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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미리 Oct 05. 2023

복사꽃, 피멍

(2023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 작품)


   

  “고목에서 복사꽃이 피었어야!”, 전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엄마의 목소리는 봄 처녀처럼 해맑다. 긴 겨울을 보내고 꽃망울을 내민 연분홍 꽃잎의 향기가 전화선을 타고 내게 도착한다. 세상이 봄을 준비하기 전부터 복사꽃이 피기만을 기다렸던 것처럼 소식을 알려 주는 엄마. “복사꽃이 얼마나 이쁜지 몰라야, 과수원에 와서 사진 좀 찍고 가거라.”라고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는 복사 꽃물이 가득하다. 그 목소리를 받아 세상에 꽃물이라도 뿌려 주어야 할 것 같다.     

  

  서둘러 시골로 향한다. 꽃잎이 지기 전, 엄마의 목소리에서 꽃물이 빠지기 전에 도착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힌다. 봄이면 또 꽃은 피겠지만 복사꽃을 보려면 다시 일 년을 꼬박 기다려야 한다. 엄마가 먼저 전화해서 시골집에 다녀가라고 하는 일은 좀체 없는 일이다. 일 년에 한 번 복사꽃 향기가 동구 밖으로 빠져나가기 전에 딸년을 불러들인다. “혼자 보기는 아까워야.”라고 말을 할 때면 그 이쁜 꽃을 기어이 내게 보여주고 말겠다는 결기가 숨어 있다.    

      

  엄마는 스무 살 꽃처녀가 되어 있다. 복사 빛 홍조는 감추려야 감출 수가 없다. 스무 살 엄마는 가난한 농가의 나이 많은 아버지를 만나 결혼을 했다. 복사 빛 홍조처럼 감출 수 없는 것이 가난이란 삶의 굴레였다. 그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더 깊은 수렁처럼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벗어날 수 없는 가난과 삶의 고단함에 밤 봇짐을 싸고 싶어도 병든 시어머니와 어린 자식들이 눈에 밟혀 눌러앉았을지도 모른다.          

  한문책을 손에 잡은 선비 같은 아버지는 밖으로만 떠돌았다. 물론 아버지 나름대로의 사명감이 있었겠지만 홀로 자식을 거두는 일이 엄마에게는 결코 쉽지 않았으리라. 아버지는 이른 아침 읍내로 나가면 해가 지도록 위장을 상해 가면서까지 경제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을 하러 다니셨다. 고단한 몸을 뉘면 아침이 되었고, 육 남매나 되는 자식들을 제대로 건사하기도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다.          

 

  자녀들이라도 건강했으면 좋았으련만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막내 동생이 세상에 나왔으나 선천적으로 건강하지 못했다. 의료보험도 안 되는 시절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해 빚을 지고 빚을 갚아 내느라 가정이 평온하지 못했다. 두 살 터울의 자녀들은 고만고만해서 손이 많이 갔지만 스스로 살아 내야 했다. 잠결에 엄마가 안 보이면 우리를 두고 밤 봇짐을 싸서 도망가 버린 것은 아닌지 두려워하곤 했다.        

  

  어느 해 아버지는 조그만 야산을 샀다. 그 산을 개간하여 복숭아나무를 심었다. 나무를 심고 전지를 하고, 구덩이를 파서 거름을 묻어 주는 끝이 없는 일이 시작되었다. 그 고된 일련의 일들은 엄마의 몫이었다. 사과나무도 배나무도 아닌 복숭아나무는 꽃만 이쁘게 피었다. 꽃이 지고 열매가 맺으면 손가락 매듭만큼의 크기가 되기를 기다렸다가 열매를 솎아 냈다. 고개를 올려 나뭇가지에 매달린 열매에 봉지 싸기를 하면 그 고단함은 배가 되었다.     

    

  무더운 여름이 오고 비바람이 부는 태풍의 한때를 이겨 내면 뜨거운 태양 아래서 복숭아가 익어 갔다. 연분홍빛으로 익은 백도를 수확할 때쯤이면 엄마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다른 과일과 다르게 복숭아는 털이 있어서 조금만 잘못 다루어도 알레르기가 일어나기 일쑤였다. 복숭아가 물렁한 품종이어서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했다. 그 복숭아를 화순 오일장으로 남광주 시장으로 팔러 나가시면 하루해가 저물어도 엄마는 소식이 없었다.           


  우리들이 세월을 좀 먹으며 객지로 나가는 동안, 허약한 막내 동생은 빈방을 지키며 엄마를 기다렸다. 그땐 의술이 발달하지 못했고 병명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우리들은 받아들이며 그냥 그렇게 살았지만 엄마는 죄인처럼 숨죽이며 살았다. 봄 한때 꽃을 피워 활짝 웃고, 수확 때까지 고통만 주는 복숭아나무처럼 동생은 잠깐 웃어 주었을 뿐 동생에게나 엄마에게나 고단한 세월이었다.     


  빈집을 지키고 앉아 혼자 시간을 보냈던 동생은 고단한 몸을 이끌고 해 질 녘 방문을 여는 부모님을 맞이해 주었다. 우리들은 각자의 시간에 얽매이고 엄마의 고단한 무게는 시간이 흘러도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복사꽃이 피고 지고 세월만 흘러갔다. 고단함을 안겨 주는 복사꽃이지만 일 년에 한 번이라도 엄마를 향해 환하게 웃어 주는 것은 복사꽃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스물네 살의 막내 동생은 봄날이 오기 전에 병원에 입원을 했다. 정상인의 삶을 한 번도 살아 보지 못한 막내였다. 복사꽃이 화사하게 핀 날 병원에서 퇴원을 했다. 복사꽃 아래서 조카들과 사진을 찍으며 환하게 웃어 주었다. 몸이 좋아진 줄 알았으나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보라색 오동꽃이 핀 날 이별을 했다. 봄날처럼 화사한 복사꽃이 핀 사진은 영정사진이 되었다.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고 했는데 엄마의 가슴에는 피멍이 들었다. 아무도 없는 빈집 방문을 열고 들어갈 때마다 “엄마”라고 부르는 막내의 환청을 털어 내며 오랜 세월을 견디어 내셨다. 그 많은 세월이 물처럼 흘러갔을 리 없었다. 봄마다 복사꽃은 피고, 사진을 찍으며 가슴에 묻은 자식을 꺼내보았으리라.    

      

  스무 살 꽃처녀처럼 웃는 엄마. 복사꽃이 핀 과수원으로 들어서자 복사꽃 한 가지를 잡고 다소곳이 서 계신다. “엄마 웃어봐!”라는 멘트는 공중분해가 되고 엄마의 얼굴은 주름살만 가득하다. 복사꽃처럼 환한 날들이었으면 좋았을 엄마의 시간은 주름살 꽃만 가득 피워 내고 있다. “꽃이 하도 이뻐서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라고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힘이 없다. 사진을 보여 드리니, “어째 좀 이쁘게 안 나온다냐.”라고 하면서 이쁘게 좀 찍어 보라고 하신다.    


  아무리 복사꽃이 이뻐도 엄마의 세월은 피멍으로 물들었을 것이다. 피멍을 먹고 자란 복숭아나무는 고목이 되었지만 봄이 오면 어김없이 꽃을 피운다. 그 나무 아래서 엄마는 가슴에 묻은 자식을 불러내었으리라. 정성 들여 키워 낸 막내아들을 대신한 꽃이었으리라. 그 꽃을 못난 자식에게 보여 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징하게 이쁘게 잘 키워났소.’라고 말하며 엄마를 향해 환하게 웃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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