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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미리 Sep 25. 2023

어른의 길이 멀다

어린 왕자를 읽으며

 

  화순 고인돌공원에서 어린 왕자를 만났다. 반가워서 한달음에 달려가 카메라에 담았다. 어린 왕자는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질 거야”라는 문구와 함께였다. 식상해진 문구지만 소리 내어 읽어보면 애틋하게 다가온다. 어린 왕자 책을 읽으면서 자기 별에는 잘 도착했는지 장미는 잘 있는지. 늘 궁금했었다. 이곳에서 만난 어린 왕자는 한껏 멋들어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돌아오는 길, 어린 왕자를 다시 음미해 본다.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설명해 준 “길들인다”는 말은 지구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되새기게 되는 의미이다. 우리는 수많은 것들과의 관계 속에 살면서 길들여지고 길들이며 살아가고 있다.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반려동물, 반려식물이 될 수도 있다. 길들여지는 일은 애착을 갖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어린 왕자에게 그 대상이 장미였던 것이다.      


  “너는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대로 있어. 말은 수많은 오해의 원인이 되거든.” 길들여짐에 대한 문구이다. 또한, 무슨 일을 할 때도 의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어린 왕자는 배우게 된다. 너무 거창한 의식은 삶을 피곤하게 하지만, 소소한 의식들은 삶의 활력이 될 수 있음이리라. 장미들에게 “너희 모두보다 내 꽃 하나가 내게는 더 소중해”라고 자기가 두고 온 장미가 세상에 단 하나뿐인 것을 깨닫게 되는 과정도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우리 인간은 나약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꼭 집어서 말해주지 않으면 깨닫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과의 관계 속에 살면서 상대방의 마음과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겉으로는 인정하지 않으려고 할 때가 있다. 특히 타인과의 관계보다는 가족이나 지인들과의 관계에서 그런 경우가 더 많다. 속내를 들키고 싶지 않은 변명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장미 역시 작가의 부인 콘수엘로가 모델이라고 한다.     

 

  어린 왕자를 보내며 여우는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네 장미가 너에게 그토록 중요한 것은 네가 장미에게 들인 시간 때문이야.”라는 문구를 읽으면서 독자들은 작가 생텍쥐페리를 기억 속에 저장했을 것이다. “나는 내 장미를 책임져야 해”라고 웅얼거리는 어린 왕자 때문에 작가에 대한 신뢰도 가졌을지 모른다.     


  코끼리를 통째로 삼키고 나서 소화하는 보아뱀의 그림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서 사람들은 모자라고 한다. “이건 상자야. 네가 원하는 양은 이 안에 있어.”라는 글 역시 양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상자 안에 있어서 마음으로 보아야만 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깊은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도 책임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의 삽화를 직접 그렸으며, 그림과 건축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군대에서 비행기 정비 업무를 하면서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군인으로 남고 싶었지만 약혼녀의 반대로 전역하게 되었다고 한다. 생계를 위해 민간 항공회사에 취업해 리비아 사막에 추락한 적도 있었다. 《어린 왕자》는 비행 도중 사하라 사막에서 불시착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난 것을 바탕으로 썼다고 한다. 그는 1944년 2차 세계대전 군용기 조종사로 전쟁에 참가하여 임무 수행 중 애석하게도 행방불명이 되었다. 비행사라는 직업을 가졌기에 《어린 왕자》라는 대작을 남기게 되었으며, 그와 관련된 경험들을 작품으로 썼다.     


  《어린 왕자》는 레옹 베르트에게 라는 글처럼 어른에게 바치는 어른의 동화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친구는 어른이고, 어른들은 모든 것을 이해할 것이라고 한다. 어른들도 모두 처음에는 어린이였다고. 하지만 나이가 먹는다고 모두가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여우의 가르침으로 어린 왕자가 깨달아가는 것처럼 살아가는 경험을 통해 조금씩 느리게 어른이 되는 것 같다.     


  노르웨이의 화가 에드바르 뭉크의 작품을 보면 인간의 불안, 공포, 죽음 등 심리적 주제를 다룬 그림들을 볼 수 있다. 그의 작품 “절규”를 보고 있으면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인간은 살면서 수많은 일을 겪게 된다. 생텍쥐페리가 비행사였기에 《어린 왕자》라는 작품이 존재하게 된 것처럼 뭉크의 가정사는 “삶의 프리즈”라는 작품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뭉크가 다섯 살 때 어머니가 결핵으로 사망했고, 열네 살 누나도 같은 병으로 사망했다. 아버지도 우울증에 시달리다 사망했으며, 여동생도 우울증에 시달렸다. 남동생도 정신병으로  사망했다. 어린 시절에 겪은 고통스러운 불안 심리상태를 그림으로 녹여냈다고 볼 수 있다.     


  뭉크의 “절규”에 나오는 무서운 붉은 하늘은 1883년 인도네시아의 크라카타우 섬에서 발생한 화산폭발과 관련된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보게 된 하늘의 상황을 메모와 함께 스케치해 두었다가 10년 후 1893년에 작품이 되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작가 내면의 절규라기보다 대자연의 절규를 보고 경악한 모습이라고 한다.      

  인간의 삶이란 주변 환경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 세상에 던져지는 작품은 감상하는 자의 몫이다. 그의 내면에 잠재된 심리상태를 작품으로 녹여냈기에 지금의 뭉크가 있을 것이다.  글이든 그림이든 작가가 살아온 환경에 의해 좌우된다. 나이가 먹으면 어른이 되기도 하지만 나이만 먹고 어른이 되지 못하는 일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책임지는 어른의 길이 아직은 멀다. 어른이라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수 있는 심안의 눈이 필요하리라.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 소중하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였을 뿐이다. 삶의 가치와 의미를 깨닫는 어른이 되는 길을 바라는 것이 어린 왕자의 진정한 마음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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