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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선 티파티에 초대합니다

차 한 잔 하시지요

by 시트러스

1. 웰컴티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쪼로록)

우선 웰컴티 한 잔 드립니다.
오늘 내린 차는 웨지우드의 민트티,
잔에 담기면 맑은 연두빛이 은은히 번집니다.

어어, 그거 방금 내린거라 뜨거운데!

조심해서 드세요.


11월 23일, 일요일 저녁이었다.

마봉 드 포레 작가님의 여행기를 보다가 무려 스코틀랜드에서의 애프터눈 티 후기를 읽었다.


https://brunch.co.kr/@mabon-de-foret/198


덕후의 심금을 울리는 저 영롱한 티어 트레이.

흥분한 나는 애프터눈 티 찬양 댓글을 올렸고,

평소 농담처럼 몇몇 작가님들과 '랜선 티파티'를 하자던 말이 이렇게 실현되었다.

파티원은 @마봉 드 포레, @무명독자, @시트러스.

자, 이제 티파티를 시작하지. (쪼로록)


2. 최애를 물으신다면

기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최애를 묻는다면 늘 난감하다.

우선 나는 무용하고 아기자기한 것들을 좋아한다.

그냥 귀여움으로써 가치를 다하는 것들.

따뜻한 차 한 잔을 담는 예쁜 찻잔과 티팟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a사의 두툼한 찻잔을 좋아해서 최애 컬러 민트, 코발트, 차콜 찻잔을 모았다.

어느 날은 갑자기 도피오에 빠져서 h사, s사의 에스프레소 잔을 들였다.

에스프레소를 내려 휘핑을 올려 먹으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아, 커피숍에서 돈 내고 사 먹는 이유가 있구나.'


그리고 선물받은 l사 커피잔 세트가 있다. 손잡이가 나비인 이 예쁜 커피잔은,

좋아하는 선생님께 결혼 선물로 받았다.

아끼느라 몇 번 쓰지 않아 나비는,

그 시절의 추억과 함께 아직도 날아갈 듯 잘 앉아 있다.


3. 내가 마셔 본 가장 맛있는 차는

인생에서 가장 인상 깊던 차 맛을 기억한다.

우연한 기회에 TWG사의 캐러멜 루이보스 티를 선물받은 적이 있었다.

번쩍이는 금박 상자속 노란 차 봉투를 여니, 하얀 모슬린 천에 가득 든 향긋한 찻잎.

따뜻한 물로 티팟과 잔을 먼저 데운뒤, 티백을 걸고 물을 부었다.

첫 인상은 '와, 맛있다.'

깨끗하고 부드러운 루이보스 맛에 달콤한 캐러멜 향.

그때부터 TWG의 차를 하나씩 마셔보기 시작했다.


제일 좋아하는 홍차는 단연코 1837 블랙티이다.

가향 홍차는 뒷맛이 남아서 선호하지 않는데, 이 차는 깔끔하고 상쾌하다.

무엇보다, 기분좋은 딸기향에 나도 모르게 깊이 복식 호흡을 하게 된다.


4. 차가 왜 좋으냐면

그럼에도 결국 내가 차를 좋아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차를 마시는 시간은 대개 조용하다.

물을 끓이고, 티팟과 잔을 데운 뒤, 티백 담긴 잔에 물을 붓는 행위.

이 일련의 과정을 신이 나서 시끌벅적하게 하기란,

또 뜨거운 차를 단번에 호로록 마시기란 쉽지 않다.


수색을 감상한 뒤 차를 마시는 시간은 보통 적막과 함께다.

조용함은 나를 데려가 어디에도 휘둘리지 않는 자리로 앉힌다.

그 시간은 오롯이 나 자신과 함께한다.


티팟과 찻잔 하나가 블럭처럼 하나인 티포원 세트가 있다.

티팟이 찻잔 위에 포개져 있는 작은 세트.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이 이기적이고 귀여운 세트를 볼 때마다 웃음이 난다.

티팟 하나를 비우는 동안은 오직 당신만을 위한 시간이다, 선언하는 듯한 뚱뚱한 도자기.

바라 보기만 해도 저 민트빛 도자기는 가만히 위로를 건넨다.


나는 시간에 인색한 사람이다.

혼자인 시간에 책을 읽거나 때로는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요즘은 주로 글을 쓴다.

그리고 그때, 차를 마신다.

따뜻하고 향기로운 홍차를 한 모금 마실 때 비로소 내 마음에도 여유가 스며든다.

오롯이 나를 위해 마련하는 이 시간이 내게는 큰 위안이 된다.


5. 랜선 티파티원 구함

처음 이 파티 결의를 할 때 무척 신났다.

브런치에 글을 쓰며 받은 멋진 선물 중 하나는, 소중한 글벗 작가님들을 알게 된 것이다.


괜히 좋은 사람들이 있다.

별 말 하지 않아도 눈만 마주쳐도 불쑥, 웃음부터 나오는 그런 사람들.

작가님들께 반하게 된 건 먼저 글을 통해서이지만,

그 애정을 지속하게 한 힘은 글 속에서 느껴지는 선한 시선과 따뜻한 마음이다.

댓글 한 줄에 서로의 기쁨이 탁하고 퍼지던 그때처럼.


좋아하는 분들과 좋아하는 차에 대해 썼더니 내 마음도 아주 다정해졌다.

차의 온도만큼이나 사람의 온도도 천천히 배어든다는 걸 새삼 느낀다.

추워진 날씨와 팍팍한 생활 속에 웃음과 글을 놓치지 않게 하는 원동력을,

나는 바로 이런 분들에게서 찾는다.


마봉 드 포레님, 무명 독자 작가님. 파티가 너무 즐거웠습니다.
사실 처음 신난 마음에 소제목을 '광란의 티파티'라고 써놨다가 슬그머니 지웠습니다.
쓰다보니 찬찬히 제 마음을 들여다 보게 되었고, 마지막 찻잔을 비울 때쯤엔
작가님들에 대한 감사함이 잔 속에 남아 있군요.

따뜻한 마음을 담아 다시 한 잔, 티팟에 부어봅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께도, 제일 좋아하는 잔에 부어 드립니다.
천천히 온기가 스며들기를.

"차 한 잔 하시지요." (쪼로록)





무명독자 작가님 티파티 현장입니다.


https://brunch.co.kr/@eafbf83b47d94c7/137




마봉 드 포레 작가님 티파티 현장, 나와주세요.

https://brunch.co.kr/@mabon-de-foret/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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