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치료를 시작하면 흔한 부작용 중에
변비가 있다고 한다.
앞서 먼저 병을 겪은 분들의 흔한 조언 중 하나가
하루만 화장실을 못 가면
바로 마그밀 처방을 요청하라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도 그것이 찾아왔다.
2025.10.07
1인실에서 내려올 때부터 화장실을 못 갔다.
간호사 선생님에게 살포시 얘기를 했다.
“화장실을 못 가고 있어요 (소곤소곤)”
“어! 언제부터요? 하루 됐으면 약 처방되는지 알아볼게요! “
“왜 왜 변비야??”
샘이 나가자마자
온 병실 사람들이 나의 변비소식을 알았다.ㅠㅠ
그리고 화장실만 들어갈 때면
“파이팅“이라고 응원을 받고
“(절레절레) 실패했어요”라고 하면 다음번을 기약하며 응원받았다.
배출되는 게 없으니 당연히 뭘 먹어도 배가 묵직하고 불편하니 밥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배가 하루 종일 부글거리니 너무 기운이 없었다.
위에선 내보내고 싶고.. 아래서는 안 나오고 ㅠㅠ
어릴 때는 몰랐지만 크고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고 여러 심리학책들을 읽으며 엄마가 심하게 두 가지 강박이 났다는 것을 알았다.
오염강박과 먹는 것의 강박.
한 끼만 굶어도 마치 내가 잘못될 것처럼 난리였으며
안 씻으면 곧 세균에 감염된 죽을 것처럼 엄청 깔끔하게 키우셨다.
이게 병원에서도 시작되었다.
입원 후 골수검사 및 중심정맥관 삽입을 하면서 며칠씩 못 씻는 날이 생겼고 머리는 떡지고 간간히 세수 양치는 하지만 샤워를 못했다.
당장 물수건으로 온몸을 닦아주겠다고 하여
나는 신생아 사이즈가 아니고
움직이지 않아 땀이 안 났으며
나도 좀 꿉꿉하긴 하지만 참을만하다.
때가 되면 샤워와 머리 감기가 가능해질 거고 그때 씻겠다고 했지만 난리였다.
먹는 것 역시 암환자는 잘 먹어야 빨리 나 아를 백만번은 들은 것 같다. 일단 병원밥의 양이 결코 적지 않다.
이렇게 흰 밥을 밥공기 가득 꾹꾹 눌러 담겨 오고 선택식도 국그릇의 두 배크기의 양푼이 같은 그릇에 거의 가득이다.
움직임이 없는데 그 밥을 다 먹으면
지금처럼 화장실을 못 가는 상태에서 난 어쩌란 말인가.
호중구가 낮아 요구르트, 요플레, 유산균 다 금지인데..
그래도 걱정이 많은 엄마를 위해서 꾸역꾸역 국에 밥을 말아 반공기씩 먹었다.
“먹기 싫음 먹지 마”
이 말이 간절히 듣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 엄만 저것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한술 뜨고 있는데도 이거 먹어라 저거 먹어라 이거 해서 먹음 더 맛있다며 젓가락으로 숟가락 위에 탑을 쌓았다.
그리고 계속 후식을 권했다.
그렇게 난 며칠을 화장실을 못 갔다.
2025.10.08
결국 배가 난리가 났다.
화장실을 거의 30분에 한 번씩 들락날락했다.
병실 모든 이의 응원 속에 들어갔다가
절망감만 안고 나왔고 다들 안타까워했다.
엄만 또 식이섬유를 먹어야 한다며 뭘 먹이려 했다.
울고 싶었다. 너무 폭력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엄마 딴에는 아픈 딸이 못 먹고 안쓰럽고 안타깝겠지만
환자 사정을 고려해 주고 나를 이해해 주고 맞춰주면 좋겠다고 했지만 들어먹히질 않았다.
다행히 호중구가 괜찮아 사과와 배를 조금 먹었다.
결국 점심까지 먹고 엄마는 잠시 볼일 보러 외출을 하시고 친구들은 변비에 효과 있다는 많은 자세들, 운동 등등을 보내주며 계속 응원해 주었지만 뭘 해도 효과가 없었다.
요플레가 간절했다. 그러나 금지다. ㅠㅠ
저녁타임. 도저히 저녁을 먹을 정신이 없었다.
식은땀이 계속 나고 ㅠㅠ 배는 부풀고 부글거리고..
간호사 선생님을 부르자 비장하게 얘길 했다.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 방법이 없으니 관장을 합시다.”
“관.. 관장이요?? ㅠㅠ 그거 하면 화장실 좀 갈 수 있나요?”
사실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것보다 이 변비를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었다. 너무 힘든 시간이었고 인생의 최대 고비 같은 느낌이었다. 암이 아니라 변비로 고통받을 거랑 생각을 전혀 못했다.
“해주세요.. 화장실 오늘 해결 안 되면 저 진짜 죽겠어요.”
그래도 아직 정신이 있으니 살짝 민망해하자 간호사선생님이
“이거 진짜 흔한 일이에요. 아아아 아아아 소리 내고 있음 1초 만에 끝나요. “
진짜로 아아아아 하는 사이 끝나고 선생님이 신호와도 바로 가면 안 된단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보호자 없이 관장이 진행됐다. 보호자가 있다 한들 뭐 어쨌을까.. (나중에 알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보호자 있을 때 해야 하고 혈액암은 관장 잘못하면 항문출혈 위험 때문에 권하지 않는다고 한다.)
갖가지 유튜브 관장썰을 보며 얼마 만에 신호가 오고 얼마나 참아야 하는지 보고 있었다.
약마다 다르겠지만 유튜브는 대부분 10분 뒤면 반응이 와서 세네 번씩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던데 나는 30분이 넘도록 아무 반응이 없었다.
‘이게 정말 효과는 있는 걸까’
생각하는 사이 밥이 나왔다. 오 마이 갓
도저히 밥을 먹을 정신이 없고 엄마가 없길 천만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있었으면 분명 먹였을 거다.
그리고 한 40분이 지나자 도저히 배가.. 참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화장실로 뛰어가서 변기에 앉았다.
약간 장애인 화장실 비슷하게 곳곳에 잡을 수 있는 손잡이나 봉이 설치되어 있다.
그 봉을 잡고 식은땀이 줄줄 나는데 안 나왔다.ㅠㅠ
정말 울고 싶었다. 아기 낳는 게 이런 기분일까..?
밑에 항문은 아프고 변은 안 나오고 배는 꿀렁꿀렁하며 계속 내보내려 하고 ㅜㅜ
거의 한 시간 가까이 혼자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밖에서 걱정이 됐는지 수시로 간호사와 옆침대 언니가 노크를 했다.
“네.. 괜찮아요.. 나갈게요..”
일어나면 다시 신호가 와서 앉고 앉으면 안 나왔다.
결국 울음이 터졌다. 너무 힘들고 아프고 뭔가 서러웠다.
꾸역꾸역 중간에 실수를 하지 않겠지란 생각이 들 때쯤 옷을 주섬주섬 입고 나오자 간호사쌤이 보고 너무 놀래서 얼굴도 하얗고 지금 우리가 이렇게 힘쓰면 안된다고 ㅠㅠ 피나면 안되기 때문에 잠깐 안정을 취하고 있으라고 했다.
침대에 누워서 꺼이꺼이 울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빨리오라고..
좀 이따 간호사선생님이 식판을 치워주고 항암제를 빈속에 먹음 안되긴 하는데 약은 먹어야 하니 일단 먹으라고 했고 그 뒤 변비약이 하나 더 처방됐다. 진작 주지!!!!!!!!!!!!!!
관장의 트라우마로 변비약도 무서웠다. 간호삼샘이 안정시켜 주며 다르니까 먹어보라고 해 먹고 밤 10시쯤 드디어 4일 만에 성공했다. ㅠㅠ
변비가 뭐라고 ㅠㅠ 사람을 이렇게 잡나.
엄마가 왔다. 내 상태를 보자마자 땀나고 고생했으니 씻자고 했다. 나도 샤워가 간절히 필요했다. 씻고 나와서 이제 살았다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