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행은 예고 없이 도착한다
"집에 두쫀쿠 있어!"
늦은 저녁 시간, 퇴근한 남편이 들어오자마자 외쳤다.
그 한마디로 우리 집은 잠시 유행의 한가운데에 서게 됐다.
유행하나 마나 남일처럼 여겼는데 이런 최신템이 우리 집에 있게 된 이유는 몇 시간 전, 낮으로 거슬러간다.
방학을 맞은 첫째 원희에게 뭘 먹고 싶냐고 묻자 '친구들은 다 두쫀쿠 먹어봤다'란다.
"아, 그거?" 알지 알지. 배달 어플을 켰다.
거의 다 품절. 그나마 파는 곳은 개당 7천 원에 배달비 5천 원. 게다가 다른 메뉴를 함께 시켜야 딱 하나씩 주문 가능하다고 쓰여 있었다.
2. 또 나만 빼고 다 먹어 봤지
뭘 먹을 거면 치킨이나 사 먹고 말지 (안 먹는 건 선택지에 없다)
이런 정체불명의 디저트를 이 돈 내고? 싶었다.
하지만 먹는 것에 관심이 없는 원희가 먼저 메뉴를 말하는 일은 드물었다. 내심 궁금하기도 했고.
드디어 쿠키와 강매당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요거트 아이스크림이 도착했다.
개봉하자마자 우리는 깜짝 놀랐다. 셋째 세희 주먹보다 작은 검은색 덩어리가 나왔다.
"엄마, 맛있는지 봐요." 세상에, 도둑이 따로 없네... 구시렁구시렁 작은 쿠키를 반으로, 다시 반으로 잘랐다.
3. 한 입이면 충분한 맛
먹어보고 우리는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이게 무슨 맛이야?"
"음... 한번 먹어 봤으니 됐어요." 인증샷을 찍은 원희는 한 입만 먹고 포크를 놓았다.
모래알을 씹는 듯한 이상한 식감. 피스타치오 향은 어울리지 않았고, 겉의 코코아 파우더는 썼다.
어린이집 하원을 한 세희의 평도 비슷했다. "맛이 내 스타일이 아니에요."
우리 집 먹짱 둘째 두희만 유일하게 "그래도 한 입 더 먹어 볼래요."
"아빠도 드셔 보라고 하자." 하고 남은 한 조각을 덮어 두었다.
4. 아빠 시식단 입장
그런 과정을 거친 두쫀쿠 한 조각을 남편에게 내밀었다.
"빨리 먹어봐!" 몇 번 권하고 나서야 씻고 나온 남편이 덮어둔 접시 뚜껑을 열었다.
이제 먹나 했더니, 곧바로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새거 하나 남겨 놓은지 알았지!"
"무슨 소리야? 이 귀한 걸! 그래도 아빠 준다고 남겨 놓은 거야!"
"집에서 내 위치가 이 정도라는 말이지?"
"너니까 주는 거야." 동갑내기 남편에게 생색을 냈다.
그리고 곧, 그는 나와 똑같은 말을 내뱉었다.
"아니, 이게 무슨 맛이야."
5. 두쫀쿠라는 이름의 유행
두바이 쫀득 쿠키. 일명 두쫀쿠는 두바이 초콜릿 재료를 쫀득 쿠키에 얹은 한국식 디저트다.
원재료 값 상승과 유행이 겹치며 가격은 치솟았고, 급기야 소면으로 카다이프를 대신하는 해프닝까지 생겼다.
"머시 맛도 없네." 이해 못 할 유행에 그칠 뻔했던 우리 가족의 시식기는 며칠 뒤, 남편의 생일을 맞아 수정할 기회가 생겼다.
6. 짭쫀쿠와 진짜의 차이
"얘들아, 이거 먹자." 퇴근한 남편이 케이크와 함께 봉지를 하나 내밀었다.
생일을 맞아 회사 동료분들이 선물로 챙겨 주었다고 했다.
두쫀쿠가 무려 네 개. 다 같이 모여 앉아 작게 잘라서 한 입씩 먹었다.
"엄마, 저번에 먹은 건 짭쫀쿠였나봐요."
확실히 선명한 초록색 필링부터 달랐다. 바삭바삭 경쾌한 식감에 고소하고 향긋한 견과류가 쫀득, 달콤한 맛과 조화를 이루었다. 왜 유행인지 납득이 갈만한 맛이었다.
7. 허니버터칩 한 봉지
예전에 유행했던 허니버터칩이 떠올랐다.
그저 감자 과자였지만, 한 봉지를 구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다. 어쩌다 손에 넣은 날이면, 괜히 식탁에 둘러앉아 한 조각씩 나눠 먹었다. 맛을 본다기보다, 유행의 물결에 발을 담가 보는 기분이었다.
먹거리에 유난히 진심인 k-입맛을 사로잡은 것들은
이렇게 어느새 선물로 주고받는 자리에까지 올라선다.
8. 줄은 안 서도, 사람은 나눈다
나는 어얼리어답터와는 거리가 멀다. 줄을 서서 무언가를 사 먹는 일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 쪽에 가깝다.
그럼에도 가족과 함께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유행템 하나를 두고 웃고, 나누고, 평을 늘어놓는 시간은 생각보다 꽤 즐겁다.
아마도 모든 유행의 바닥에는 '나도 먹어 봤다'는 안도와 이 마음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는 욕구가 겹겹이 깔려 있는 게 아닐까. 결국 유행이란, 맛보다 먼저 사람을 향해 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9. 다섯 식구와 네 개의 두쫀쿠
"다섯 식구인데 왜 네 개야?" 그냥 구할 수 있는 최대치로 사서 주신 거겠지.
알면서 괜히 남편에게 '여보도 먹을 거냐'라고 물었다.
투덜투덜 가정 내에서 자신의 서열을 가늠해 보는 남편에게 제일 큰 조각을 내밀었다.
"우리 집에도 두쫀쿠있다!"
다들 단 걸 안 좋아해서, 우리 집에는 세 개나 남아있다.
유행은 지나가도, 나눠 먹은 기억은 꽤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