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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생활에서 향상된 기능들

by 그로밋킴

병원에 입원한 지 이주가 넘었다.

난 매우 아파서 입원했는데 자칫 나이롱환자 같아 보이게

생각보다 잘 버티고 있다.


장기입원자가 되어 몇 가지 기능들이 향상되었는데

댕댕이 청력과 예측력, 관상 같은 것들이다.


일단 병실은 4인실로

커튼으로 분류된 각자의 방에서 생활한다.

그러다 보니 생활소음은 피할 수가 없는데

불가피하게 나이, 고향 같은 개인정보를 들을 때도 있고

환자 보호자가 싸웠는지,

환자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를 알게 된다.


우리 병실은 공동보호자 체제(?)로

한 구역의 보호자가 자릴 비우면

다른 보호자가 자처해서 커튼 밖의 소리를 듣고

누가 아프다고 하면 간호사를 불러주기도 하고

밥을 다 먹고 나면 식판을 대신 내다 주기도 하며

말 못 하는 환자분에게 대화를 해드리기도 한다.


나와 엄마는 자주 다투는데

모두 숨죽여 듣고 있다가 어느 순간

”아가씨가 잘못했구먼! “

“아휴 어머님이 양보 좀 하셔요~ 딸이 아픈데”

라고 중재를 시켜주신다. ㅋㅋㅋ

그리고 마음을 다해 화해하진 않았지만 병실의 분위기를 위해 쉐도우모녀 모드로 들어간다.

웃으면서 안 싸운 척 화해한 척

며칠 뒤면 자동으로 풀릴 사소한 일인데 말이다.


댕댕이 청력과 예측력은

소리로 대부분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누가 오고 있는지를 예측하고 대부분 잘 맞춘다.

간호사선생님 카트가 들어오는 소린지,

환자의 링거병 미는 소린지,

보호자 발소린지, 교수님 발소린지

기가 막히게 안다.

마치 저 멀리 사람에게 들리지 않는 보호자의 발소릴 듣고

현관문에 마중 나간 댕댕이처럼 말이다.


낮에는 보통 병실 문이 열려있는데

멀리서 기계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면

엑스레이군, 심전도군, 청소 이모님들 카트 끄는 소리군, 간호사 선생님이 오고 있군 이런 걸 예측해보곤 한다.

나는 심전도를 주기적으로 검사하는데

기계 끄는 소리만 들어도 잘하는 선생님이 오는지 아닌지도 구분이 된다.


아픈 환자들에겐 사실 관상이랄 게 별로 없다.

늘 아프기 때문에 찡그리고 있고 좀 나으면 웃고 있다.


그래서 내가 주로 보는 관상은..

간호를 잘할 상인가 간병인과

주사를 잘 놓을 상인가 간호사선생님들

그리고 내게 무척 중요한 심전도를 잘할 상인데


우선,

난 한번 옆침대 간병인에게 공격을 당한 적이 있었다.


우린 면역에 취약한 질병이라 병실 화장실은 환자만 사용하게 되어있다. 어떤 균이 어떻게 침범할지 모르기 때문에 코로나때와 같이 수시로 손소독제와 마스크를 쓰고 있다.


근데 정말 인상 사나운 간병인 아주머니가 오셨다.

느낌이 싸했다. 간병은 잘할까?

아니나 다를까 누워서 꼼짝도 못 하는 할머니를 구박하기 시작했다. 겁도 없다. 듣는 귀가 몇인데..

내가 이 돈 받고 대소변 받아야 하냐며 안 치워서 간호사가 대신 치워주며 욕창 생기니 잘 봐줘라 하고 가자마자 3시간을 외출했다.


그리고 수시로 환자용 화장실에 들어가 용변을 보고 빨래를 빨았다. 불안했다.

입원 초짜였던 나는 간호사를 대리로 이용할 생각을 못하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이모님.. 죄송하지만 여기가 환자만 쓰는 화장실이에요.. 그래서 보호자 분들은 밖에 보호자 화장실 이용하셔야 해요.”


하자마자 갑자기 나에게 막말을 퍼부었다.


“그렇게 똑똑해 빠졌는데 왜 병 걸렸냐?” 등등


엄청 난리를 쳐 간호사 네 분과 보안요원 두 분이 와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난 드라마에서 보던 회장님들이 뒷목을 잡고 악 하며 쓰러지는걸 직접 경험했다. 너무 떨려서 혈압이 150이 넘고 손발이 후들후들 떨려 간호사들의 부축을 받고 휠체어에 실려 다른 공간으로 이동됐다.


그렇게 하루동안 간병인아줌마만 병실에서 쫓겨나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바로 교체된 간병인이모님이 오셨는데 인상이 너무 온화하고 좋아 보였다.

역시 누구보다도 본인 어머니 돌보듯 성심성의를 다해 할머니를 돌보긴다. 병실 보호자들이 돌아가며 이모님께 번호를 땄다. 혹시 간병인 필요할 일 생기면 이모님께 연락드릴게요 라며.


주사는 경력의 차이겠지만

보이지 않는 혈관을 귀신같이 찾아 정말 조금 따끔하게 놓는 분과 못 찾아서 두 번 놓는 사람이 있다.

신규 간호사들이 특히 그렇고 대부분 얼굴이 경직되어 있고 긴장하면 백퍼센트다.

물론 그분들도 경력을 쌓아 훌륭한 간호사가 되겠지만 마루타가 된 것 같은 기분에 속상함이 없는 건 아니다.


커튼을 걷기 전 들어갈게요~

목소리로 먼저 잘하는 선생님! 을 알아보고

모르는 목소리와 커튼이 걷혔을 때 모르는 얼굴이면…

슬퍼진다 ㅠㅠ


그리고 마지막은

내가 치료받는 약물은 심장에 무리를 줄 수 있어

주사 주입 전후로 하루 총 2번 심전도 검사를 하는데

첨엔 상의를 다 열어야 하니 같은 여자여도, 남자 선생님은 더 당황스러울 거라 생각했다.


첫 심전도는 안경 낀 정말 공부 잘했을 거 같은 남자 선생님이었는데 그분은 상의를 다 오픈도 안 하고 1분 컷으로 끝내줬다. 오 역시 뭐든 잘할 관상!


두 번째는 염색과 화장이 짙은.. (외모로 못한다는 걸 평가하고 싶지 않았지만) 환자 정보를 파악하지 못했는지 보통 등록번호만 얘기하면 되는데 이름과 나이를 묻고.. 알코올젤을 바르겠다고 말하더니 손소독제가 줄줄 흘러 환자복이 젖도록 발랐다. 조금 충격이었다.

그리고 뽁뽁이를 붙이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 심전도 검사 시간도 길어지면서 뽁뽁이를 떼고 나니 부황뜬것처럼 멍이 들어버렸다.


세 번째는 자신감에 찬 표정과 운동을 많이 한 것 같은 다부진 몸을 가진 남자 선생님인데 얼굴을 보고 알았다.

‘1분 컷이겠군’

역시나였다.


네 번째는 들어올 때부터 기계 탓을 했다. 음..


오늘도 발소리, 기계 발소리를 들으며 다양한 예측을 하고 맞춰 보았다. 퇴원하면 철학관이나 차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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