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소중한 물건
겨울 하늘이 생경하다. 엄마가 생각나 전화를 했더니 농장에 계신다고 한다. 시골집으로 차를 몰아 도착하여 어디에 있느냐고 소리쳐 부르니 퇴비사란다. 창고를 돌아 그곳으로 향하니 기역자로 허리가 굽은 엄마의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좀처럼 펴지지 않을 것 같은 허리가 느리게 움직인다. 가까이 가니 키를 위아래로 흔들고 있다. 엄마의 굽은 허리를 보는 내 눈이 적응이 안 된다고 아우성이다.
“엄마 뭐 해?”라고 물으니 허리를 펴는 법을 잃어버렸을까? 굽은 허리를 가까스로 돌린다. 허리를 펴고 ‘키질하시라’는 말을 차마 건넬 수가 없다. 자세히 다가가니 키에 콩을 담아 위아래로 흔들어 콩의 쭉정이와 검불 따위를 날려 보낸다. 나는 일하기가 싫었지만 그 모습을 보고 모른 척 돌아설 수가 없다. 쪼그리고 앉아 엄마가 키질한 것들 속에서 콩깍지 등 잡다한 것들을 추려낸다.
키를 어디에서 본듯하다. 어디서 봤을까 기억을 더듬어 보니 지난해 부모님을 모시고 담양에 있는 한국대나무박물관에 갔던 일이 생각났다. 그날 죽세공예품을 구경하던 엄마는 유독 키에 눈독을 들였다. 가격을 알아보니 신사임당 한 장은 있어야 살 수 있었다. 얼마나 키를 쓴다고 사려고 하느냐고 핀잔 아닌 핀잔을 주는데도 엄마는 기어이 사고 싶어 했다.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반짝반짝 윤기가 흐르는 키를 사가지고 왔다.
지금은 키를 많이 사용하지 않지만 시골에서는 필요한 농기구 중 하나다. 곡식 등을 키질하여 쭉정이 등 불순물을 걸러내는데 그만한 물건이 없다. 곡식을 담아 까부르면 가벼운 것은 날아가고 무거운 곡식이 남는 것을 ‘키질’이라고 하고, 불순물을 고르기 위해 키에 담아 높이 들고 천천히 쏟아 내리는 것은 ‘키내림’이라고 한다. 키를 나비 날개 치듯 부쳐서 바람을 내는 것을 ‘나비질’이라고 한다.
엄마가 선수처럼 키질하여 곡식을 고르는 일을 많이 보았지만, 나는 키질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콩을 골라 손질하여 내 입으로 들어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공정을 거쳐야 하는지를 새삼스럽게 되새긴다. 콩을 심어 새싹이 나고 열매를 맺기까지의 시간을 무엇에 비기어 말할 수 있을까. 펴지지 않은 허리를 구부리고 엄마는 얼마나 많은 ‘키질’과 ‘키내림’과 ‘나비질’을 했을까.
벼를 절구에 넣고 찧어서 키질하던 시대를 살아온 엄마다. 정미소에서 도정을 하기 전까지 수없이 해왔던 방법이었다. 반질반질한 키를 보면서 엄마는 키의 소중한 기억을 떠올렸을 것이다. 어디 벼뿐이었겠는가? 모든 곡식을 그곳에 담아 혀처럼 마음대로 움직여 알맹이만 골라냈던 세월을 살아왔으리라.
사는 일이 그러하였을 것이다. 불필요한 것들을 걸러내고 알맹이만 남기기 위해 수많은 키질을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걸러내고 나면 남는 것이 있었을 것이기에 잠시라도 고달픔을 잊었을 것이다. 쭉정이가 되지 않고 제대로 된 알맹이로 자라기를 바라면서 보낸 세월에 허리가 굽었으리라. 키질하고 나면 얼마 남지 않는 알맹이를 모아 고르고 골라 가용을 만들었을 것이다.
산골로 시집을 와 농사일을 하면서 육 남매를 낳아 키우셨던 엄마. 소중한 알맹이로 키워 장성한 모습을 보고 싶어 했을 것이다. 자식 일만큼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던가. 일찍부터 건강을 잃은 막내아들을 먼저 보내고 엄마는 이십여 년이 넘도록 눈에 넣고 가슴에 품은 세월을 보냈다. 엄마에게 알맹이로 남는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일인지 가늠하게 된다.
엄마는 고운 옷으로 치장하고 살아본 적 없었기에 그냥 그렇게 농사꾼으로 살면 된 줄 아셨다. 이제 나이가 들어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열심히 살기는 했지만 왜 그렇게 미련하게 농사일만 하면서 세월을 흘러 보냈는지 모르겠다고 한스러워했다. 아픈 몸과 구부러진 허리만 남았지만 그래도 함께 세월을 보내온 것이 농기구들이다. 그래서 장신구도 아닌 키가 갖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키는 엄마에게 소중한 물건이었음을 이제야 알겠다. 대나무박물관 죽세공예품 앞, 그 많은 것 중에서 기꺼이 신사임당을 주고 키를 가져오고 싶었던 마음을 조금이나 헤아려본다. 키를 마주하니 엄마에게 핀잔을 주던 그때의 일이 스친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져 생경한 겨울 하늘을 올려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