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회고록

Chapter2. 회사 이야기 - 흔들리는 배 위에서

by 제와킴

2-1. 무난했던 상반기, 지옥이 된 하반기

2025년 회사 생활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는 뜻의 '할많하않'이다.

올해 초만 해도 괜찮았다. 아니, 사실 어느 회사든 100% 만족스러운 회사 생활이란 건 정말 어렵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나름 만족하고 있었다. 출근할 때 발걸음이 무겁지 않을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조직 개편이 있었다. 겉으로는 효율화, 시너지, 성장 같은 그럴듯한 단어들이 오갔지만, 현장에서 느껴지는 건 혼란이었다. 마치 잔잔하던 바다에 갑자기 파도가 일기 시작한 것 같았다.

조직장은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이었는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덩달아 조직원들도 영향을 받았다. 배가 흔들리면 그 안에 탄 사람들도 당연히 흔들릴 수밖에 없으니까.

사람 수는 그대로인데, 요구되는 일의 양과 범위는 점점 늘어났다. 전문 직무와도 맞지 않는, 겉으로 보여주기 위한 결과물들이 많아졌다. "이건 왜 우리가 해야 하죠?"라는 질문에 돌아오는 답은 언제나 "해야 하니까"였다.

원래도 내 영역이 아닌 일까지 커버하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 범위가 상상을 초월했다. 마치 축구 선수에게 농구공을 던져주고 "이것도 공 아니냐, 다룰 줄 알아야지"라고 말하는 느낌이랄까.


2-2. 청팀끼리 줄다리기를 하는 조직

회사는 결국 여러 직무들이 서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간다.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균형을 찾아간다. 마치 줄다리기처럼 말이다.

줄다리기는 청팀과 백팀이 서로 반대편에서 줄을 당긴다. 한쪽으로 쏠리면 다른 쪽이 힘을 더 주고, 그렇게 팽팽한 긴장 속에서 최선의 지점을 찾아간다. 기획팀은 사용자 경험을 중시하고, 개발팀은 기술적 현실성을 고려한다. PM은 일정을 지키려 하고, 개발자는 품질을 지키려 한다. 서로 다른 입장에서 줄을 당기기에, 결과물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그런데 올해 내가 느낀 건 좀 달랐다. 청팀과 백팀이 줄다리기를 하는 게 아니라, 청팀끼리 줄다리기를 하는 느낌이었다. 같은 색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양쪽에서 줄을 잡고 당기고 있었다. 그러니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청팀의 승리였다.

개발자가 기획을 한다. 개발자가 PM 역할도 한다. 겉으로 보기엔 효율적일 수 있다.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하니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줄어들고, 의사결정도 빨라 보인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개발자가 기획을 하면 어떻게 될까? 자연스럽게 만들기 쉬운 쪽으로 기획이 흘러가기 쉽다. 사용자 입장은 상대적으로 뒷전이 되고, 내부 사정이 우선순위가 되기 마련이다. 개발자가 PM을 하면? 스스로 개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일정을 잡고, 스스로 조정하는 일정 관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전문성이란 단순히 그 일을 잘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 일을 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관점과 기준이 있다는 뜻이다. 그 관점들이 부딪치고 조율되면서 더 나은 결과물이 나온다. 그런데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하면, 그 건강한 긴장이 사라진다.

청팀끼리 줄다리기를 하는 조직에서는, 줄다리기가 줄다리기의 의미를 잃는다. 그저 형식만 남을 뿐이다.


2-3.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

팀원들이 하나같이 어려움을 호소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거까지 우리가 해주는 건 좀 무리가 아닐까요?" "우리 일정도 빡빡한데, 이건 어렵습니다."

합리적인 의견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건 더 강한 요구였다. 쥐가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하지 않던가. 마치 그런 느낌이었다.

당연하지 않은 일을 당연한 거라며 요구했다. 그걸 완수하지 못하면 팀원의 역량을 지적했다. "이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라는 식의 말들은, 팀원들의 의욕을 점점 떨어뜨렸다.

회의실 분위기는 점점 조심스러워졌다. 예전에는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때로는 웃으면서 문제를 풀어가던 공간이었다. 이제는 누가 먼저 입을 여는지 눈치를 보는 자리가 됐다. 말을 꺼내면 지적받을까 봐, 모두가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지쳤다. 물리적인 업무량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신뢰가 약해진 것이었다. "열심히 하면 인정받을 수 있다"는 믿음, "합리적으로 의견을 내면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기대, 그런 것들이 조금씩 흔들렸다.

올해 하반기는 정말 힘들었다. 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한숨이 나왔고, 퇴근할 때도 개운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회사 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회사 이야기는 이 정도로만 하고 싶다. 더 깊이 들어가 봤자 좋을 게 없다. 지나간 일이고, 어차피 바꿀 수 없는 과거다. 다만 이 경험을 통해 배운 건, 조직의 건강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게 흔들리면 얼마나 빠르게 영향이 퍼지는지였다.


순화해서 글쓰기가 힘들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2025년 회고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