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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달림 Jan 06. 2020

고추같이 매운 겨울 설악 대청봉

미세먼지 없는 설악산

                                                                                                                                                                                                                                                                                                          

겨울 설악이 그리웠다. 일출 명소라 한때는 새해 해맞이를 대청봉에서 했다. 늦았지만 해돋이도 보고 새해 다짐을 하려고 설악으로 향했다.  겨울철에 한계령에서 입산시간은 10시까지로 대피소 예약자에게는 1시간 늦은 11시까지 입산이 가능하다. 산을 늦게 올라가면 내려가는 시간이 부족해 조난을 예방하기 위한 국공의 규칙이다. 

한계령에 발을 디디니 겨울바람이 얼굴 할퀸다. 대청봉에 올라간다고 하니 아주머니가 한 말씀하신다. 

"이 추위에 얼어 죽겠다."

"견딜만합니다."

'양간지풍'이라 하여 양양과 간성 사이는 겨울철 바람이 모질도록 세게 분다. 

서울과 다른 건  전국 대부분이 미세먼지 "나쁨"이 발령 중인데 설악의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파랗고 공기는 깨끗 깨끗이다. 중국발 미세먼지가 백두대간을 넘지 못하니 청정지역이다. 

한계령에서 귀때기청봉을 가는 갈림길이 한계삼거리까지는 한 번도 쉬지 않고 올랐다. 여기 눈밭에서 라면에 누룽지를 넣어 끓여 점심식사를 했다. 산행 중 먹는 라면 맛은 엄지 척이다. 서북능선은 내륙 쪽은 양지라 눈이 녹고 바다 쪽은 음지라 내린 눈이 그대로라 빙판이다. 겨울을 생각하면 남향집이 따뜻하고 연료비를 많이 아낄 수 있겠다. 능선길이라 바람을 맞으며 걷는 구간은 왼쪽 귀만 시리다. 

대청봉 가는 길은 오름과 내림이 반복해서 나타나는 구간이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주목은 북풍한설에도 꿋꿋이 기품을 유지하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멋진 나무인 주목을 닮고 싶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란 설악의 주목나무


웬만하면 잘 쉬지 않고 걷는다. 속도를 높이지 않고 꾸준히 걷는 게 나의 산행 방법이다. 그런 걷기 방법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배웠다.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은 달팽이 같이 꾸준히 걸으시는데 빨리 걷고 쉬는 사이 목적지인 알베르게는 거의 비슷하게 도착하곤 했다. 체력을 안배하여 꾸준히 걷자. 

끝청에 오르니 대청이 가깝다. 서북능선 자락에는 귀떼기청봉이 까마득히 멀어져 있다. 저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하니 열심히 걸어온 게 가슴 뿌듯하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봉정암이 빤히 내려다 보인다. 불자들이 꼭 들리고 싶어 하는 암자다. 

오늘 하룻밤을 쉬어갈 중청대피소에 도착하니 아직도 하루해가 한 발도 더 남았다. 배낭을 멘 채로 대청봉에나 다녀와야겠다. 쉬지 않고 왔더니 너무 빨라서 대피소 입실 시간이 많이 남았다. 600m 거리인 대청봉은 20여분의 거리다. 대청봉의 대표적인 지표 수종인 누운 잣나무가 모진 바람을 이겨내고 잘 자라고 있다. 동해바다의 바다 물색과 하늘의 색이 어쩜 저리도 닮았나 싶다. 속초의 공기가 깨끗하다는 반증이다.

 

설악산의 최고봉인 1,708m의 대청봉과 중청 대피소


대청봉으로 오르는 구간은 거리는 짧아도 누적된 피로와 오르막길이라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는 구간이다. 바람에 날아갈 것 같다. 디디고 싶은 땅을 딛지 못할 만큼 몸을 가누기 힘들다. 여름 태풍이 지나가는 느낌. 탁 그런 강풍이다. 

대청봉에 올랐으면 의식처럼 하는 게  표지석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다. 뒤늦게 올라온 젊은 친구에게 서로 찍어주기를 했다. 이런 혹한의 강풍에 잠시 장갑을 벗어도 손이 깨지는 것 같이 시리다. 코발트빛 하늘 아래 대청봉 표지석을 안고 "2020년은, 잘 살자! 행복하자!"를 외쳤다. 그건 염원이고 희망사항이기도 하다. 

대청봉 표지석 앞에 새해 다짐 " 잘살지! 행복하자!"


일몰이 아름다운데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 기다리지 못하고 미리 내려왔다. 100명이 넘게 잘 수 있는 대피소인데 평일이라 절반도 차지 않았다. 주말을 예약하기가 힘드는데 주중 산행이 이래서 좋다. 

대피소에서 음주가 금지되면서 식사도 빨리 끝난다. 부어라 마셔라. 너 한잔 나 한잔하던 문화는 추억 속의 사진이다. 새로운 풍습도 중 하나는 혼산을 하는 사람이 절반을 넘고 부부, 친구와 둘이 오는 게 그다음이다. 떼거지로 산을 찾는 문화가 사라져 가고 있다. 


군대 시절 생각하며 침상에 드러누워

"어디로 올라오셨어요." 

"오색에서 올라왔는데 다리에 쥐가 나 개고생 했습니다."

"대피소는 예약하고 오셨나요."

"그런 것도 모르고 무작정 왔습니다."
"자리가 여유가 있어 다행입니다. 오늘 산행 기분이 어떠세요?"

"그간 먹고살기 바빠 등산이란 꿈꾸도 꾸지 못했는데,  등산이란 걸 알고 처음 대청봉에 올랐는데 다시 태어난 기분입니다. 대청봉에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 고생을 했는데 기분 하나는 최곱니다. "  첫 대청봉 오른 기분은 세상이 내 발아래에 있는 게 그 기분을 알 것 같다. 이번에 산을 내려가면 제주도 한라산을 오를 것이란다. 산의 매력 늪에 푹 빠지신 것 같다.


해가 지니 급격히 기온이 떨어진다. 겨울 설악의 바람은 더 매몰차게 분다. 산을 날려 버리기라도 할 것 같이 윙 ~ 윙 ~ 부는 바람은 절로 기를 꺾어 놓는다. 밤하늘에 별은 많기도 한데 속초의 불야성은 이곳과 별개의 세상같이 느껴진다. 

밤 8시에 불을 끄니 자란다. 오랜만에 일찍 잠자리에 든 밤이다. 잠이 오지 않아 이리 뒤척 저리 뒤 척하며 올해는 뭘 할지 새해 설계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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