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편식쟁이가 되어버렸다.
편식이란?
편식은 음식을 골고루 먹지 않고 자기 입맛에 맞는 음식만 먹는 식습관을 뜻한다.
난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랐다.
부모님은 농사를 지으셨고
그래서 밥상엔 언제나 채소가 가득했다.
그리고 모험을 즐기는 우리 엄마는 다양한 음식들을 개발해서 먹였고, 다행히 요리솜씨가 좋아서 그 새로운 음식들도 맛있게 잘 먹었다.
어릴 때 먹기 싫었던 음식이 뭐였냐고 물으면 없다.
고사리를 배고파서 잔뜩 집어먹고 체한 뒤
못 먹는 건 고사리밖에 없다.
흐물흐물한 식감을 싫어해서
호박, 가지, 무 나물은 잘 손이 가지 않았지만 먹긴 먹었고 볶음밥이나 카레, 국에 들어간 채소들은 잘 먹었다.
콩밥을 해주면 언닌 열심히 콩을 골라서 옆에 빼놓고
나는 그걸 열심히 주워 먹었다.
덕분에(?) 언니보다 내 키가 더 컸고
엄마는 아직까지도 언니가 키가 안 큰 건 콩을 골라내서라고 말한다. ㅋㅋㅋ
엄마는 우릴 아주 정성껏 키우셨는데
인스턴트는 말할 것도 없고 햄, 도넛, 햄버거, 피자 등등도 밖의 음식은 안 좋다며 사주지 않았다.
그래도 조르면 손수 집에서 만들어 먹이셨다.
그런데 이번에 아프면서 난 엄청난 편식쟁이가 되어버렸다. 안 먹는 것과 못 먹는 것은 다른 것이지만 둘 다 생겼다.
일단 못 먹는 건 병 특성상 생식을 할 수 없고,
멸균처리되지 않은 건 대부분 못 먹는다.
매운 거, 날 것(생선, 육회 등),
유산균, 유제품도 못 먹고 크림류도 못 먹는다.
튀김, 바삭한 것은 점막 때문에 먹지 못한다.
나는 부작용에 설사 이슈가 있어 밀가루도 가급적 먹지 말라고 했다.
건강할 때 매일 수액처럼 달고 있던 커피는 말할 것도 없다.
혈액 수치에 따라 방학처럼 허락이 떨어지면
대부분 일회용으로 한번 뜯어서 소진할 수 있는 음식들로 먹을 수 있다.
대체제들이 있긴 하다.
우유대신 두유,
날 것 대신 구운 생선, 삶은 고기,
고르곤졸라치즈나 고소한 냄새 나는 치즈대신 살균처리된 슬라이스 치즈(병원 허락 있을 때만),
피자는 한 조각정도, 막 뜯은 빵은 구워서 조금
생과일 대신 통조림 과일 (호중구 좋을 땐 생과일 가능)
바삭한 식감을 느끼고 싶을 땐 코코넛과자를 잘게 부숴서
입 점막이 까지지 않게 잘 먹었다.
김치는 김치전, 김치볶음으로
다행히 오이나물은 좋아해서 볶은 나물로 먹었다.
처음 병에 대해 몰랐을 땐 내가 먹고살던 음식들을 병원에 먹어도 돼요?라고 엄청 물어봤다.
그리고 항암을 시작하면서 영양사 선생님이 아예 가능한 것, 안 되는 것을 표로 주셨다.(훨씬 편했다)
난 그래도 다행이란 생각이 많이 드는 게
세상엔 내가 편식을 해도 먹을 게 너무 많다는 거였다.
물론 먹을 수 있는데 안 먹는 것과 못 먹는 것은 다르다.
그런데 난 지금 못 먹어서 안 먹는다.
먹을래? 안 먹어 (못 먹어)
세상 거절하기 어렵던 내가
이렇게 거절연습을 하게 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