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만에 첫번째 식량을 보급받는 날이다. JMT길은 약 400km로 중간중간 식량을 지원받아야 한다. 트레일 길과 차량이 다니는 길과 거리가 짧게는 반나절 길게는 하루 이상을 걸어야 도로로 나올 수 있다. 첫 번째 식량보급 지는 오니언 벨리다. 오늘은 식량을 지원받기 위해 반나절을 JMT길을 벗어나 키어사지 고개를 넘어 오니언벨리까지 내려가서 식량을 보급받고 다시 키어사지 고개를 넘어와야 한다.
여럿이 짐을 챙기다 보니 동직이 느린 분이 있어 출발 예정시간보다 15분이 늦은 7시 45분에 출발했다. JMT 트레일 구간 중 가장 높은 포레스트 패스는 바로 아래에서 보아도 바위산을 넘어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어제 샌프란시스코에서 오셨다는 노익장을 과시하는 분이 가르쳐 준 패스로 오르는 길은 절벽 사이로 오르는 길이다. 아침식사를 하는데 절벽 틈 사이로 내려오는 트레커의 모습이 보인다. 저런 곳에 길을 만든 최초 개척자의 고뇌가 느껴진다.
하늘과 호수 물색갈이 많이 닮은 포레스트 캠핑장 주변의 호수
바위 절벽 사이로 난 포레스트 패스로 오르는 길
얼마니 일찍 출발했는지 출발하기도 전에 포레스트 패스를 반대편에서 넘어온 트레커도 있다. 샌프란시코에서 오신 할아버지 트레커는 오늘 걷는 거리가 짧아 느긋하게 출발한다고 여유를 부린다. 이런 풍광 좋은 곳에 잠시 여유를 부려 보아도 좋겠다. 호수를 지나 산맥을 넘기 위해 가까이 가니 길이 뚜렷이 있다. 스위치 백으로 올라가는 길은 그리 가파르지 않다.
패스를 오르다가 뒤돌아 보면 JMT길의 대자연은 경이롭고 광활하며 웅장하게 다가온다. 겨울 동안 내린 눈이 녹아 모여든 호수의 물빛은 비취색으로 빛나고 드문드문 겨울에 내린 눈이 녹지 않고 남아 있어 이곳이 고산임을 실감 나게 한다. 고산을 오를 때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호흡에 맞춰 한 발 한 발 옮겨 고개를 향해 발돋움을 한다. 그런 인내의 시간을 보내고 숨이 턱에 찰 즈음에 포레스트 고갯마루에 올라섰다.
JMT에서 가장 높은 패스인 포레스트 패스
미국인 중학교 여선생님과 기념사진
이전까지 보지 못했던 또 하나의 신세계가 펼쳐진다. 오른쪽으로는 긴 산맥이 이어지는 경계로 인요 국립 숲(Inyo Nation Forest)이다. 포레스트 패스는 JMT패스 중 유일하게 4,000m가 넘는 가장 높은 패스로 고개 높이가 자그마치 4,010m다. 트레커들은 고갯 마루에서 잠시 쉬어간다. 이곳에서 중학교 교사를 하고 있는 여선생님을 만났다. 여름휴가 중에 9박 10일간 친구와 같이 JMT구간 종주길을 걷는다고 했다. 그녀는 올해 44세로 JMT를 구간 종주로 2번 종주를 하였고 3번째 종주라고 한다. 어디 가나 산을 좋아하는 사람을 산을 찾고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은 바다를 찾는다. 트레일을 좋아하는 분이라 한국의 제주 올레길도 400km 정도로 바다를 보며 걸을 수 있고 경치가 좋다고 추천해 줬다. 그녀는 오니온 벨리 다음 캠핑 그라운드 장소로 경치 좋은 레이 호수를 추천해 주었다. 떠나기 전 같이 사진으로 남기고 고개를 내려왔다.
척박한 땅에 고산식물만 자라고 나무 한 포기 없는 황량한 JMT 길
정면으로 보이는 센터 피크(Center peak)를 마주 보면서 내려갈 때도 스위치 백으로 지그재그 길을 내려가면 호수 옆을 지난다. 호수에서 흘러내린 물이 계곡을 이루는 부스 크릭(Bubbs Creek)을 따라 길은 이어진다. 여기서 점심은 행동식으로 미숫가루를 마셨다. 삼거리길 전에 JMT길을 보수하는 국립공원 직원들을 만났는데 여직원도 남자들과 같이 돌 쌓기 작업과 삽질을 능숙하게 하고 있다. 복장도 모두 같은 작업복 차림이다. 이게 진정한 남녀의 평등이다.
그런 고산에도 겨울에 내린 눈이 녹아 흘러든 물이 만든 호수
동물의 탈출을 방지하기 위해 목책에 철조망이 쳐져 있고 나무로 문을 만들어 놓았다. 지나온 후 반드시 문을 닫고 지나야 한다. 후드득 비가 떨어진다. 다시 우의를 꺼내 입고 길을 걷는다 이곳 날씨는 오전은 맑음이나 오후가 되면 구름이 끼고 한차례 비가 자주 내리는데 꼭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다. 다행히 많은 양의 비는 아니지만 오락가락하는 비다.
삼거리를 지나면서 JMT길은 오름으로 이어진다. 식량보급을 받기 위해 JMT길을 벗어나 오니온벨리로 가는 오른쪽 길로 접어들었다. 어제 늦게 포레스트 캠프에 도착해 제대로 저녁식사도 못한 분이 포레스트 패스를 넘어오면서 무리를 했는지 다리에 쥐가 난다고 한다. 트레킹을 즐겨 다니는 분이 응급조치로 사혈침을 갖고 있어 발가락에 사혈침을 꼭꼭 찔러 검붉은 피를 빼고 아스피린 500mg을 먹었는데도 회복이 되지 않고 자꾸만 뒤로 쳐진다.
고산을 걷는 게 많은 체력을 필요로 한다. 다리에 주가 나 사혈침으로 응급조치
황소개구리 호수(Gullforg Lake)를 지나는데 비는 그칠 줄 모르고 내린다. 후미를 기다리면서 쉴 때는 비를 피해서 나무 아래에서 기다리다가 걸었다. 앞으로 큰 산맥이 가로막고 있는데 넘어야 할 키 어사지 패스다. 이 패스를 넘어야 차량이 다니는 오니온벨리로 내려간다. 산허리를 지그재그로 오르는 스위치백 길이지만 늦은 오후로 가면서 지쳐서 속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그래도 체력이 남은 남자들이 쥐가 나서 걷기 힘든 분의 배낭에 든 물건을 나누어 배낭에 넣었다. 대형 밧데리 0.5kg과 가스 한통을 받았다.
이곳은 야생 흑곰의 서식지로 JMT를 걸을 때 주의사항을 공원 레인저가 이해하기 쉽게 그려놓은 그림
키어사지 패스로 오르는 길은 패스를 지그재그로 걸어서 올라가는 스위치백의 길이지만 아침부터 걸었던 탓에 늦은 오후에는 지쳐서 무거운 발길로 한발 한발 발돋움을 하며 오르는데 다행히도 중턱을 오를 때 비는 그쳐 우의는 벗고 올랐다. 포레스트 패스에 이어 키어사지 패스(Kearsage Pass 3,607m)까지 2개의 패스를 하루에 넘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힘겹게 패스에 올라 뒤돌아 보니 후미는 아직도 패스 오름을 시작도 하지 않고 있다. 시간의 여유가 있어 비에 젖은 우의와 간밤에 결로가 생긴 탠트 외피를 널어놓고 기다렸다. 능선이라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이 쌀쌀하게 느껴진다. 오리털 패딩을 입어도 춥게 느껴진다.
스위치백으로 오르는 키어사지 패스 오르는 길
후미가 올 때까지 가다리면서 키어사지 패스에서 메모하는 시간
오늘 계획된 일정을 보면 22.6km를 걷는다고 하였는데 지도를 보면서 꼼꼼히 거리를 더해 보니 29km나 된단다. 아직도 앞으로 가야 할 거리가 4.7마일로 7.5km를 더 걸어야 한다. 당초부터 좀 무리한 계획이 아닌가 생각된다. 29km의 거리 중에 큰 패스를 2개 넘는다는 건 쉽지 않은 거리다. 오니온 벨리는 이 계곡 끝의 어딘가 있는데 꼬부라진 계곡이라 보이질 않는다.
여름날 길고 긴 낮시간도 어느덧 서쪽으로 기울어져 뉘 연 뉘 엿 해가 기울어진 후에야 쥐가 난 분이 맨 끝으로 패스에 도착하여 푹 쓰러지듯 땅바닥에 주저앉는다. 그리고 하는 말이 '뒤에 천천히 따라갈 테니 먼저 가세요.' 한다. 기다리는 분들에 대한 미안함이지만 물설고 땅설은 이곳에 해가 지면 어두움이 찾아올 텐데 그건 사고로 연결될 수 있는 일이다. 함께 가야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
고산은 나무조차 자리지 못해 황량한 산이 켜켜이 이어짐
그분의 배낭 무게를 줄여주기 위해 빈 배낭만 메고 내용물을 꺼내 다시 분산했다. 옷이 든 백을 받아 배낭에 집어넣으려 하니 부피가 커서 배낭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배낭 뒤에 매달았다. 패스를 넘어 오니온 벨리를 향해 걷는데 810m의 고도를 낮추어야 하는데 대청봉에서 오색까지가 5km인데 그 거리의 1.5배인 7.5km란 거리를 걸어야 한다. 거기다가 다리가 풀린 환자가 있어 언제쯤 도착할지 예상이 되지 않는 시간이다. 선두는 마음이 급한지 멀리 앞서 가지만 환자가 따라가지 못하고 다시 주저앉는다.
이렇게 해서는 안될 것 같아 고산 트레킹 경험이 많은 분이 나서 '내 뒤만 따라오세요.' 하며 두 번째에서 속도를 조절해서 길을 걷고 환자가 그 뒤를 따르고 고개를 내려가는데 하트 호수에 도착하니 어둠이 내려앉아 렌턴을 켜서 진행하였다. 탈진이 심하여 토하기까지 한다. 다시 휴식시간을 갖고 천천히 길을 나섰다. 모두 묵묵히 길을 걷는다. 그러다가 환자가 힘들다 하면 다시 쉬었다가 간다. 이렇게 해야 사고 없이 안전하게 가는 방법임을 모두는 알고 있다.
그렇게 어두운 산길을 구비구비 내려오니 멀리서 불빛이 보인다. 저곳이 오니온벨리다. 구세주 같은 불빛이다. JMT길은 마을이 없으니 당연히 불빛이 없는 길이다. 일용할 양식을 보급받기 위해 내려오지 않는다면 마을을 만날 수 없다. 불빛에 힘을 얻고 천천히 걸으니 환자도 조금 회복이 되는 것 같다. 장거리 트레일에서는 잘 가는 사람을 기준으로 걷는 게 아닌 느리게 걷는 사람을 기준으로 걸어야 이런 험한 길에 낙오자가 생기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등산화에 느껴지는 감촉이 달라진다. 시멘트 길에 접어든 것이다. 오니온 벨리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넘었다. 지원 나온 분은 오후 3시부터 기다렸단다. 준비해 놓은 김치찌개와 밥 그리고 La갈비로 멋진 만찬을 즐겼다. 시원한 맥주와 와인 그리고 복숭아와 참외가 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다. 내일은 다시 산으로 올라가야 하니 휴식이 필요했다. 서둘러 11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척박한 땅에도 눈이 녹아내려 만든 호수
내일은 다시 빈 곰 통에 식량을 가득 채우고 오늘 내려온 길을 거슬러 올라 JMT길을 걸어야 한다. 환자분은 계속 길을 걸어야 할지 여기서 탈출을 해야 할지는 내일 아침에 말해 주겠다고 한다. 하룻밤 푹 쉬고 다시 함께 길을 가길 기원해 본다. 존 뮤어 길의 오아시스 같은 오니온벨리는 고요 속에 잠긴다. 해발 2,800m인 이곳은 포근해서 좋다. 어젯밤의 포레스트 캠핑 그라운드에 비하면 안방 같은 기분이다. 서울은 폭염에 잠 못 이루는 밤이지만 JMT길은 추위를 걱정해야 하는 밤이다. 참 세상은 넓고 같은 시간대에 기온도 다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