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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미리 Oct 05. 2023

발톱 사유

아버지의 발톱을 보며(2023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 작품)


  

  발톱이 새부리처럼 굽어 있다. 아버지의 발톱은 한눈에 봐도 변색되어 거무스름하고 딱딱해 보인다. 무좀 때문에 발톱이 이렇게 변형된 것이라고 설명을 해도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당신의 발톱은 정상이라고 나중에 자를 것이니 관심을 끊어 달라고 했다. 발톱이 짧으면 발가락이 힘을 쓰지 못한다는 궤변과 함께.    

 

  아버지의 발톱을 나는 외면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알아서 하겠거니 했었다. 얼마 후 아버지 건강에 문제가 있어 병원에 갈 일이 생겼다. 시골집에 도착하니 양말을 신고 있는 아버지의 발톱이 먼저 눈에 띈다. 뻣뻣한 발을 들어 신발을 신겨 드리는데 가슴이 싸하고 찬바람이 지나간다.     


  요즘 들어 많이 쇠약해진 아버지는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거절하는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으로 향했다. 손주 녀석이 병원에 동행하겠다고 하니 겨우 승낙한 것이다. 병원에 가는 동안 차 안에서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노래라며 손주 녀석이 “눈물 젖은 두만강”을 틀어 드리니 좋아하시면서 따라 부르신다.     


  상담센터에 들러 상담을 받는데 젊은 날의 입담이 여전히 살아난다. 의사 선생님과 상담 도중 병원에 오는 길에 “눈물 젖은 두만강”을 들으면서 왔다고 자랑을 한다. 의사 선생님이 한 곡 뽑아 보라고 하니 아버지는 정말로 노래를 부른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 흘러간 그 옛날의 내님을 싣고/ 떠나간 그 배는 어데로 갔소/ 그리운 내님이여 그리운 내님이여” 말리지 않으면 끝까지 부를 태세였다.     


  노래를 부르는 아버지의 목젖이 올라온다. 목청을 높이는데 그 사이로 눈물방울이라도 흐르는 것처럼 보는 내가 힘이 들어 아버지가 안쓰러워졌다. 딱딱해 보였던 발톱이 자꾸만 아른거렸다. 딱딱해진다는 것은 굳어 간다는 것이고, 언젠가는 피의 흐름이 멈춘다는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리운 것들은 사라지고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당신의 건강과 상관없이 누군가 말만 걸면 노래라도 한 곡조 뽑을 것처럼 노래 부른 이야기나 노래 불렀던 이야기를 자주 한다. 아버지는 나이를 먹고 그 나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오고 있다. 나 역시도 자주 잊어버리는데 아버지는 더 심할 것을 안다.     


  아버지는 자신이 병원에 가는 일도 쉽게 용납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귀가 아프다고 해서 읍내에 나간 김에 이비인후과에도 들렀다. 의사 선생님이 귀를 보더니 귀지 때문에 귀가 막혔으니 물약을 주면서 귀에 넣으라고, 녹으면 다시 들리라고 했다. 아버지는 돌아오는 길에 “이제 갈 때가 되어서 귀가 아픈 것 같다고, 이 병으로 돌아갈 모양이라고 혼자서 생각을 했다.”라고 한마디 던진다. 이제 아버지는 새부리를 앞세우고 날개를 펴 멀리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이가 먹으면 누구나 돌아갈 때를 생각할 것이다. 누구나 돌아간다. 잘 돌아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요즘 문득문득 생각하게 된다. 아버지도 잘 돌아갈 그날을 수없이 되새기신 모양이다. 귓속이 아파서 한쪽 얼굴이 마비된 것처럼 힘들었다고 한다. 이제 돌아간다면 이 병으로 돌아갈 것이란 생각까지 했다니 속수무책으로 마음이 어지러워진다. 딱딱해진다는 것은 마음도 생각도 굳어 간다는 일일 것이다.    

  

  다음 날 추가 진료를 예약하고 시골집으로 향했다. 방 안으로 들어서니 양말을 벗은 아버지의 발톱이 나를 보고 있다. 딱딱하게 굳은 발톱이다. 곧 날아갈 준비를 하는 새부리처럼 뾰족하다. 불효녀는 난생처음 아버지의 발톱을 잘라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험난하게 살아오신 삶을 대변하고 있는 듯한 발톱을 보는 일이 버겁다.     


  산수(傘壽)를 훨씬 지나 구순(九旬)을 향하는 아버지의 발톱. 살면서 한 번도 발톱을 잘라 드린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문득 무겁게 다가와 나를 친다. 이게 무엇이라고, 무엇이 바쁘다고, 그동안 한 번도 잘라 드리지 않고 외면하고 방관만 해 왔을까.      


  “아버지! 발톱 잘라 드릴게요.”   

  

  아버지는 그동안 완강히 싫다고 했었는데 오늘은 순순히 발톱을 내놓겠다고 하신다. 발톱이 너무 딱딱해서 이대로는 자를 수가 없다. 세숫대야에 미지근한 물을 담아와 그 속에 발을 넣는다. 발톱에 물을 먹여 부드러워지기를 기다린다.     


  “물이 너무 뜨거우면 살갗이 홀라당 벗겨지니 안 된다.”     


  살갗의 감각이 둔한 것을 당신도 알기에 걱정이 되었는지 한마디를 하신다. “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제게 알아서 해 줄게요.”라고 답변하면서도 마음이 무겁다. 살집이 없는 아버지의 다리 역시 발톱처럼 굳어 딱딱하다. 부드럽지 않다는 것은 피의 흐름이 자유롭지 않다는 뜻이다. 굳어 있다는 것은 세포가 경직되어 죽어 간다는 의미다. 아버지의 발을 물로 씻겨드리며 발톱이 물러지기를 기다리는데 물러지는 일이 더디기만 하다.  

   

  난생처음 아버지의 발톱을 자른다. 언제 또 발톱을 잘라 드릴 수 있을지 모르니 일이라 정성을 들인다. 너무 딱딱하고 두꺼워 버겁게 발톱깎이를 들이댄다. 혹여 발톱 때문에 발가락에 상처가 날까 두려워진다. 발톱을 자르는 일이 쉽지 않다. 아버지 당신이 걸어오신 삶 역시 그것이 무엇이든 함부로 잘라 내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딱딱하게 굳어 변형된 아버지의 발톱. 기세등등했던 젊은 날의 어느 한때도 저 발톱에서 시작되었음을 알겠다. 늦은 깨달음에 가슴 한쪽이 아리다. 저 발톱을 앞세워 꿋꿋이 걸어온 아버지의 길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이 세상에 발 디딜 수 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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