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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한잔]

by 전 율

술을 별로 좋아하진 않는데,

가끔은 무지 먹고 싶을 때가 있다.


머리가 복잡해서,

마음이 허전해서,

한바탕 웃고 떠들고 싶어서,

오늘은 도저히 혼자 있는 게 싫어서,

마음속 화를 풀고 싶어서,

오늘은 용기를 내고 싶어서,

혹은, 그냥 혼자 조용히 사색에 잠기고 싶어서.


같은 한 잔을 마시면서도,

그날의 감정에 따라 맛이 다르고,

그날의 분위기에 따라 술잔의 무게가 달라진다.


어떤 날은 달디단 꿀물이 되고,

어떤 날은 마음 깊숙이 쌓인 감정 퍼올린 쓰디쓴 썩은 물이 된다.


술은 때로는 위로가 되고,

때로는 도피처가 되며,

때로는 아무 말 없이 내 곁을 지켜주는 친구가 된다.


누군가와 함께 마시면,

그 한 잔 속에 대화가 스며들고,


혼자 마시면,

그 한 잔 속에 내 생각들이 녹아든다.


술이 사람을 망친다고들 하지만,

나는 가끔 술 한 잔이 사람을 솔직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한 모금 넘길 때마다,

가슴에 쌓였던 감정들이 조금씩 풀린다.

숨겨왔던 말들이 술잔 위로 떠오르고,

머릿속이 조금씩 가벼워진다.


결국, 술이 맛있어서 먹는 게 아니라,

그 술을 마시는 순간이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 나는 어떤 이유로 술 한 잔을 들고 있는 걸까.

머리가 복잡해서?

마음이 허전해서?

아니면 그냥, 오늘 하루도 꾸역꾸역 버텼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술잔을 기울이며,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쉰다.


그 한숨을 누군가가 듣길 바라며....


술한잔.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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