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즈의 모험에 언급되었던 런던 거리 구석구석을 아침부터 하루 종일 돌아다녔던 2004년 여름 어느 날. 저녁이 되어서는 웨스트엔드로 향했죠. Her Majesty’s Theatre에서 공연하는 ‘오페라의 유령’을 관람하기 위해.
기대하는 마음을 잔뜩 품고 입장하여 보니, 내 좌석 바로 뒤에는 피터 드러커를 닮은 장대한 체구의 할아버지가 할머니와 나란히 앉아 계셨죠. 살짝 미소 지으며 목례를 건넸으나 답례도 없이, 방금 막 역류성 식도염이 올라와 짜증 난다는 듯한 표정과 함께, 양쪽 볼 사이로 사탕을 굴리며 한쪽 다리를 떨면서 앉아 있는 모양새가 ‘얼룩 끈의 모험’에서 홈즈를 찾아와 무례하게 굴던 빌런이 떠올려지더군요.
‘흠.. 이거 꽤나 힘든 관람이 될 수도 있겠는걸..’
아니나 다를까 공연 시작되자마자 옆에 있던 아내분에게 “나 다 알아~” 자랑하듯 다음 장면이 뭔지를 속삭여대는 통에 신경이 거슬려 집중할 수 없었죠. 조용히 해달라고 얘기할 타이밍만 노리고 있는데, 극장 매니저분이 오셔서 할아버지께 주의를 주고 상황이 수습되어 ‘All i ask of you’를 온전히 감상할 수 있었죠.
인생이 신나는 모험으로 가득할 줄 기대했던 2030 시절을 지나, 아주 보통의 일상으로 채워나감이 행복한 삶이라는 걸 깨달은 나이가 된 지금, 내 인생 최고의 모험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군요.
흔히 정치는 생물이라고 하는데 글에도 마찬가지로 생명력이 있는 것인지, 이 짧은 글도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살짝 진지한 방향으로 흘러가네요. 글을 써본 사람이라면 무슨 말인지 아실 겁니다.
“하나님, 왜 이리 기도 응답을 안 해 주시죠?”라는 푸념에, 곁에서 듣고 있던 친구가 “늘 기도대로만 이루어진다면 지금쯤 우린 유치원생 수준으로 살고 있을 거야.”라고 들려줬던 게 기억나네요.
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지만, 여름-가을-겨울-봄으로만 이루어진 짧은 소설이 아니라, 긴 호흡으로 오래도록 이어지는 한 편의 사랑 이야기면 좋겠네요.
이 소망을 가지고 스테파네트 아가씨에게 구하는 단 한 가지! (All i ask of you)
민폐 빌런을 피할 수 있도록, 콘서트 VIP 티켓 구할 수 있을… (이러다 다음에 한 대 맞을 거 같아 오늘은 여기까지 하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