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멋
한 사람을 마음에 두고서 쓴 글이기는 하지만 영화나 책에 관한 내용들이 보편적인 감성 에세이가 될 수 있을 듯하여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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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어도 나이 들지 않으면 좋겠지만 피할 수가 없다면 형님들 같은 외모면 좋겠습니다.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 ‘더 롹(The Rock)’에서의 션 코너리. 이 형님들은 젊었을 때보다 세월이 흐를수록 더 멋져지시더군요. 할아버지에게도 “잘생겼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건 이제껏 살면서 이 두 분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패션.
카사블랑카(Casablanca)의 험프리 보가트. 사무라이(Le Samouraï) 알랭 들롱. 이 두 형님이 영화 속에서 자아내던 트렌치코트 스타일과 아우라를 능가하는 남자는 아직 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보다 좀 더 어릴 때 따라 해 봤으나 도저히 따라갈 수 없더군요.
음.. 만일 스테파네트 아가씨가 곁에서 코디해 준다면 가능할 것도 같다는 기대가 생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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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가장 많이 투자한 것 중 하나가 독서인 사람인지라, 영화 노팅힐의 주인공 윌리엄 대커가 책벌레 너드(nerd)로 그려진 게 좀 아쉽더군요. 주인공이 책도 좋아하지만 좀 더 세련되고 감각적인 인물로 그려졌음 좋았을 텐데요.
그래도 마지막 기자회견 장면에서 가상의 잡지 ‘말과 사냥개(Horses and Hound)’ 기자로 어설프게 변장해서 결국 안나와 재회하는 장면은 다시 봐도 재치 있고 기분 좋아지는 엔딩이군요. 어쩌면 윌리엄 대커 캐릭터이기에 더 잘 어울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만남이 영화나 소설의 한 장면과 같다면 내 캐릭터와 가장 어울리는 모습은 무엇일까요?
버버리 트렌치코트를 입고, <카사블랑카의 사무라이(The Samurai in Casablanca)> 잡지 기자라고 소개하며 그대의 허락을 구한다면?
아님 ‘오만과 편견’을 들고 사랑의 약속 장소로 나갈 수도 있죠. 그곳이 뉴욕이든 도쿄든, 파리든 어디라도 그대가 원하는 곳으로요.
대낮에 광화문 광장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라고 해도 기꺼이 하겠지요.
5천 년 한반도 역사상 [누가, 무슨 기준으로 정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3대 미인의 하나라는 수로부인처럼 절벽 위 한 송이 꽃을 꺾어 달라고 요청한다면 그 노인처럼 목숨을 걸고 ‘헌화가’를 노래할 수도 있고요.
내 바램은 오직 하나.
1Q84의 세계에서 온갖 방해를 이겨내고 결국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됨을 아오마메와 덴고가 증명해 내듯이, 그대와 마주하며 하나님이 예비하신 만남이라는 걸 확인하는 것..
그대가 가장 좋은 방법을 알고 있을 것 같아요. 그걸 내게 알려 준다면 지난 여름 그때가 보내준
그 산들바람을 타고 그대에게로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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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저: 도미닉, 아까 했던 질문 다시 한번 해줄래요?
기자: 안나, 영국엔 얼마나 머무를 예정인가요?
안나: … 영원히요(Indefinite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