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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미리 Apr 03. 2022

왔던 길 기억하니?

염려와 위로

    

  밤늦은 시간 친구가 문자를 보냈다. 자냐고 묻길래 “왜?”라고 답장을 보내도 소식이 없더니 20분이 지나서 문자가 왔다. 아침에 검사할 때도 이상 없었는데 늦은 시간 콧물이 많이 나와서 검사를 했더니, 두 줄이 나왔다고 미안하다는 내용이다. 친구에게 비상약이라도 먹으라고 말하고 내일 아침 병원에 가라고 문자를 보냈다. 오늘 점심을 친구랑 같이 먹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걱정이 된 모양이다.    

  

  점심은 야외에서 먹었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우선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다 따스한 생강차를 타서 한 잔 먹었다. 혹시 모르니 면역력이 떨어지면 안 될 것 같아서다. 아직까지 아무 증상이 없으니 컨디션 조절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내일 있는 점심 약속을 취소해야 할 것이고, 또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을 거듭했다.     


  내가 걸어온 시간을 그렇게 세세하게 짚어 본 적이 있었을까. 친구의 문자를 받고 오늘 만난 사람들을 꼽아보았다. 만약, 내일 아침에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일일이 설명을 해주어야 할 것이고, 나의 행적을 고스란히 기억해 내야 할 것이다. 행여 피해가 가지 않을까. 친구처럼 미안해하고 전전 긍긍하는 일이 생길 것이다.      


  얼마 전, 산책길에서 만난 고라니가 생각난다. 저녁 산책 코스가 산과 가깝기 때문에 만나게 되었다. 해가 저물자 산에서 내려온 모양이었다. 갑자기 눈앞에서 무엇이 뛰어서 고삐 풀린 개인 줄 알고 놀라 피하려고 했다. 더 놀란 고라니가 차도를 뛰어서 산 쪽으로 스며들었다. 고라니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왔던 길 기억하니?”라고 물었다. 걱정이 되었다.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까? 우려도 했었다.     


  고라니가 돌아가는 길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기억을 한다고 해도 위험한 차도를 몇 개쯤 더 만날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자고 도로를 건너 민가로 스며들었는지. 아무리 야행성 동물이라고 해도 위험을 무릎 쓰고 돌아가는 길을 어떤 길일까. 고라니가 아무리 귀소성이 뛰어나다고 해도 보는 이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요즘은 워낙 로드킬이 많이 일어난다. 아무리 운전자가 조심해도 고라니가 갈 길을 갔다고 해도 잘못하면 사고가 날 확률이 높다. 운전자 입장에서도 난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살아있는 생명체와 사고는 트라우마로 남게 된다.      


  언젠가 밤늦은 시간 휴가 나온 아들 녀석을 데려다준 적이 있다. 그 길에서 작은 생명체와 부딪혔다. 아무래도 느낌상 다리를 다친 것 같은데 그 이후로 어두운 밤길이면 로드킬에 대한 불안이 더욱더 커졌다. 정체 모를 그 생명체에 대한 생각은 오래도록 나를 괴롭게 따라다니고 있다.      


  “왔던 길 기억하니?”라고 물었던 것은 비단 고라니만의 길이 아니다. 생각해보면 오늘 내가 걸어왔던 길이기도 하다. 우리가 사는 하루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도 있을 것이고 좋은 시간도 있었을 것이다. 하루를 마감하면서 조차도 굳이 기억하려 하지 않고 살기에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잊고 지내기도 한다. 물론 살다가 문득문득 특별한 일들은 기억날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코로나19에 확진되었던 사람들이 많다. 아무리 조심을 한다고 해도 불발 상황이 있기 마련이다. 이제는 코로나19도 일반 의료체계로 전환하고 각자도생의 길에 들어섰다. 물론 처음에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한 이후보다는 그 기세가 약해졌다고 하지만 막상 코로나19에 걸렸을 때는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 주변을 맴돌아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기에 기다리고 기다렸다.    

 

  문제는 너무 오랫동안 코로나19에 시달려 많은 것들이 제자리를 찾아가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것이다. 이제 진료는 일반 의료체계로 바뀌면서 비대면 진료에서 대면진료를 추진하게 되었다. 달리 말하면 불편함을 받아들이는 시대가 왔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는 어떻게 다를지 여전히 접촉에 대한 불안함을 않은 채 주시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진자의 후유증이 검증되지 않아서 많은 설이 있다. 무엇이 정확한지는 아직 모른다고 해도 후유증이 있을 것이기에 걱정이 앞선다. 정부의 방역체계가 바뀌어 거리두기를 해제한다고 해도 이제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는 길이 조심스러울 것이다. 시간이 흐른 후에 나떼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이야깃거리가 될지도 모른다.     


  “왔던 길 기억하니?”라고 묻는 것은 이 시대에 아무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 의미 없음에도 뇌의 회로는 우리에게 안전을 묻는 화두가 될 것이다. 때론 염려처럼 위로처럼.




사진: 수원40세상카페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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