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이 다 지나가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26년이 고개를 들이밀려한다. 왜 굳이 이런 어감도 좋지 않은 표현을 쓸 수밖에 없는 걸까? 마치 나약한 어린아이가 되어 내게 떨어진 숙제를 채 완수하지 못했는데, 새로운 과업이 그 위에 쌓인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모 원로가수의 노랫말처럼 가는 세월을 그 누구가 막을 수 있을까? 가면 가는 대로 또 오면 오는 대로 멀뚱히 보고만 있어야 하는 게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일 테다.
마치 당연한 일이라는 듯 두 개의 서로 다른 감정이 머릿속에서 교차한다. 내내 후회했다가 어느새 기대의 마음이 싹튼다. 그러다 다시 후회로 돌아설 그 언젠가로 생각이 가 닿는다. 그래도 일말의 기대를 포기할 순 없다. 지금으로선 어떤 감정이 더 우위를 점하는지 모르겠다. 다만 지나간 한 해를 두고 너무 지나친 미련 따위는 남기지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은 확고하다. 떠나는 사람을 붙잡는 것도 어려운데, 하물며 가는 해를 무슨 수로 붙들 수 있겠는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래도 남은 한두 달은 잘 살아보자고 다짐했었다. 물론 그 귀한 시간도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틀밖에 안 남았더라는 현실이 크게 와닿는다. 멀리 출장 간 아빠가 보고 싶다며 우는 아이에게 두 밤만 자면 아빠를 볼 수 있다고 달래듯, 세 밤만 자고 나면 새해가 밝아온다는 사실이 섬뜩하기 그지없을 뿐이다.
이쯤에서 늘 떠오르는 하나의 생각을 끄집어내어야 할 것 같다. 과연 나는 52주라는 그 긴 시간 동안 무엇을 하면서 지냈던 것일까? 대답할 것이 잔뜩 쌓여 있건 궁색하건 간에 어느새 새로운 52주의 시간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려 한다. 드디어 올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이미 다 지나가 버린 것이긴 해도 새로운 해를 받아들일 만반의 준비를 갖추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 않을까?
며칠 전에 내 나름의 2025년 결산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그 글에서도 후회와 기대 외에는 언급한 것이 없었다. 그러고 나서 고작 며칠 지나지 않았으니 그때와 비교했을 때 달라진 점은 없다. 그날 그 글에서 내게 부여한 53점의 내 한해살이 점수 역시 변함이 없다. 부족한 47점을 남은 이틀에 만회할 수 없다면 53%의 만족도는 이제 기억 속에 묻고 가야 한다.
모든 건 격식이라는 게 있고 그 격식에 맞는 내용이 필요한 법이다. 그런 점에서 명백히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리라. 이전에 쓰던 게 아닌 아직 한 번도 쓰지 않은 새 부대를 준비해 놓아야 한다. 솔직히 말해서 준비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어영부영하다 또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늘 그랬듯 멍하니 2026년을 맞이하게 되는 건 아닌가 싶은 걱정만 앞선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이 남은 이틀이 열심히 산 것에 대한 보상의 의미로 다가오지 않겠나 싶은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하는 질문을 던져보니 차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그다지 치열하게 살지 못한 것에 대한 변명일 수도 있고, 해가 가는 게 마냥 아쉬워 쳐 보는 몸부림인지도 모른다. 사실 이 모든 걸 뭉뚱그려 표현한다면 으레 연말이면 되풀이되는 통과의례에 지나지 않는다.
다가오는 병오년은 지나간 을사년과 달리 나에게 더 의미 있는 한 해가 될 수 있을까? 느릿느릿한 뱀이 아니라 땅을 박차고 달려 나가는 한 마리의 굳센 말이 되어 해가 시작되자마자 앞만 보고 달릴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이번에도 어김없는 기대만 따른다. 부디 희망고문이 아니기만을 바랄 뿐이다.
아마도 올해 또한 방 안에서 이틀 뒤에 있을 제야의 종소리를 듣게 되지 않겠나 싶다. 특별한 뭔가가 없는데도 해마다 빠뜨리지 않고 들었다. 괜스레 덩달아 설레어하며, 심지어 숫자까지 세어가며 들었다. 그 소리는 밝은 희망의 메시지를 담아 울리는 소리다. 우리가 잠든 사이에 성큼 다가설 새해를 알리는 경쾌한 소리다. 왜 그런데 내게는 그 소리가 심장이 내려앉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하는 걸까? 모두가 밝아오는 새해에 들떠 있는데, 혹시 나만 그까짓 한 줌도 안 되는 미련 때문에 그러고 있는 건 아닐까?
이제 드디어 끝이 보인다. 두 눈을 부릅뜬 채 가는 2025년의 끝자락을 지켜봐야겠다. 2025년이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