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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좀 많이 느리고 둔합니다.

그래서 행운입니다.

by 그로밋킴

아기들을 보면 하루, 일주일, 한달 차이로 발육상태가 엄텅 다르다는걸 친구들 아기들이 커가는걸 보며 알았다.


한참 결혼적령기 때 우루루 결혼하고 우수수 아기를 낳고

고만고만하게 몇개월 차이 안나는데 키며 몸무게 언어발달속도부터 걷기까지도! 그래서 억울했다.


12월생인 나는 1월생인 아이와 같은 해 태어나서 친구지만 그 친구가 걸을 때 쯤이면 나는 옹알이밖에 못하며 누웠을 시기아닌가!!


학교를 들어가고 여러가지 면에서 느렸다.

선생님 말을 이해하는 것도 책을 읽고 이해하는 것도 밥 먹는 것도, 하교할 때 걸음조차도.

엄만 내가 둘째라 큰 기대를 안했다고 했다.


‘그냥 책가방만 들구 지 앞가림이나 잘하고 학교나 왔다갔다 잘 하면 되지’


그런 나를 차근차근 기다려주며 가르쳐준 부모님… 이라고 아름답게 포장하고 싶지만 역시 현실은 다른 법이다.

느린 아이 치고는 엄청나게 성격급한 엄마 밑에서 자라서 그런가 공부도 곧잘 했고 위에 18개월 나이차이가 나는 언니가 있어 눈치는 빨랐다.(우리 언닌 어릴 때 나에게 히어로였다. 지금도 그런가?)


아무튼,

학교를 다닐 땐 느리고 둔한게 손해 같았다.

남자애가 돌려돌려 고백하면 못알아들어서

‘어 넌 정말 훌륭한 친구지!!‘ 라고 많은(?) 남사친을 만들었다.

시험공부도 느려 남들 한번 읽으면 이해할걸 두번 세번 돌려봐야 이해가 됐다. 그래서 늘 시험 전날 밤을 샜고 시강적으로 너무 손해란 생각을 했다.

사회 나와서도 마찬가지로 느려서 혼나고, 욕먹고 그래서

‘음 승진은 좀 늦던지 힘들겠구만’ 생각하며 많이 내려놓고 지낸거 같다.


그런 나에게도 이게 행운으로 작용한 때가 있으니 바로 아픈 통증에 관한 것과 연차가 쌓여 업무력이 늘으니 자연스럽게 난 “인내심이 강하고 차분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뭔가 모르는 사람에게 두번 세번 설명해도 화가 나지 않았다. 왜? 내가 그랬으니까 ㅎㅎㅎㅎㅎ

반대로 상대방이 못알아 들을 말을 해서 스무고개를 해도 괜찮았다.


아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어지간히 안아프면 아프다! 병원간다! 하지 않는다.

에이~ 뭐 좀 지나면 낫겠지

그렇게 거의 매일을 배탈과 살았던 나의 20대도 내과가면 위염, 장염 얘기할거라며 심하면 병원에 갔지만 대충 약국에서 약을 사먹고 지났다.

어디 부딪쳐 멍이 들어도 남이 “너 여기 멍들었어! ”라고 말해줘야 아는 정도다.


그래서 이번에 크게 아프고 정말 불행 중 행운이라 생각한 것은 아직까진 항암과 수혈에 대한 부작용이 크게없다. 울렁거림이 가장 흔한 증상이라는데 난 머리만 좀 아프지 울렁거림은 아직 참을만 한 것 같다. 안느껴진거 같기도 하다.

골수검사때도 엄마가 엄청 걱정했지만..

“생각보다 안아픈데? ”하니 엄마 걱정할까봐 안아픈척 한다고 감동받아하시길래 “진짠데?” 라고 감동을 파괴했다.


무수한 채혈, 주사도 아직 버틸만하고

처음 백혈병진단 받기 전 까지도 별다른 증상보다 하혈이 너무 비정상이라 병원을 찾았다.


다행이다. 둔해서

그냥 이렇게 조금만 아프다 얼른 다 나아서 퇴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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