일 것이다. 왜냐하면 노동자가 자신의 일한 노동가치로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NTF가 전자라면 큰 문제가 되고 가장 주목해야 하는 지점이 된다. 생각해보라. 그들은 노동을 하지 않고 결국 노동의 수혜를 받는다. 심지어 그 노동을 하는 사람의 생활 수준을 갉아먹는다. 이러한 행위는 충분히 착취라고 봐도 괜찮을 것이다.
이것은 NTF만의 문제가 아니다. 결국 자산가치가 과도하게 오르는 버블현상이나 미술품이나 다이아몬드 같은 사치품 또한 이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정당하게 지불해야 할 노동가치가 정당하게 지불되지 않아 쌓이게 되며, 자본주의의 기본 원칙인 MPM모델을 위해 특정 사물에 투자하게 되며, 실노동가치의 일부에 기생하게 된다. 즉 인플레이션은 일론 머스크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노동자에게 기생하는 세금이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소위 “주류 경제학”에서 주장하는 효용가치는 의미를 상실한다. 그들의 효용가치는 결국 노동가치에 기반해야만 성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밝혔듯 자산가치가 노동가치보다 빠르게 상승하고 있으며, 이는 노동가치의 소비재 가격에도 적용된다. 즉 노동자는 동일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 더 오랫동안 일을 해야 하며, 그러한 일의 일부는 자본가에게 직접적으로 들어가 이윤의 형태로 나타나는 게 아닌, 주가 상승이나 새로운 자산가치 형성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안유화 교수의 말을 인용하자면 “소위 블록체인 코인의 가격이 성립될 수 있는 이유는 특정 국가에서 엑시트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블록체인 코인의 효용가치가 성립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만약 노동을 통한 소비재로의 엑시트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소위 “투자”라는 것이 성립될 수 있는가? 현금이 가치 있는 이유는 상품을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지 현금 자체가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마르크스는 일찍이 이러한 현금의 물신성을 꿰뚫어 봤고, 자본의 유동성에 대해 물신주의의 최고봉이라고 하였다.
현재, 소위 “신기술”이라는 몇몇 일부는 총체적으로 이러한 노동가치를 창조하지 못한다. 광고, 블록체인, 메타버스 같은 투자는 착취를 어떻게 하면 효율적이고 은밀하게 할 것인지에 대한 항목이며, 체제를 어떻게든 더 오래 지속시키려는 발버둥이지, 인류의 창조성과 진보에는 기여를 하지 못한다.
노동가치는 소위 “주류 경제학”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효용가치에 밀려 사라진 게 아니다. 효용가치가 노동가치에게 기생하며, 이를 은폐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