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최고의 마라톤 난코스 길
여수마라톤은 매년초에 열리는 마라톤 대회로 남쪽 지방이라 그리 춥지 않은 환경 속에 달릴 수 있는 대회다. '14년과 '15년 연속으로 참가한 적이 있어 대회 코스나 분위기는 느낌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때는 한창 때라 258과 303으로 완주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느낌을 생각하며 여수로 향합니다. 대회 특징은 해안가라 오르내림이 심하고 바닷바람이 있는 대회라 기록보다는 한 해를 시작하며 훈련코스로 적당한 대회입니다. 대회 후 제공하는 굴 떡국과 막걸리는 남도의 넉넉한 인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지방 마라톤대회는 우리 부부에게 마라닉입니다. 마라닉은 마라톤과 피크닉의 합성어입니다. 마라톤 대회도 참가하고 대회 후 그 지방의 여행지를 둘러보는 3박 4일의 넉넉한 일정입니다. 여수 밤바다로 유명한 이곳은 둘러볼 곳이 많은 여행지입니다. 내려가는 길도 빠름 빠름이 생명인 고속도로보다는 국도를 선호합니다. 가다가 지루하면 한두 곳 정도는 들려서 가도 좋은 먼길입니다.
남쪽 지방은 서울보다는 한결 포근합니다. 여유 있게 도착해서 내일 달릴 준비를 끝내고 대회장을 둘러보고 일찍 잡니다. 겨울철이라 대회 출발시간이 9시 30분이라 아침시간이 여유가 있어 좋습니다. 출발 1시간의 여유를 주고 대회장에 도착하니 각지에서 참가한 달림이 들이 4,000명이나 되고 가족까지 6,000명이 모인 지방대회 치고는 꽤나 큰 대회입니다.
차문을 열고 나서는데 여수 바닷바람이 사정없이 몰아 칩니다. 그 바람에 기가 질린 아내는 차 안에서 나올 생각을 않습니다. 10km는 풀코스 출발 후 40분 후에 출발합니다. 여수대회라면 떠 오르는 첫마디가 난코스, 언덕, 그리고 바닷바람인데 오늘따라 강풍주의보가 내렸습니다. 기온은 3도인데 체감온도는 훨씬 밑돌아 오싹하니 몸이 움츠려 들 정도로 춥습니다.
이런 날은 복장을 어떻게 입을지 애매합니다. 최저 3도 최고 7도의 예보인데 바람이 강풍이니 체감온도는 많이 떨어질 것입니다. 긴 타이즈에 긴 팔을 입었는데 동계 티셔츠라 보온이 잘 됩니다. 귀가 시릴 것을 대비해 털모자를 쓰고 울장갑을 꼈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너무 더웠습니다.
강풍이 몰아치는 엑스포 광장에서 간단한 식전행사를 끝내고 9시 30분에 출발입니다. 오동도 방파제를 지나 1차 반환을 하고 거북선대교를 건너 돌산도에서 2차 반환을 하고 27km 지점인 한구미 터널을 지나 3차 반환을 하고 돌아오는 코스입니다.
오동도로 가는 길은 엑스포장 구내를 통과할 때는 보도블록을 뛰는 구간이 있습니다. 오동도를 돌아오는 구간에 방파제에서는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달리는데 평지에서 부는 바람은 일정한 방향에서 불어오는데 바닷바람은 방향이 없이 좌우 앞뒤로 몰아쳐 당황하게 합니다.
여수마라톤의 특징 중 추가되는 하나는 터널을 지나는 구간이 3곳이나 됩니다. 거북선대교를 지나려면 맨 먼저 만나는 터널은 자산공원 아래 자산터널입니다. 조금은 어두컴컴한 터널에는 바람이 없어 달리기 좋습니다. 거북선대교는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게 합니다. 이어서 만나는 돌산도 오르막은 서막에 불과합니다. 오름을 오르면 내림이고 내림이 끝나면 오름이 시작되는 여수마라톤 코스입니다.
돌산도 2차 반환점을 돌아오는 달림이 중에는 낯익은 얼굴이 몇몇 보입니다. 기록이 비슷한 분인데 끝까지 지금 속도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입니다. 마라톤은 빨리 가는 경기가 아니고 결승선에 먼저 도착하는 경기입니다. 여수마라톤은 매 1km 구간 기록은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오름에는 밀리고 내리막 길에는 빨라지니 길의 상태에 따라 구간 기록도 들쑥날쑥입니다.
거북선대교를 다시 건너면 여수박람회장을 지나 만성리 해수욕장으로 가는 마래터널을 오르는 오르막길입니다. 여성주자들의 헉헉 거리는 거친 숨소리가 만만치 않은 오르막임을 알려 줍니다. 1차선 편도 길인 이 터널은 조명이 어두워 앞 주자의 윤곽만 보며 달리는 길입니다.
터널을 빠져 나오면 레일 바이크 타는 곳이 있고 아래에는 검은 모래 해변으로 유명한 만성리 해수욕장입니다. 메타 가로수길인 만성리 고개 오름에 하프 주자들은 돌아가는 반환점입니다. 2000년대 초부터 ' 하프마라톤의 황제'란 별칭을 가지고 있는 창원의 김형락 님은 50대 후반의 나이임에도 젊은이와 겨루어 밀리지 않고 2위로 반환하네요. 꾸준한 자기 관리를 잘하고 계시는 마스터즈의 모범이 되는 분입니다.
지금부터 여수마라톤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오름과 내림을 맛볼 수 있는 구간입니다. 롤러코스트 같은 내림이 이어지면 다시 오름으로 이어집니다. 누적 오르막 854.3m가 괜히 붙여진 별칭이 아니네요. 열심히 달려 내려가면 다시 오름에서 최대 심박수를 올려 가야 합니다. 내리막에 사용하는 근육과 오름에서 사용하는 근육이 달라 다리 앞뒤 근육에 피로가 쌓입니다.
20km 지점에 있는 소치 고개는 최고 오르막입니다. 아직도 오르막은 몇 개 더 있고 돌아올 때는 이 길을 다시 넘어야 할 고개입니다. 해안가를 달리는 코스라 연신 바닷바람은 인정사정없이 몰아 치니 급수대의 일회용 종이컵은 길바닥에 갈 곳을 몰라 널브러져 있습니다. 강풍을 맞으면 자원봉사를 하는 분도 고역도 상고역입니다.
한구미 터널을 들어섭니다. 조명이 어두워 반환점을 돌아오는 주자의 윤곽을 보고 달립니다. 28km에서 3차 반환점을 돌아옵니다. 이제 온 길을 돌아가면 된다는 현실에 마음이 편해집니다. 이렇게 달리다 보면 길의 끝은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져 옵니다. 그리 서두를 일은 아닙니다. 평정심으로 길의 끝을 향해 달립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달리기를 하다 보면 내가 할 수 없는 달리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게 반복 효과지요. 마라톤은 그런 것 같습니다. 어느 날 마라톤 기록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닌 습관처럼 반복해 달리다 보면 내가 목표했던 기록에 다달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한 운동입니다.
30km를 넘어서면서 체력의 한계점에 도달하고 서서히 지쳐 갑니다. 시도 때도 방향도 없는 바닷바람을 기세를 누그러 뜨리지 않고 연신 몰아 칩니다. 이럴 때는 보폭을 좁히고 핏치수를 높이는 주법으로 바꾸어 주고 팔 치기 횟수를 늘려 갑니다. 팔 치기 횟수만큼 저절로 다리 따라옵니다.
앞서가던 주자들이 한분 두 분을 앞설 수 있습니다. 돌산도 제2반환점에서 앞서간 분들을 여기서 앞섭니다. 이분들은 늘 대회 때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분들이라 안면이 있는 분입니다. 마라톤은 야국의 9회 말 홈런이나 탁구의 엣지, 권투의 행운의 펀치가 없습니다. 욕심을 부린다고 될 일은 아니지요. 35km 이후는 다리로 달리지 않고 상체의 힘으로 달린다고 합니다. 다리의 힘은 빠지고 남은 상체의 힘으로 달리지만 정신력이 더 중요합니다.
만성리 해수욕장에서 마래터널로 오르는 39km 지점 마지막 언덕은 마른 수건을 다시 짜듯 견디고 버티어야 하는 구간입니다. 어둑어둑한 마래터널을 빠져나오면 40km 급수대에서 갈증을 풀려고 마지막 급수를 하고 작은 오르막을 올라 급한 내리막을 달려야 합니다. 후들거리는 다리에 급한 내리막 길은 그리 달갑지 않습니다. 그리 늦은 시간도 아닌데 차량 통행으로 보도블록으로 길을 안내를 하네요.
이제 긴 호흡을 하고 앞서 가는 한 분을 목표로 합니다. 목표가 있으면 정신이 몸은 지배합니다. 앞서가는 분은 익산에서 오신 분인데 63 토끼 클럽으로 자주 만났던 분입니다. 결승선 직선 주로에서 안간힘을 다해 앞서 피니쉬 라인을 통과합니다. 3:24:47. 목표보다 초과 달성했네요. 1km당 5분주로 계산해서 330이 목표였는데 여수의 언덕과 강풍주의보 속에 선방한 것 같습니다.
이런 악조건의 날씨에 아내는 10km 부문에서 1:12:44로 완주했습니다. "혼자 달렸으면 달리지 못했을 텐데 함께 달려서 완주할 수 있었어" 마라톤은 분명 혼자 달리는 경기지만 함께 달리는 경기입니다. 언덕 넘어 언덕 있고 강풍주의보 속에 달릴 수 있었던 것은 함께 달렸기게 달릴 수 있었습니다. 마라톤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누구나 마라토너가 되려면 열심히 달려한 합니다. 그게 하루하루 허투루 살지 말고 열심히 살아야 하는 하는 것은 마라톤과 인생은 많이 닮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