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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짱 Jun 30. 2023

오래오래 행복하거나, 함께 물거품이 되거나

신형철 <나의 없음을 당신에게 줄게요> 스터디




이별은 필연이다.

모든 인연의 끝은 이별이 있다. 이별의 사유야 천차만별로 다양하지만, 언젠가 찾아온다는 점에서 보편적이다. 우리는 때때로 상대와의 사랑에 질려서, 혹은 다른 인연이 생겨서, 누군가의 반대로, 또는 아주 자연스러운 죽음에의 이유로 상대와 이별한다. 이런 측면에서 ‘사랑’이라는 키워드에 가장 보편적으로 포함되는 건 당연히 ‘이별’이 된다. 사랑과 이별, 뗄레야 뗄 수 없는 저주. 얼마나 끔찍한가. 사랑이 시작됨과 동시에 이별에 대해 떠올려야 한다는 건.


나는 이별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옛 동화를 생각한다. ‘인어공주’라는 아주 오래되고 사랑받는 이야기. 자신과 다른 세상에 사는 왕자를 사랑한 인어공주가 마녀에게 빌어 다리를 얻고, 그 대신 목소리를 잃은 채 지상으로 올라간다. 다만 마녀는 인어공주에게 한 가지 조건을 붙인다. 지정된 시간 내에 왕자와 키스하지 못하면 물거품이 되어 사라질 거라는, 끔찍한 저주다. 인어공주의 사랑에는 이렇게 필연적 이별이 덧붙는다. 인어공주는 일시적으로 주어진 환상 같은 만남 속에서 행복을 꿈꾼다. 왕자가 결국 자신을 사랑하게 된 뒤에 입맞춤을 나누는 꿈. 그리하여, 모든 동화가 그런 식으로 흘러갔듯 ‘오래오래 행복했답니다’로 끝나는 꿈.


하지만 인어공주에게는 음성이 없다.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라고 전할 수 있는 언어를 상실한 탓에 왕자는 기어코 응답을 연상해내지 못한다. 결국 인어공주는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고, 필연의 이별을 맞이한다.


비극적인 사랑, 혹은 이별로 끝나는 사랑은 언제나 인어공주의 서사를 일부 지니고 있다고 나는 늘 생각해왔다. 가령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속 조제나 <러스트 앤 본>의 스테파니가 그러하다. 이 두 가지 영화 속 여주인공과 인어공주의 공통점을 이미 찾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들은 전부 다리가 없는 장애를 가졌다. 인어공주야 다리가 없는 게 본인의 세계 내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나, 그 없음이 기어코 왕자와 만날 수 없는 장애물로 작용했다. 더불어 이 세 명의 주인공은 모두 물과 관련된 역사를 지녔다. 자신을 물고기에 비유하여 말하는 조제나 범고래에 의해 다리를 잃게 된 스테파니는 기어코 다리 없이 물 위로 기어올라온 이들이다. 물 위로 올라와 맞닥뜨린 세계는 자신과 너무 다르다. 그들은 세계와 어울릴 수 없으며 세계 역시 그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자신과 맞지 않는 옷, 통하지 않는 언어, 맞지 않는 행동 틈에서 그들의 사랑에는 필연적으로 이별이 따른다. 조제가 츠네오를 ‘다시는 오지 말라’며 쫓아냈을 때, 그녀는 이미 츠네오와 이별할 자신을 예감했다. 그녀는 필연적 이별을 피하기 위해 사랑을 시작하지 않는 선택을 한다. 그러나 그 역시도 하나의 이별이다. 두 사람이 가질 수 있었던 사랑의 순간이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것. 스테파니 역시 다를 바는 없다. 알리와의 관계가 이어질수록 그녀는 사랑을 꿈꾸지만, 사랑이란 그녀에게 너무도 먼 것처럼 보인다. 이룰 수 없는, 그저 남의 것이 된 이야기. ‘이전에는 섹스를 좋아했으나 이제는 할 수 없다’는 말은 그녀가 이미 ‘사랑’을 자신의 영역에 들이지 않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이들에게 있어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환상은 늘 이루어질 수 없는 것으로부터 온다. 환상적인 날, 환상적인 이야기, 우리는 환상성에 대해 이야기 할 때마다 그것의 불가능을 먼저 내세운다. 사랑이 환상이기 때문에 그들은 사랑이 발생함과 동시에 이별을 생각한다. 일종의 결심이다. 인어공주와 조제, 스테파니는 상대와 ‘헤어질 결심’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손쉽게 동명의 영화를 떠올린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오는 배 하나를 타고, 그 일렁이는 지하에 갇혀 몇 시간을 있다가 불법으로 입국하게 된 송서래. 다리를 갖게 되었지만, 인간의 말을 사용할 수 없는 인어공주. <헤어질 결심>의 송서래가 인어공주의 이야기를 그대로 본뜨고 있다면, 조제와 스테파니는 그와 유사하지만 다르다. 그들에겐 다리가 없는 대신 언어가 있다. 하지만 말할 줄 아는 입이 있다고 해서 모든 게 다 같지는 않다. 언어란 결국 단어의 나열이 아니라 세계의 총체이므로.


그래서 같은 ‘사랑해’를 말해도 종종 그 의미가 달리 번역되곤 한다. ‘그 형사의 심장을 내게 가져다 달라’고 장해준이 송서래를 오역했듯이, 스테파니의 사랑은 알리에게 있어 들리지 않는 욕망에 가깝고, 조제의 사랑은 츠네오에게 있어 제멋대로인 어린 아이의 투정에 지나지 않는다. 오역이 발생하는 동안 그들은 이별을 준비한다. 떠나보낼 사랑의 기억에 각인처럼 남을 수 있는 이별을.


송서래가 장해준에게서 잊혀지지 않기 위해 새로운 범죄를 꾸미는 동안, 한편에서는 조제와 츠네오가 모텔에 들른다. 물고기들이 빛으로 떠다니는 여관에서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야한 섹스를 한다. 그렇게 이별을 맞이한 장해준과 츠네오에게는 살면서 결코 지우지 못할 결여가 생긴다. 사랑이 끝남과 동시에 그들의 사랑이 다시 시작한다는, 사랑의 타이밍에 관한 이야기는 이토록 강렬한 비극으로 새겨진다. ‘나의 없음을 당신에게 줄게요’에서 말했듯이 자신 안의 결여를 찾지 못한 인간이 사랑을 할 수 없다면, 그들은 이별과 함께 비로소 사랑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알리와 스테파니의 사랑은 어떠한가?

그들의 사랑은 결코 맺어지지 않았으므로 이별이 도래할 수 없다. 사랑 자체의 결여는 결국 홀로 사랑을 품은 스테파니만의 약점이 된다. 이제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건 오로지 스테파니의 몫으로 남았다. 하지만 알리가 물 속에 빠진 아들을 구하기 위해 얼음을 깬 순간, 그리고 그 뚜껑을 까뒤집어 물 안을 발견한 순간, 그리고 그의 손이 망가진 순간. 그에게는 물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그건 일종의 깨달음이자 배움이며 몰랐던 세계와의 또다른 조우이다. 사랑의 완성은 한 세계가 다른 세계를 만났을 때 발생하는 것이 아니오, 다른 세계가 다른 세계를 깨달았을 때에야 비로소 발생하는 것이므로.


물 속에서 나온 스테파니의 언어, 결여를 갖게 된 스테파니의 언어를 알게 된 알리는 비로소 제대로 된 언어로 대답할 수 있게 된다. ‘나도 너를 사랑해.’ 결국 왕자가 물 아래로 추락하고 나서야 인어공주의 사랑은 이루어진다. 비록 그들의 사랑이 물 속에 갇혀 추악하고 숨 막히며 서글플지라도, 그들에게는 같은 언어가 있다.


사랑이란 늘 그렇듯 발 아래를 딛게 해주는 땅이 사라지고, 그 아래로 ‘빠질’ 때에야 발생하기 때문에. 나의 세계 일부가 사라졌을 때에야 비로소 발견할 수 있는 감정이 있다. 보편적이지 않은 세상에서는 이별이라는 보편적인 흐름이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비로소 인어공주가 바랐던 ‘오래오래 행복했습니다’가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그들은 오래도록 행복하거나, 행복하게 물거품으로 사라진다. 사랑이란 이름 아래, 모든 보편성을 제거한, 두 사람만이 알고 있는 세계의 언어를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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