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클이란 드라마
할 줄 몰라서였네
얼마 전에 종영된 엉클이라는 착한 드라마가 있다. 그 드라마에서 황우슬혜가 전혜진에게 한 말이 있는데 내겐 좀 충격적으로 다가온 내용이었다. 힘들고 어렵게 살아온 전혜진의 이야기를 듣고 황우슬혜가 “의지할 곳이 없어서 성격이 그랬구나!”라고 말하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은데도 어떻게 참고 사나 했는데 “근데 할 줄 몰라서였네! 안 해 보고 커서”라고 말하는 내용이다.
그동안 막장 드라마에 지쳤는데 엉클이란 드라마는 신선함 그 자체였다. 고단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은 힘들어도 힘든 줄 모른다. 그것이 힘들어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힘들어도 힘들다고 엄살을 부려 본 적이 없기에 그냥 그렇게 견디면 되는 줄 아는지도 모른다.
엉클은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누나의 뒷바라지로 살다가 가수가 되었지만 힘겹게 살아가는 삼촌과 조카의 이야기다. 누나는 어찌하여 결혼을 했는데 하필 시어머니가 졸부다. 그 시어머니에게 폭행을 당하면서 어렵게 이혼을 하고 빈털터리로 집을 나왔다. 그 후 혼자 아들을 키우기 힘든 상황에서 남동생이 집으로 들어오고, 삼촌과 조카의 좌충우돌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로 시작되는 드라마다.
모든 드라마가 그러듯이 선의 축에서 선 사람과 악의 축에 선 사람들의 모습들을 그리고 있다. 악의 축에 선 사람들도 결국은 선량한 사람이 되어가는 깨달음을 주는 착한 드라마다. 그 드라마를 보기 위해 다른 모든 일을 제쳐두고 주인공으로 나오는 오정세와 이경훈을 바라보았다.
최악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삼촌과 조카는 결국 견디어낸다. 해피엔딩으로 드라마가 끝이 날 때 세상의 모든 낙이 사라진 것처럼 허전했다. 그 후에도 드라마 ost “내 곁에 있어줘요”를 들으면서 엉클에 매료된 시간을 보냈다. 노래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허수아비/ 큰 소리만 치는 겁쟁이”로 시작해서 “내 곁에 있어줘요/ 내 편이 돼 줘요/ 내 친구잖아요”로 끝이 난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어려운 고비를 이겨낼 때마다 주위에 가까운 분들이 힘이 되어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살아 가는데 있어서 주위를 돌아보면 키다리 아저씨 역할을 해주는 사람은 꼭 존재한다. 또한 가족이란 가까이에 있는 가장 소중한 존재다. 그 가족이 있어 좌절 앞에서도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다.
물론 가족이란 울타리를 만들기까지 전혜진의 고달픔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학교 끝나면 알바에 어린 동생 챙기면서 쉼 없이 살아온 결과다. 소중한 가족을 온전히 갖기까지는 견디고 이겨내는 수고스러운 세월 덕분이었다. 그 시간을 살아내느라 전혜진은 투정 부릴 상대 하나 없이 오롯이 혼자서 묵묵히 견뎌냈다. 힘들어도 힘들다고 외마디를 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 삶을 살아냈다.
힘들어도 힘들다고 할 줄도 모르는 세월. 그 앞에서 온전히 살아낸 그녀를 응원하면서 내 세월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하지도 말라고 했는데 그 시절을 빼놓고는 어쩌면 지금의 사회를 온전히 말할 수 없다. 징검다리에서 다리 하나가 없으면 물에 빠지는 것처럼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나 때의 이야기를 통과해야 오늘이란 시간이 존재한다.
그때는 모두 힘들게 살았다. 어린 시절, 전기불이 들어오지 않는 시골에서 살았다. 호롱불을 켜야 했고, 연탄아궁이도 없어서 야산에 올라가 나뭇가지를 모아 불을 지펴 밥을 짓고, 하루하루를 견디는 삶을 살았다. 보릿고개를 견뎌내며 배고프다는 어린 동생들과 싸우면서 보냈다. 부모님은 밭과 들로 나가시고, 부엌일은 초등학생인 나의 몫이었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일인 줄 알고 살았다. 그 일이 천직인 것처럼 살았다. 요즘 같으면 아동학대로 신고가 들어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야간고등학교라도 갈 수 있다는 부푼 가슴을 안고 산업체로 떠난 친구들도 있었다. 다행히 그런 험난한 길을 택한 것은 아니지만, 힘들다고 투정하면서 보낼 상황이 아니었다. 모두 힘든 시기를 살아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부모님께 투정 부리지 못하고 살았다. 특별히 무엇을 잘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남들 보기에 그냥 그렇게 순하게 살았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황우슬혜의 “근데 할 줄 몰라서였네! 안 해 보고 커서”라는 그 말이 가슴에 들어앉아 쿡 박혔다. 안 해 보고 살았다. 내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살아서 표현에 서툴고 낯을 가리는 일이 많았던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기죽지 않고 살았다면 조금은 달라졌을까.
유년의 나 때는 버스도 다니지 않는 시골길을 홀로 걸어 다녔다. 어둑해지는 해 질 녘, 묘지가 있는 산모퉁이를 돌아 집으로 가는 길은 또 얼마나 무서웠던가. 어찌 보면 무던하게 사는 일이 잘 사는 일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멀리 돌아 나 때를 기억해보는 일은 이제는 흑백영화의 한 장면처럼 너무 오래된 일이다. 깊은 우물에 두레박을 던져 물을 길어내는 일처럼 아득해져도 결코 흐려지지 않고 더욱더 선명하게 떠오를 것이다.
할 줄 몰라서 하지 못한 일. 이제라도 하면서 살 수 있을까. 가끔은 무기력해지는 순간순간 털고 일어설 힘이 되지 않을까.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지만, 이제는 털고 일어서서 가벼워지리라 마음 먹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