렛츠고? 하지 말라고
1. 시작한다, 눈치의 기술
종 치기 1분 전.
기말 지필 평가까지 다 끝난 중3교실에서 분위기 잡기란 쉽지 않다.
졸업을 앞둔 걱정과 고등학교 진학이라는 기대가 뒤엉켜,
언제나 무른 반죽처럼 흐트러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금 5반은 쥐 죽은 듯 조용하다.
모의고사 풀이를 마친 뒤, 떠들면 두 문제 더 푼다고 했기 때문이다.
조용히 눈만 굴려 시계를 확인한 뒤,
나가려고 노트북과 텀블러를 챙기려는 찰나
띠로로로링
2. 작전명: 노트북 구출
어디선가 현진이가 튀어나왔다.
곧바로 웅성거림이 커졌다.
'아니, 준석이까지? 쟤는 젤 뒷자리였는데?'
"쌤! 들어드릴게요."
"아니, 준석아, 괜찮아. 내놔."
"야야! 선생님 마우스 들어드려!"
아... 오늘도 실패다.
아이들에게 다 뺏긴 채 터덜터덜 교실에서 나왔다.
3. 복도, 에스코트단 출동
"야야야! 다 비켜! 00 샘 지나가시는데 어딜 무엄하게!"
"현진아, 앞에 아무도 없는데 무슨 소리야."
나는 수치심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말리는 척, 거들고 있던 여자 애들이 킥킥거렸다.
"물렀거라! 야!! 비키라고!"
아니, 아무도 없다고.
도대체 이것들이 왜 이러는 걸까...
어디서부터 잘못됐지...
나는 눈을 질끈 감았고,
둘러싼 아이들은 신이 났다.
이를 꽉 깨물고 말했다.
"흐지므라..."
제일 앞장서서 내 텀블러를 챙긴
준석이는 노래까지 부르고 있었다.
"렛츠고~! 렛츠고!"
4. 낯의 온도는 몇 도인지 구하라
교무실 문을 열 때 다급히 외쳤다.
"얘들아! 오늘은 안돼! 1, 2 학년 시험 출제 기간이야!"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네! 00 샘! 여기 있습니다! 살펴 들어가세요."
"다음 시간에 또 모시러 올게요."
'탁'
교무실 문이 닫히고 나니 정적 속에 눈치가 보였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자리에 앉았다.
아이들이 왜 그러는 걸까?
이제는 다들 키도 크고 힘도 세져서 말리지도 못한다.
자기들의 장난을 받아주는 선생님이 있다는 것.
도와준다는 명목하에 선생님을 놀려 볼 수 있는 것.
그래, 그런 이유겠지.
5. 너희들의 진심, 그 장난스러운 다정
짐을 들어주는 척하면서 나를 골탕 먹이는 이 묘한 방식이,
이 아이들만의 애정 표현이다.
알면서도 나는 늘 당한다.
학년 중 유독 정이 많고 착하다는 올해 3학년 아이들.
이 녀석들도 몇 주 뒤면 졸업을 앞두고 있다.
심한 장난 이래 봤자
과잉 친절로 선생님이 민망해하는 걸 보며
자기들끼리 낄낄 거리는 게 다인 귀여운 아이들이다.
민망함이 가시고 나면
달아오른 얼굴만큼의 온기가 마음으로 내려앉는다.
6. 선생님 힘없는 거 아니다, 져 주는 거야
하여, 비록 진심을 다해도 저 노트북을 뺏을 힘이 없지만,
나는 내일도 못 이기는 척, 져 주는 척
물건들을 털릴 예정이다.
결국 남는 건 장난이 아니라, 함께 보낸 시간의 잔열이다.
그래도 준석아, 인간적으로
교무실 앞에서 노래는 부르지 말자.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