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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달림 Jan 23. 2020

캐시드럴 패스를 넘어 요세미티

북쪽 길이 서쪽길로 꺾어 가는 길 

      

투올로미 캠핑 그라운드는 소나무 숲에 제각기 자기 시간에 맞추어 움직인다. 부지런한 트레커는 모닥불을 피워 한잔의 커피를 마시면서 아침을 시작하는가 하면 소나무 숲길을 반려견과 산책하는 이도 있고 느긋이 늦잠을 자며 피로를 푸는 이도 있다. 각기 생각하고 가야 할 길이 다르기에 맞고 틀리는 게 없다. 자기 방식 데로 하루를 시작할 뿐이다. 이곳 캠핑 그라운드는 규모가 대단하다. 대부분 오토캠핑장으로 뒤쪽 일부가 트레커 캠핑장이다.


캠핑장 이용방법은 먼저 퍼밋이 있어야 한다. JMT퍼밋이 있으면 이용이 가능하다. 캠핑장을 둘러보고 좋은 사이트를 잡는다. 음수대와 화장실을 고려해 조용한 곳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다음을 셀프 등록대로 간다. 이용료를 넣을 수 있는 봉투와 연필이 비치되어 있다. 이 봉투에는 숙박일 수, 입장일, 이용료 총액을 적어 놓을 수 있다. 공란을 모두 채운 후 이용료를 넣는다. 큰돈은 거슬러 주지 않으니 잔돈으로 준비한다. 봉투를 밀봉하고 등록대 옆에 있는 통이 넣으면 된다. 이때 주의할 점은 영수증을 반드시 떼어 놔야 한다. 이 영수증은 해당 사이트를 사용하고 있다는 표시이자 이용료를 냈다는 증거가 된다.

청량한 공기를 마시며 주변을 둘러보니 트레커들이 사용하는 탠트에 관심이 간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배낭의 무게를 줄이는 것인데 그들이 사용하는 탠트는 초경량 탠트를 사용하고 있었다. 가볍고 질긴 소재를 사용하고 있었다. 아직은 고가이지만 곧 많이 공급되면 쉽게 구할 날이 있을 것 같다.

질기고  가벼운 지팩 탠트가 대세를 이루는 트레커 탠트

아침식사는 어제 가게에서 구입한 컵라면과 사과 1개인데 양이 좀 부족한 것 같아 누룽지를 끓여 먹었다. 어젯밤 맥주와 양주를 구입할 수 있어 오랜만에 술이 반가워 많이 마신 분들은 속이 쓰리다고 먹는 둥 마는 둥 한다. 오늘도 걸을 일이 만만하지 않은데 제대로 먹지 않고는 힘든 시간이 될 것 같다. 체력소모가 큰 이런 트레킹에서 한때 기분을 내려고 마신 후 과음은 다음날 몸이 괴롭고 몸이 생고생을 한다. 술은 잘 절제가 힘든 기호식품이다.


그간 북쪽으로만 걷던 길이 투 올로 우미 메도에서 남진으로 길의 방향이 바뀐다. 이곳에서 지도와 표시된 방향이 각기 달리 표기되어 있다. GPS 트렉은 아스팔트 도로를 건너서 돌아오는 길이고 지도는 아스팔트 도로를 건너지 않고 우체국을 지나 남진이다. GPS를 신봉하는 이는 그것을 따라가고 지도를 보고 이곳 트레커에게 물어보고 길을 걸었더니 그들이 돌아와 다시 만난다.


길의 표시도 요세미티 표시로 바뀌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요세미티 산불로 통제되었던 길인데 산불의 방향이 바뀌면서 이 길이 열린 것이다. 오늘 넘어야 할 패스는 캐시덜 패스로 2,957m로 트레킹 길은 그간 가뭄으로  먼지기 폭삭폭삭 나는 길을 따라 오름으로 이어진다. 갈림길이 많아 길이 헷갈리기 쉬운 곳이라 주의해서 안내표지판을 잘 보고 걸어야 한다.

우측의 돌산은 성당을 닮았다고 하여 이 고개 이름이 캐시덜 패스

캐시덜 패스를 앞두고 캐시덜 호수 삼거리에 다 달으니 호수는 0.5마일 남았다. 곧장 가는 길은 요세미티와 선라이즈(Sun rise) 가는 길이 표시되어 있어 걸어 올라 전망이 좋은 곳에 배낭을 내려놓고 쉬는데 후미에 있던 분도 도착을 했는데 한분이 보이질 않는다. 아마 길을 잘못 들어간 것 같은데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시원한 바람이 불고 전망 좋은 곳에 작은 휴식이 소박한 행복을 느끼게 한다.  30여분이 지나서 '화장실 다녀오느라고 늦었다.' 한다. '무슨 화장실을 30분이나 가나.' 한다. 다들 자존심이 있어 길을 잘못 든 걸 인정하고 싶지 않나 보다. 긴 날들을 함께 해도 마음을 툭 터 놓고 기대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 같다.


케시덜 패스에는 마치 성당의 첨탑처럼 생긴 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의 형상을 보고 캐시덜 패스란 이름이 붙여졌고 JMT의 마지막 패스이기도 하다. 바위산 주변으로는 듬성듬성 소나무가 자라고 있는 모습이 이국적이고 돔 형상을 한 바위가 여기저기 보인다. 이제 요세미티로 들어간다는 게 실감이 난다.


이 지역은 가뭄이 심하여 작은 호수는 바닥을 드러 내었고 큰 호수만 물이 찰랑거리게 물이 차있어 그나마 호수의 품위를 유지하고 있다. 비가 자주 오지 않는 지역이라 너무 건조하여 산불이 자주 발생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따가운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고개를 내려가는 구간으로 큰 오름이 없이 선라이즈(Sun Rise) 캠핑장으로 내려서는데 다시 드넓은 초원이 펼쳐진다. 건조한 사막에 초원은 오아시스 같이 청량감을 준다. 넓게 펼쳐지는 초원과 바위산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바위산 위로는 잉크를 풀어놓은 듯 코발트빛 맑은 하늘이 좋은 대조를 이루어 아름다움이 배가 된다.

탱크톱 복장으로 트레 일중인 여성 트레커

요즘 연일 맑은 하늘을 보여 주는 날씨인데 하늘색은 이런 거야 하고 가르쳐 주기라도 하듯 청아한 하늘에 몇 점의 흰 물감을 던져 놓은 듯 목가적 풍경이다. 선라이즈 캠프는 '하이 시에라 캠프'라고도 불리며 막사와 샤워장, 식당을 갖춘 제법 럭셔리 한 글랜핑 캠핑장이다. 짐을 가볍게 하고 요세미티에서 출발하여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투올로미 메도우로 가는 하이커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이다. 


작은 매점도 있어 음료수와 산행에 필요한 자질구레한 것도 팔고 맥주는 아쉽게 팔지 않고 레몬 에이드를 팔고 있었다. 갈증이 심하던 때라 시원한 레몬 에이드가 청량감을 더해 준다. 이런 산중에 간이숙소와 매점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 이곳 운영시간은 오후 1시부터 5시까지로 나의 상식으로는 잘 이행되지 않는 시간이다. 그래도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


내리막길 개울가에서 점심을 먹는데 가뭄이 심해 개울에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이 되었다. 어제 마시고 남은  SF맥주 1병을 배낭에 넣어 왔는데 오징어포를 안주삼아 마셔보니 가뭄에 단비 같이 꿈맛이다. 갈증도 없어지고 약간의 알콜기와 오징어의 짭짤함이 환상의 맛이다. 힘들게 케시덜 패스를 넘어 메고 온 보람을 느끼는 시간이다. 한 병에 맥주에 행복감을 느끼고 있으니 땀을 흘리긴 많이 흘렸나 보다. 그 후 길을 걸을 때도 맥주의 힘으로 잠시 오르막길에도 힘내어 잘 걸을 수 있었다.

아빠와 아들 트레커(좌) 선라이즈 캠프의 매정 물품들(우)

계획에는 선라이즈 캠핑장이 오늘 목표지였는데 가뭄에 물이 말라 6km를 더 걸어서 21km를 걷고 계곡에 물이 있는 곳을 찾아 하루를 묵어 가기로 했다. 널널한 일정이라 그리 늦지 않은 오후 3시 30분이다. 이곳은 원시림 소나무 숲으로 쭉쭉 뻣은 소나무 사이로 빛 잘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숲인데 숲 속 야영지 가운데는 화덕이 갖추어져 있다. 요세미티 이전에 이런 훌륭한 캠핑장을 만난 것도 행운이 있었던 것 같다.


일찍이 존 뮤어는 "아무리 지쳐 있어도 산에서 하루를 보내면 축복받은 사람이고 삶의 도중에 기운을 잃을 일은 없을 것이다. 장수를 누릴 운명이건 파란만장한 삶을 살 운명이건 그 사람의 영혼은 부자다"라고 했다. 산중에서 보내는 하루가 그만큼 느끼는 일이 많아 삶이 풍요로워진다는 말이다. 그런 산을 벌써 20여 일을 보내고 있으니 복에 겨운 것이다.


이제 내일이면 존 뮤어 트레일의 마지막 날이다. 호슈수 메도우에서 7월 28일 트레일을 시작하여 8월 17일 요세미티 해피아일(Happy Isles)에서 끝을 낸다. 고도 3,000m가 넘는 9개의 패스를 넘고 미국 본토에서 최고봉 휘트니 산(4,418m)도 올랐다. 어떤 날은 콧속까지 건조함이 느껴지는 내려 쬐는 직사광선이 있었고 어느 날은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고 천둥과 번개가 치더니 우박이 내려 한기를 느끼며 세콰이어 나무 아래에서 입술이 파래지도록 떨기도 했다.

캠핑의 꽃 캠핑 그라운드에서 캠프 파이어 한여름에도 쌀쌀하여 불이 그리운 JMT길

여정이 늦어 밤 10시가 되도록 렌턴 불을 켜고 걷기도 했고 올라도 올라도 끝이 보이지 않던 뮤어 패스는 멀고도 높았다. 어떤 이는 발이 너무 아파서 목놓아 울기도 했다. 오니언 벨리로 가던 날 키어사지 패스에서 어떤 분은 다리에 쥐가 나서 JMT를 포기하고 돌아갔고 어떤 분은 코우드 패스를 오르던 1일 차 트레킹에서 고산에서 오는 심장의 부담으로 포기하고 호슈수 메도우 캠핑장에서 5일간 지원대가 올 때까지 도를 닦고 귀국하기도 했다.


존 뮤어 트레일(John Muir Rrail)은 뭘까?  인터넷을 물론 핸드폰도 연결되지 않는 문명과는 단절된 세상이다. 그 길에는 마을을 만날 수 없고 자연 불빛이 없는 길로 이 길을 걷는 동안은 현대문명과 단절된 생활을 해야 한다.  가끔 탈출로가 있긴 하지만 1~2일을 걸어야 문명의 세계와 만나는데 그런 곳도 자주 만날 수 없다. 그래서 JMT를 걷는 동안은 아프지도 말아아 한다. 온전히 몸을 보전해 나가는 것도 스스로의 몫이다. 그런 고립무원의 길을 걸으려면 먹고 입고 잘 것을 본인이 등짐을 메고 걸어야 한다.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곰에게 식량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그것을 곰 통에 넣어 가지고 다녀야 한다.


하지만 하나의 패스를 넘을 때마다 숨이 턱에 찰 정도로 힘든 인내를 필요로 하지만 패스 꼭대기에 올라서는 순간에 눈앞에 펼쳐지는 세계는 그간 오르면서 힘들었던 순간을 보상하고도 남을 상상도 하지 못한 스펙터클한 아이맥스 상영관의 화면보다 수백 배는 더 넓은 화면으로 인간을 압도해 황홀한 세계로 안내하곤 했다.


존 뮤어 트레일은 거목 세콰이어 나무와 에메랄드빛의 영롱한 호수 그리고 이곳에 살고 있는 곰과 사슴 그들이 주인인 곳이다. 트레커에서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손님이다. 이곳은 곰의 나라다. 손님으로 예의를 지켜라.' 그렇게 말하고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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