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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달림 Jan 07. 2021

체감온도 -25도 한강 칼바람 속 눈길 달리기

골이 깊은 만큼 산도 높다.

아침 기상예보에 한강은 영하 17도에 체감온도는 영하 25도란다. 시베리아 같은 이런 날은 서울에서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 날이다. 시베리아로 여행을 가지 않아도 시베리아의 날씨를 맛볼 수 있는 이런 날에 달리면 몸이 어떻게 반응을 할까 호기심이 생겼다. 이런 호기회를 그냥 놓칠 수는 없다.


어젯밤은 퇴근길부터 내린 눈이 길바닥에 얼어붙어 말 그대로 퇴근길은 교통 생지옥이었다. 오늘 어느 조간신문의 기사 제목은 ' 폭설이 만든 지옥의 퇴근길, 버스에서 새벽 5시까지 갇혀' 생난리가 난리가 아니다. 어떤 회사원은 자가용으로 밤새 퇴근해서 집에 가니 다시 출근시간이 되어 출근했다는 분도 있단다.


체감온도 영하 25도 한강길


기온이 뚝 떨어진 오늘 같은 날은 보온을 단단히 해야 한다. 남자들은 거시기를 잘 보온해야 한다. 또한 런닝화는 보온이 되지 않아 바람이 잘 쓰며 들지 않게 테이프를 붙이는 것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귀와 손에 대한 보온도 필수고 얼굴에 바셀린을 바르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큰 도로는 염화칼슘을 뿌려 차량통행에 지장이 없지만 보도나 이면도로는 눈이 남아 있다. 한강으로 나가는 황금공원도 눈 속에 잠겨 있다. 염강나들목을 지나 한강에 나서니 그야말로 시베리아 벌판이다. 한강은 명량해전의 넘실거리는 파도같이 출렁이고 매섭게 부는 칼바람에 등 떠 밀려 한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갈 때야 괜찮지만 올 때는 보지 않아도 상상되는 비디오다.

길바닥은 간밤에 눈이 내릴 때 디딘 발자국들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오랜만에 눈이 오니 다들 반가워 너도나도 걷고 뛴 흔적이 선명히 많이도 남아 있다. 아스팔트 길에는 발자국 외에는 한강의 칼바람이 눈을 날려 버려 발자국만 선명하다. 오랜만에 내린 눈이 반가운 손님이었나 보다.


한강길의 자전거 중앙선도 눈에 덮여 보이지 않는다. 걱정하지 않아도 될게 오늘은 자전거가 다니지 않으니 아무 데로나 달려도 되는 특권은 있다. 맑은 해를 기대했으나 구름 속에 뿌연 한 해다. 참 썰렁한 한강길이다. 곳곳에는 눈 속에 빙판이 있어 조심스럽다. 빙판길의 낙상은 큰 부상으로 이어진다.

양화지구에 들어 서니 제설차가 열심히 눈을 치우고 있다. 시민들은 조금만 불편해도 난리를 친다. 내 집 앞의 눈은 내가 치워야 한다. 5Km 지점인 선유교에서 반환을 한다. 칼바람이 매몰차게 분다. 지금까지 달려온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돌아가는 길이 문제다.

몸이 밀릴 정도로 강한 칼바람을 비집고 돌아가야 한다. 앞바람은 숨쉬기 조차 힘들어서 먼저 버프를 코까지 거려야 했다. 칼바람을 밀고 간다. 자연 보폭이 좁아진다. 권투 글러브 같은 동계 등산용 장갑을 꼈지만 손가락 끝이 시려 온다. 두꺼운 타이즈를 입었지만 살이 없고 뼈가 많은 무릎 부분이 제일 먼저 시려 온다. 뼈 끝이 시리단 어르신 말씀이 생각난다.

바람에 노출된 시간이 길어질수록 하나둘씩 불편한 곳이 나타난다. 드러난 볼 피부가 아리고 눈을 감았다 뜨면 눈썹이 얼어붙어 눈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이런 것도 얼어붙나 싶다. 가장 바람이 센 곳은 안양천 합류부 다리를 건널 때이다. 양 사방이 틔여 바람이 빠르게 지나가는 곳이다. 몸이 나아가지 않는다. 앞바람이 앙탈을 부리며 몸을 돌려세우려 한다. 나아가려는 자와 돌려세우려는 자의 한판 승부다. 살아 돌아가려면 어쨌든 이 다리를 건너야 한다. 매일 무심코 달리던 100m가 되지 않는 다리가 그리 길게 느껴진 것 처음이다.  같은 거리도 상황에 따라 길고 짧아진다.


간밤에 내린 눈으로 얼어붙은 한강 자전거길



아직 끝이 아니다. 염강나들목까지는 두 번째로 바람이 세게 부는 곳이다. 달리는 속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더 버티고 참고 가야 하는 게 더 중하다. 발은 저절로 올림픽대로 갓길 쪽으로 붙어 최대한 바람을 적게 받는 쪽으로 달리지만 다리가 점점 시려 온다. 여느 때 이 정도 달리면 바람막이 옷이 체온 손실을 막아 주어 몸의 열기로 등에는 땀이라도 촉촉이 나는데 땀은커녕 몸이 식어 간다. 이러다가 저체온증이 걸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깡 추위보다 무서운 게 한강의 칼바람이다. 바람만 없다면 웬만한 추위에 달리면 체온이 올라 가지만 칼바람이 모두를 빼앗아 가버렸다. 달리다 보면 105리 길 풀코스 마라톤의 결승선이 보이듯 오늘의 결승선은 염강나들목이다. 이곳까지만 들어가면 일단 바람이 없다. 살만하다. 그때 느꼈다. 이 엄동설한에 따뜻한 집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이고 감사한 것이라는 걸.

오랜만에 체감온도 -25의 한강을 만만히 생각하면 안 된다. 특히 한강의 칼바람과 맞짱 뜨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 이런 최악의 환경은 누가 만들 수도 있는 조건은 아니다. 한 번쯤은 준비를 잘하고 체험은 해 봐도 좋을 것 같다. 힘들수록 또한 성취감도 큰 법이니까.

2021 새해 벽두에 혹독한 자연환경을 새롭게 체험한 날이다. 안방의 따뜻한 공기가 오늘따라 고맙게 느껴지는 날이다. 우리가 평소에 느끼지 못한 소소한 일상들이 다른 세계에서 고개를 돌려 바라보면 그런 것들이 새삼 고맙고 감사하게 느껴진다. 오늘 한강에 나가 칼바람을 맞고 달려보지 못했다면 그 고마움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새로움이 주는 큰 울림이고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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