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길 보다 내리막길이 편하다.

란드룩 가는 길

by 산달림


촘롱, 지누단다, 뉴 브릿지 그리고 란드룩(Landruk)으로 산을 내려가는 날이다. 산에서는 올라갈 때는 거의 사고가 일어나지 않지만 내려갈 때 대부분의 사고가 일어 난다. 스틱의 길이를 좀 더 길게 늘여 길을 나섰다. 본시 길은 없었다. 자주 다니다 보니 길이 생긴 것이다. 히말라야의 길은 그런 길이다. 마을과 마을 간 혹은 집에서 밭으로 다니다 보니 길이 되었다.


어릴 적 팔공산 아래 작은 마을에서 큰 마을까지는 논 옆으로 길이 있었다. 어른들은 5일장에 가기 위해 길을 걸었고 초등학교를 가기 위해 그 길을 걸었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신작로였다. 면소재지 옆에 있는 중학교를 다닐 때는 하루에 3번 다니는 대구행 버스길을 걸어 다녔다. 그 후 논길에서 신작로 그리고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걸었다. 좀 더 넓은 세상으로 가는 길을 넓은 길이었다.


히말라야로 오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왔다. 카트만두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포카라에 도착하였고 버스가 다니는 길로 히말라야 입구에서 지프차만 다니는 길을 따라 산길을 올랐다. 당나귀 다니던 길이 포터들의 등짐으로 다니는 길로 좁아졌다. 이번 트레킹은 내가 살아온 길을 거꾸로 걸었다. 좀 더 넓은 길이 아닌 점점 좁아지는 길을 걸었다. 마지막 길은 10대 때 걷던 논길 같이 좁은 길을 걸었다.


히말라야의 길


그건 잊혀간 추억의 시간여행이었고 그때의 나를 만나는 길이었다. 공자는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은 사색과 모방 그리고 경험의 길이라 하였다. 사색의 길은 높은 이상의 길이며 모방의 길이 가장 쉬운 길이고 경험의 길이 가장 어려운 길이라고 하였다. 그간 내가 걸었던 대부분의 길은 남들이 걸어간 모방의 길을 걸어왔다. 남보다 뒤처질세라 앞만 보고 걸었다. 잠시 쉬면서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 확인할 틈도 없이 그리 숨 가쁘게 걸어왔다. 이제사 좀 천천히 때로는 쉬어가면서 살아도 될걸 왜 그리 빨리 걸었나 싶다.


계곡을 건너는 출렁다리


개울을 건너는 출렁다리를 건너려면 계단길로 계곡 쪽으로 한참을 내려와야 했다. 출렁다리를 건너면 내려온 만큼 다시 올라야 한다. 촘롱으로 오르는 길에는 아낙네들이 씨앗을 뿌리고 있다. 손바닥 만한 밭에 네 명이 일을 한다. 하기사 여럿이면 재미도 있고 힘은 많이 들지 않겠다. 효율성과 능률성만 따지며 살아온 생각이 몸에 베여 '왜 저렇게 하지.' 한다. 그 옆 밭에는 쟁기로 밭으로 갈고 있다. 물소 두마가 끄는 쟁기로 남편이 밭을 갈면 부인이 뒤를 따라가며 씨앗을 뿌린다. 1960년대 우리네 시골 모습과 많이 닮았다. 4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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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낙네들의 씨앗 뿌리기(좌) 부부의 쟁기질(우)
참롱의 기념품 가게

언덕으로 이루어진 참롱은 이곳에서는 번화가 축에 든다. 베이커리 가게가 있고 기념품 가게도 있다. 음식점과 롯지도 조금은 고급스럽다. 마치 색조 화장한 시골 새악시 같은 느낌이다. 참롱 아랫마을인 지누단다에는 온천이 있다. 안나푸르나 남벽에서 시작하는 모디콜라(콜라는 강) 옆에 있는 온천이다. 온천이라야 별 시설은 없고 큼직한 시멘트로 만든 사각형으로 된 탕이 있고 옆에는 샤워꼭지 같은 물줄기를 몇 개 뽑아 놓았다. 오랜만에 뜨뜻한 온천물에 몸을 데워주고 씻기만 해도 날아갈듯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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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의 주방(좌) 시렁에 올려 놀고 연기로 후제하는 물소고기(우)


뉴 브릿지를 건너기 전 식당에 들려 점심식사를 하고 가기로 했다. 가정집에서 간판을 내 걸고 하는 식당이다. 아주머니가 아기를 업고 파스타를 만든다. 메뉴는 몇 가지 되지 않지만 주문받을 때부터 요리가 시작되니 빨라도 30분 이상 기다려야 한다. 궁금해서 잠시 부엌을 구경했다. 싱크대도 없고 그을음에 그슬린 솥단지가 두어 개 보이고 쇠 파이프 위에 숱을 올려놓고 나무로 불을 때서 요리를 하고 있다. 불 때는 아궁이 위로는 검은 게 걸려 있다. 그게 뭔지 물어보니 물소고기라고 한다. 그걸 대바구니에 넣어 아궁이 위에 걸어두면 연기로 훈제가 되어 장기간 보관을 해도 변질되지 않는다는 네팔인의 지혜다.


식사를 끝내고 나니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멎는다. 모디콜라를 건너는 출렁다리를 건넜다. 강폭이 넓어 출렁다리 길이가 길고 바닥은 부서질듯한 나무판자로 많이 흔들린다. 예전에 놓은 작고 녹슨 다리가 옆에 있는 걸 보니 새로 놓은 다리가 이 정도니 예전에는 다리를 건널 때는 많이 무서웠겠다.


나무판자로 만든 뉴 브릿지 출렁다리


산을 많이 내려왔더니 나무도 키가 크고 아열대 지방으로 식생이 바뀌었다. 하루 중에 한대지방에서 온대 그리고 아열대까지 두루 경험한다. 숲에 들어가 짧은 반바지 차림으로 가볍게 입고 란드룩으로 향했다. 롯지에 들어가 짐을 챙기니 장대비 같은 소나기가 내린다. 마치 여름 장맛비 같은 비를 퍼붓는다. 이곳의 날씨는 오전은 주로 맑음이고 오후는 흐리거나 비가 내린다. 오전에 내려온 산은 구름이 끼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대나무 끝에 바구니를 매달아 물건을 운반하는 네팔


란드룩까지는 지프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가 있어 마을에 지프차가 3대나 있다. 롯지에는 더운물과 욕탕도 있는 게 문명을 느끼게 한다. 계단식 밭이 많은 간드룩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오를 때는 힘들게 올랐던 길이 내리막 길은 빠르게 내려왔다. 산은 이렇게 살라고 가르쳐 준다. 젊을 때는 힘들게 오르막을 올라가듯 살고 나이 들면 내리막을 걷는 좀 편히 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