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교가 없다.
신을 믿지 않았다.
아니, 믿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9월 말,
그리고 10월부터 나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마음이 병들어가는 것도 모른 채
열심히 채찍질하며 달렸던 나는,
급성백혈병이라는 큰 병과 함께 긴 휴식을 얻었다.
뭐가 그리 여유가 없었던 걸까.
자주 올려다보던 하늘도,
계절이 바뀌는 온도와 냄새도,
주변 사람들을 살피던 마음도,
웃음도 미소도 즐거움도 사라져 버렸다.
그저 느낌 없이 피곤에 늘 절어 있었다.
그때 나는 살아있었지만 살아있지 않았다.
매일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우울감에 빠져 살았다.
신이 존재한다면, 이런 상태를 그냥 두지는 않을 것 같았다.
‘백혈병’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래도 M3 전골수성 백혈병으로,
매우 다행히 덜 아픈 치료로 나을 수 있다는 병원의 말을 듣고 감사함과 미안함이 교차했다.
그 순간, 문득 생각했다.
신은 존재할까?
만약 존재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까?
돌이켜보니 경고는 있었다.
작은 신호들이 있었다.
몸의 피로, 마음의 공허함, 사라져 가는 감각들. 하지만 나는 그것들을 무시했다.
눈치가 없었다.
아니, 보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신은,
만약 신이 있다면, 나를 멈춰 세웠다.
“내가 경고를 할 건데.
넌 눈치가 없어서 조금 한 걸론 정신을 못 차릴 것 같으니
정신 번쩍 들게 한번 쌔게 맞아봐라.
대신 죽이진 않을게.
그러니까 나의 신호를 무시하지 말고 너 자신을 돌아봐라. “
어쩌면 이건 벌이 아니라 기회였던 것 같다.
나도 아픈 사람인데 나보다 더 아픈 사람들을 보니,
좋아할 수도 위로를 해주기도 애매했다.
표현을 잘 못하는 나는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의 달인이다.
그런데 병실의 모든 분들이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내가 무언가 그들을 위해 해줄 수 없음이 안타까워 치료가 잘 되길 기도하겠다고 약속했다.
기도. 신을 믿지 않던 내가 기도를 약속했다.
건강할 땐 ’왜 살아야 할까?’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삶의 의미를 묻는 건 신의 영역이 아니라 철학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프고 나니 ‘일단 살아내자’라는, 50점 정도의 답을 찾았다. 완벽하지 않은 답이지만, 지금의 나에겐 충분했다.
신은 존재할까? 나는 여전히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삶에는 우리를 멈춰 세우는 순간들이 있다는 것을.
그 순간을 신이라 부르든,
우연이라 부르든,
필연이라 부르든,
중요한 건 그 멈춤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발견하느냐는 거였다.
나는 그 멈춤 속에서
하늘을 다시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계절의 냄새를 맡는다.
사람들의 얼굴을 본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병이 멈춰 세운 이 시간 속에서,
나는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낀다.
신이 존재하는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이 느낌만은 확실하다.
이것이 신의 언어든 삶의 언어라면
나는 이제 그 언어를 듣기 시작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암오케이, 암파인, 암노땡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