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케모포트 체험기
항암을 하면 중심정맥관을 가슴에 삽입한다.
중심정맥관 삽입의 종류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나는 입원해서 한 달 넘게 카테터를 달고 살아왔고
내일은 케모포트 시술을 받는다.
카테터와의 한 달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던 기억이다.
샤워는 불편하고, 줄은 자꾸 겨드랑이 살을 긁어 매우 불편했다.
여름이 아니었던 게 정말 다행이었다.
한여름이었다면 난 이미 멘털이 증발했을 것이다.
엄마도 없는데 아침회진 때 느닷없이 관 삽입일정을 통지받고 너무 당황했다.
“보호자가 없는데요?”
“본인 사인하셔도 됩니다!”
드라마를 너무 본 탓인지 ‘그러다 내가… 잘못되면…?’ 같은 시나리오가 떠올랐다.
보호자 올 때 하면 안 되냐고 졸라봤지만, 병원 스케줄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도착하실 즈음이면 끝나 있을 거예요”라며
병원은 그대로 진행시켰다.
게다가 전신마취도 아니고 국소마취라 안 아픈 간단한 시술이라고 했다.
말은 정말 쉽게들 한다…
겁에 질려 엄마에게 울먹이며 빨리 오라고 전화하는 사이
나는 침대째로 이동을 당했다.
다행히 나를 데려가던 주임님이 정말 다정했다.
“제가 환자 이송한 지 오래됐는데요, 다른 분들도 안 아프다고 하시더라고요. 너무 걱정 마세요.”
그 말이 위로가 되었지만 눈물은 멈출 줄을 몰랐다.
천장 등을 보며 이동하는 그 길이, 그렇게 길게 느껴진 적이 있을까. 너무 이상한 경험이었다.
수술실에 누웠을 때는 이미 펑펑 울고 있었으니 의사 선생님이 나를 보며 말했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왜 울어요? 진짜 안 아프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하지만 난 병원의 거짓말을 믿지 않지..
하나도 안 아파요 = 조금 아프다
조금 아플 거예요 = 많이 아프다
조금 많이 아플 거예요 = 엄청 많이 아프다.
수술실은 10월 초였는데도 겨울처럼 춥게 느껴졌다.
초록색 천이 얼굴을 덮자 더욱 공포심이 생겼다.
그리고 선생님이 마취합니다. 뭐 합니다. 등등
설명과 함께 생각보다 안 아프고 20분쯤 후 끝났다.
병동으로 이동하려고 나올 때 바로 엄마를 만났다.
괜히 서럽고 무서워서 짜증을 부렸다.
“엄만 왜 내가 힘들 때 내 옆에 없어?”
엄마 가슴에 대못 박는 소릴하고
얼굴에 미안함이 가득한 엄말 보고 미안했지만
옹졸해진 마음에 사과를 하지 못했다.
무서움으로 얻는 자유는 좋았다.
팔 움직임이 좀 더 편안했고 그러면서 밥 먹는 것, 이동하는 것, 화장실 가는 것, 샤워, 머리 감는 것 일상의 대부분이 편해졌다.
자유도 잠시 병 특성상 혈소판 부족으로
거의 3일 동안 지혈이 되지 않아 피를 철철 흘렸다.
1시간마다 두껍게 감은 거즈를 다 적셔 소독하고 교체하고 모래주머니를 올려 누워 지혈하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 정도로 피를 흘려도 괜찮은 걸까?’ 싶은 순간이 여러 번이었다.
빨간 피(적혈구), 노란 피(혈소판)를 달고도 지혈제를 쓰지 않아서 왜냐고 물으니 자연적으로 멎는 게 정상이라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4일째 되는 날 안 되겠는지 의사가 지혈제를 가지고 나타났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기..
의사가 다 맞겠지라고 생각하며 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좀 더 빨리 썼으면 좋았을걸이란 아쉬움이 든다.
퇴원할 때 카테터 제거할 때도 혼자였다.
인턴 선생님이 “숨만 잘 참으세요”라기에
“얼마 나요?”라고 물었더니,
“말씀드릴 때까지요!”
그래서 숨을 참다 도저히 못 참겠어 푸흡 하고 내뱉고 말았다.
“저… 숨 쉬어도 돼요?????”
“어? 제가 말씀 안 드렸나요?”
“선생님, 관 제거하다 제가 제거될 뻔했어요.”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의 여유가 생긴 걸 보면
나도 많이 강해졌단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한 달 만에 다시 케모포트시술을 하러 간다.
외래 때 예약 잡고 간호사 선생님한테 “지난번이랑 같아요?”라고 물어보니 조금 다르다 그랬다.
카테터는 줄이 밖으로 다 나와있는 상태고
케모포트는 단추처럼 생긴 포트를 가슴 안에 시술하고
그 조그마한 구멍에 주삿바늘만 꽂았다 뗐다 하는 거라
외관상 좀 더 깔끔(?)해 보이고 겨드랑이 살을 괴롭혔던 줄이 없어 좀 더 편안할 거라고 했다.
나는 이제 가슴에 관을 심어 관심버튼이 생긴다.
이 버튼은 내가 선택한 것도, 원했던 것도 아니지만 나를 더 강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암을 이겨낼 것이고,
비록 손으로 누를 수는 없는 버튼이지만, 앞으로 살아가며 불안하거나 힘들 때마다 이 버튼을 떠올리려 한다.
언젠가 떼버릴 버튼이지만 앞으로 살아가면서 많은 감정과 사건이 밀려오는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나를 단단히 붙잡아 줄 작은 기준점이 되어줄 거라 믿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