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긴 여기서 멀다』
정혜숙 시인의『거긴 여기서 멀다』시조집이 도착했다. 단아한 시인의 모습이 스친다. 시조 한 편 한 편을 읽으며 위로를 받는다. 그중 한 편을 소개한다.
「해 지는 쪽을 향해 걸었던 적이 있다」
해 지는 쪽을 향해 걸었던 적이 있다
먹물 같은 어둠을 찢으며 흰 달이 돋았고
시간의 부축을 받아
지금에 이르렀다
적응을 묻는 질문에 편안하다고 하면서
출가한 지 6년째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통증이 무지근하게
명치를 짓눌렀다
어느 봄날 불현듯 출가를 결심하고
몇 잔 술의 힘을 빌려 어머님께 고했다 했다
도처가 겨울이었던 때가
내게도 있었다
해 지는 쪽은 어느 쪽일까? 모든 것들은 소멸을 향해 치닫는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도 반드시 지게 되어 있다. 활짝 핀 꽃도 잎을 닫고 진다. 지는 것은 아픔을 전제로 한다. 누군가에게는 알 수 없는 무게의 짓눌림일 것이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의 통증일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지는 쪽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피한다고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너무 잘 알고 있다. “먹물 같은 어둠을 찢으며 흰 달이 돋았”으나 어느덧 시간이 흘러 돋아난 흰 날도 결국은 질 수밖에 없음을 시인은 노래하고 있다.
「눈물로 관이라도 짜듯」이란 시조에서 매미의 울음을 “눈물로 관이라도 짜듯”이라고 표현하듯이 어쩌면 누군가는 눈물로 관이라도 짜는 고통의 시간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그런 시간은 어떤 시간일까? 그 무엇으로도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이리라. 그 “시간의 부축”이 해가 지는 쪽으로 누군가를 인도했을지도 모른다.
그 지는 시간을 딛고 출가한 그는 이제 담담하게 편안함을 말하고 있지만, 시인이 통증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도처가 겨울이었던 때”가 있었다고 동병상련의 마음을 내비치는 까닭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편안해진 출가자처럼 해 지는 쪽을 담담히 걸어갈 수 있는 마음 자락 하나 가질 수 있다면, 세상 사는 일에 초연해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